내 영혼의 틈새에 머물러주오
소울 푸드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내 짐작에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 말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닭고기에서 베어난 고소한 기름과 향신료, 갖은 야채들이 서로 엉켜 따스한 온기 속에 지친 육신을 달래준다. 감칠맛의 교향곡이 입과 위장을 통해 부드럽게 쓸려 내려간다. 허기를 위로하는 동시에 몸 구석구석에 피를 돌게 한다. 이는 몸만이 아니라 영혼이 받는 치유이기도 하다. 기력이 쇠할 때, 한국인이 삼계탕이나 곰국을 찾듯 미국인들에게는 닭고기 수프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음식이 아닌 내적 치유에 관한 책이었지만.
소울푸드란 뭘까? 말 그대로 영혼에 까지 영양이 미칠 만큼 나를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음식일 수도 있겠고, 마르셀 프루스투의 마들렌처럼 지난 과거를 단번에 소환하는 기억이 담긴 음식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이라니,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다소 시간이 걸려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내 영혼에 가닿는 음식이라는데 아무것이나 말할 수 있을까.
20대의 나의 소울푸드는……. 푸드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칵테일이었다. 학창 시절 부모님이 잠든 거실에서 새벽마다 몰래 <섹스 앤 더 시티>를 보았다. 학교에 가면 나 같이 미드에 환장한 친구들이 몇 있었고 우리는 빅이 캐리를 두고 나파밸리로 떠났던 날에 호들갑을 떨며 그들의 앞날의 추측하기도 했다. 극 중 캐리는 언제나 코스모폴리탄을 마셨다. 준법정신이 투철했던 나는 10대에는 어른이 주는 술이라도 입에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20세 생일이 왔을 때 친구들과 처음 막걸리와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신 뒤 나는 내가 파릇파릇한 주당계의 새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패스트푸드 가게를 처음으로 엄마 없이 방문해 쭈뼛거리며 주문하던 초3의 어느 날처럼, 나는 21살에 처음 칵테일바를 방문해 수줍게 코스모폴리탄을 시켰다.
코스모폴리탄의 첫 모금을 마시자 나는 캐리가 왜 그토록 그 술만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맛있었다!’ 바텐더의 추천으로 다른 칵테일도 마셔보았고 나는 알콜보다 칵테일에 함량 된 상큼한 과일향과 당에 취해 10잔을 훌쩍 넘게 마셔버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나는 돈이 생기면 잘 모아놓았다가 칵테일 사 먹는 일에 몰두했다. 결국 중증 알콜 중독자가 되었으며 우울증까지 겹쳐 완전 술독에 빠진 20대의 나날을 보냈다. 정신을 차려 몸을 일으켰을 땐 온몸이 진창이었다. 목적지가 보이기는커녕 출반선에서 겨우 몇 발작 떨어져 있었고 내 앞을 지나친 친구들은 이미 몇 바퀴를 돌고 다시 나를 스쳐갔다.
“망했구나, 나.” 조급할수록 스텝이 엉켰다. 체력은 텅 빈 통장만큼이나 가벼웠고 그나마 수치심은 알았던 나는 차마 격려를 바라지도 못한 채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어찌어찌 사는 날 동안 음식의 맛이란 별 다른 기억이 없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이 달려온 날들이니까. 그러다 만났다. 나의 제2의 소울 푸드를.
지금 나의 소울 푸드는 ‘소울(疏鬱)’이라는 한국어 단어에 답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내 속에 둔중하게 자리 잡은 응어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그것들을 돌멩이 정도로는 풀어헤칠 수 있는 음식 말이다. 내가 10년째 점심 식사로 한 가지 음식만을 먹고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한 가지 메뉴를 계속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지만, 그것이 특정 회사 특정 브랜드 라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더.
음식에는 풍미가 있다. 풍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사전에는 풍미를 가리켜 ‘음식의 고상한 맛’이라고 간단히 정리해놓았지만, 풍미란 온도와 향기, 촉감, 질감, 색감 등 음식이 가지고 있는 특질을 입안에서 폭죽처럼 쏘아 올린다. 아삭한 식감을 지닌 음식이라면 청각까지 자극하니 풍미란 그 무엇보다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온전히 풍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적당한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T라면에는 사실 풍미는 없다.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맛의 기본 요소가 있으니 바로 감칠맛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T라면에만 라면들 중 유일하게 MSG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쁜 남자처럼 내 삶에 유익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는 자극이 존재한다. 그것은 매운맛. T라면은 매운맛 중에 매운맛을 자랑하는 라면이다.
T라면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다. 한 번은 건강을 위해 절면(絶面)을 결심했지만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말았다. 헤어지기로 결심하고서는 한밤중에 그 집 앞을 찾아가 큰 소리로 목놓아 우는 사람처럼, 나는 매일 꿈에서 라면 먹는 일이 지쳐 결국 새벽에 다시 라면을 끓이고 말았다. 다시 만났을 때 그 쾌감이란. 매운 면발이 나의 주둥이를 때리며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땐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20대엔 술, 30대엔 라면이라니. 나의 영혼에 의구심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내 미뢰의 취향이 다소 발칙하다고 변명해보겠다. 추천하기에는 꺼려지는 소울푸드를 소유한 사람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차마 버리지 못한 낡은 청사진을 앞에 두고도 생각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하루 800원 남짓의 위로 정도면 든든하게 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더 큰 보상이 없이도 억울하지 않은 실패를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를 지탱해주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기분도 든다. 헝그리 정신하면 자고로 라면! 기꺼이 정신승리가 가능한 것은 아마도 나의 소울푸드 T라면 덕이 아닐는지. 오늘도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