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쁨의 나열

하나부터 열까지 몽땅

by 존치즈버거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나쁜 혹은 재수 없는 하루를 보냈을 때 기분을 전환하는 나만의 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런 일들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지만, 실제로 악감정이 인간 신체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시상하부에서 보낸 신호가 호르몬을 분비하고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속에 심박수와 혈압이 증가한다. 이는 면역계에 영향을 주고 이런 감정이 지속되면 단순히 스트레스는 물론 정신적인 질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용서에 대한 잠언들이 이토록 많은가 보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인간의 수명을 짧게 만든다. 물론 최악의 경우지만.


우선 좋아하는 목록들을 적기 위해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으로 갈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누군가는 붐비는 카페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한적한 공원일 수도 있겠고 의외로 화장실이 그 장소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커다란 거실 창 앞에 위치한 기다란 나무 책상이 그렇다. 티파니 스탠드를 켜놓고 맞은편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불빛과 가로등 불빛 사이를 한가로이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허름한 연습장을 들고 앉는다. 물론 마음을 안정시키는 차와 음악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만 아는 아주 개인적이며 사소한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요즘 나’라는 인간의 내부에 불이 켜진다.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기분을 전환하는 동시에 일상의 장막에 가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므로 검열 따윈 필요 없다. 남들에게 말하기엔 어딘가 간지러운 문장을 써보자. 평소 잘 쓰지 않는 감성 근육을 쓰는 것이다.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낭만으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말들이라 해도 상관없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일수록 더 좋다. 완벽하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공백을 메우다 보면, 오로지 나만이 가닿을 수 있는 내면의 지도가 완성된다.


이를 테면, 막 씻고 나온 아이의 목덜미 냄새, 볼륨을 7로 맞추고 내적 댄스를 숨긴 채 산책하며 듣는 마크 론슨의 음악, 샤워하며 펑펑 쏟아내는 울음, 혼자 남은 집에서 맥주 마시며 매니큐어 칠하기, 남편이 벗어놓고 간 잠옷 냄새, 청양고추를 3개를 통째로 넣은 콩나물국, 잠수할 때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품들, 중고 책방에서 산 오래된 만화책의 냄새, 주말의 아이쇼핑, 막걸리와 바나나와 딸기를 2:1:1 비율로 갈아 마시기, 우울증이 한창이던 어느 시기에 쓰인 나의 일기장, 한여름밤 거실 에어컨을 켜놓고 홀로 추는 걸그룹 댄스, 나에게 친절한 말을 해준 사람들의 소식을 엿보며 축복을 비는 일, 빨래를 개키며 밀린 드라마를 보기, 남편이 건네는 꽃다발, 짝사랑했던 사람들의 sns를 염탐하며 그들의 노화를 확인하는 일, 또…….


좋아하는 일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 일을 즐기고 있을 때의 나 자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웃고 있었나? 무표정이었던가?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좋아했던가? 이때의 나는 혼자였던가? 누군가와 함께였던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나는 이런 것들을 어째서 좋아하는가? 과거의 나를 반추하며 지금의 나를 살핀다. 그럴 때면 영혼이 쑥 빠져나가 내가 내 옆에 있는 것만 같다.


기쁨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라 부르는 막연한 꿈이 있다. 사람들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달라, 쓰임의 높은 빈도수에 반비례해 도무지 답은 알 수 없는 단어. 요즘 나에게 행복은 일시적인 자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에 잡히는 행복은 말 그대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 행복에 겨운 마음은 향수와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져 깊게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행복을 꿈꾸며 사는 우리들. 인간은 권태의 동물이라 자신의 욕구를 모두 충족해도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금세 소중함을 망각한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나도 당신도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들도 모두 그렇게 걸음을 옮긴다.


좋아하는 것들의 나열은 그런 막연한 행복의 실체를 더듬는 일과 같다. 좋아하는 일들이 사소할수록 기쁨은 배가 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겨우 이런 것들이라니. 어쩌면 나의 행복은 내 일상 도처에 자리하며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 쓴 목록은 자신만 아는 비밀 장소에 보관하자.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나의 기쁨들을 다시 펼쳤을 때 그것은 단순히 기쁨의 나열이 아닌, 내가 버텨 온 투쟁의 역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달라진 기쁨의 형태만큼이나 달라진 내 삶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기쁨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더 나은 곳으로 갔을 것이 분명하니까.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 목록들이 모두 긍정의 단어로 채워지진 않는다. 아주 얄팍하며 치사한 음모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가끔은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슬픔의 행위가 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며 마주한 나 자신은 생각보다 불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불온한 나 자신을 만든 것은 또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 매일 성실히 눈뜨는 우리는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나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의 마음을 배신해도 너무 당황하지 말자. 일단 좋아하는 것을 마주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목록은 충분히 교정될 수 있다. 이건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오늘 나를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들을 쓴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행위와 취향들이 무색하게 그것이 주는 충족감은 크다. 겨우 이런 것들로 행복해한다고 속단하지 말자. 내가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기에 이런 것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행복은 그렇게 큰 부피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기쁨의 나열을 바라보며 기운을 얻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이제 나쁜 하루에 복수를 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