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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T Sep 11. 2022

시간에 대한 신-예술적 산물.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은 플롯에 있어 독보적인 감독이다. 대표작인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한 방식으로 뒤틀린 플롯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중 플롯만으로 보았을 때 정점은 바로 <테넷>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테넷>에 대해 살펴보자.


<테넷>은 일반적인 시간 여행 첩보 영화에 ‘인버전’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도입한 결과물이다.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시간 여행은 현재에서 어떤 다른 시간대로 ‘점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테넷>에서는 다르다. 인버전이란 다른 시간대로 ‘점프’하는 방식에 있어 개연성을 위해 만들어낸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을 통해 <테넷>에서는 그저 한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점프‘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바꿔 연속적인 시간대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을 살펴보자. 이 영화에서도 고전적인 시간 여행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틀은 공유하고 있다. 작중에서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보자. 로켓, 스타크, 배너 등 과학과 공학의 지식을 사용해 어떤 기계를 만들고, (즉 그것이 ‘어떤’ 기계인지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 기계를 통해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다. 이 점에서 서사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결국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가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는 내용이라면, 이는 그저 현재 시간대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과도 영화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테넷>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에는 서사의 부실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우리가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보았을 때, 주인공의 상황과 임무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연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주인공이 불연속적인 시간대를 움직인다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몰입도가 깨져버릴 것이지만, <테넷>에서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주인공들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에는 큰 감흥이 없지만, <테넷>에서 주인공이 인버전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에는 비장함이 더해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인버전은 개연성을 부여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서사적인 측면에서 감정 이입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인버전의 도입은 <테넷>의 플롯과 스토리를 모두 특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테넷>의 가장 큰 흠은 인물에 있다. 놀란의 전작들을 예시로 들자면, 플롯은 매우 복잡하더라도 연인을 상실한 트라우마(<메멘토>), 가족의 재결합을 위한 노력(<인셉션>), 혹은 가족을 향한 초월적인 사랑(<인터스텔라>) 등 인물들이 가지는 행동의 동기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력하다. 그렇기에 복잡한 플롯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힘을 얻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려운 퍼즐과도 같은 영화의 플롯 장벽을 넘어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사랑, 열정 등의 가족적인 가치들이었다.) 그러나 <테넷>에서는 중심적인 메시지가 부재한다. 이것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인물이 바로 사토르이다. 사토르는 알고리즘을 활성화해 온 지구를 인버전시킬 매우 야심찬 계획을 실행 중에 있음에도 그 동기에 명확하지 못하다. 작중 사토르의 말을 들어보면, 사토르는 그저 인버전된 어떤 인물에게 거의 확정적인 지구의 미래를 넘겨듣고는 숨겨진 알고리즘의 조각을 찾아 미래 세력을 구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허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미래 세력은 왜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인가. 사토르의 말에 의하면 미래 세력은 기술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방안이 아예 없으며, 무엇보다도 윤리적으로 구시대적인 것이다. 환경 문제에서 책임론을 이전 세대에 들이미는 회의론은 현재에도 오류를 지적할 정도인데, 기술적으로나 지적으로나 현재보다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미래 세대는 <테넷>의 세계관에서는 전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또, 미래 세력의 혜안은 작중에서도 소개되는 ‘할아버지 역설‘을 해결해야 가능하다. 애초에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과거의 모두를 죽이는 것은 곧 현재의 행방도 묘연해지는 것인데, 미래 세력은 이러한 위험성을 알고도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인가. 그만큼 미래 세대가 직면한 문제가 급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논리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전혀 매력적인 전개가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사토르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자신은 췌장암에 걸려 미래를 살아갈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 세력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전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열망을 가질 만큼 절망적인 고난인가.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마저도 제 손으로 죽일 정도의 열망을 가지는 데 이것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분명히 이 또한 반박이야 가능하겠지만, 이런 지적이 나왔다는 것 자체로 이 영화의 각본은 디테일함을 잃게 된다. (물론 인물의 모티브에 관해 할 이야기는 넘쳐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만 이야기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넷>은 대다수에게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각본의 구조, 즉 플롯에 의한 것이다. ‘인버전‘이라는 비범한 도구는 플롯과 연출 모두에 혁신을 불러일으켰고, 그렇기에 각본에서의 디테일한 결함들이 가려질 수 있었다. ‘인버전’이 영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지는지는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인 ‘인버전‘의 인문학적인 가치이다.


인버전은 시간에 관한 신-예술적 관점의 산물이다. 예술과 과학, 철학은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과학에서의 새로운 시간관의 산출은 철학과 예술에서의 입력이 되어 새로운 예술적 관점을 만들어내고, 인버전은 시간에 관한 과학적 성과에 대응하는 신-예술적 관점에 의한 것이다.


시간은 원래 매우 자명한 것이었다. 시간이란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고, 절대 멈추지 않는다. 제논의 역설 자체도 시간에 대한 고찰의 부재에 의해 만들어진 난제였다. 그러나 물리학의 발전으로 시간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물리학은 현상에 관한 것인데,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변수가 필요했고 시간이 그 변수로서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사물의 움직임, 온도의 변화 등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대부분 시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우리의 눈앞에서 움직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움직임을 분명 “지금 어떤 물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얼마 후 그 물체는 다른 어떤 위치에 도달한다“와 같은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때 그 물체의 위치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우리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시간은 변수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에 있다. 그러나 이는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시간의 절대성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시간과 다른 나라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그 시간에 따른 현상도 달라질 것이고, 이는 물리학자나 철학자들에게 매우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온 우주 어디에서라도 시간이 모두 동등하게 흐른다는 가정 하에 물리학적인 분석을 만들어나간 것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고전적이라고 부르는, 절대적 시간관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이 좋은 예시일 듯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절대적 시간관보다 상대적 시간관이 지지 받게 되었다. 이는 절대적인 시간이란 없고, 공간이 변하듯이 시간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어떤 조작 불가능한 절대적 존재의 위치에서 쉽게 상상하고 변형할 수 있는 일상적 위치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간관의 변화는 예술에서 시간이 어떻게 다뤄지는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인버전 이전의 시간과 관련한 플롯과 인버전의 등장이 이러한 변화를 잘 반영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테넷> 이전의 시간 여행 관련 영화들이 시간 여행을 하는 방식은 현재 시간대에서 갑자기 어떤 다른 시간대로 ‘점프’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는 연출의 한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점프‘를 하는 시간 여행이 시간의 절대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예를 들었던,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주인공들이 ‘점프’하고 난 결과를 보면, 주인공들은 그 시간대의 시간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된다. 다시 말해, 미래에서 ‘점프‘해 현재 우리 옆으로 왔다면, 그 주인공들은 우리와 같은 시간 속에 있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절대적 시간관이 반영되어 있는데, 어떤 하나의 흐름으로서 지각되는 시간에 인물들이 그대로 편승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냇물로 비유해보자.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냇물이 있고, 냇물 위의 물체들은 냇물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이때 ‘점프’하는 방식의 시간여행은 말 그대로 냇물 위 뗏목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분명히 그저 흐름을 타고 이동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더 앞으로 가든지, 더 뒤로 가든지 등) 그러나 냇물에 뛰어들고 난 뒤에는 똑같은 흐름을 타고 이동한다. 이와 같이 한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점프‘할지라도 절대적인 하나의 ‘시간’이라는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테넷>에서 소개되는 인버전은 상대적 시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인버전을 통해 한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 인물은 그 시간대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냇물로 설명하자면, 뗏목에서 ‘점프‘하는 방식과는 달리, 뗏목에서 내려와 상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이는 냇물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걸어가는 것이고, 냇물 상에서 다른 위치에 도달하지만 냇물의 흐름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즉, 인버전한 인물은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인버전된 총알을 생각해 보라. 그 총알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고전적 시간관을 통해서는 절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상대적 시간관의 예술적 구현인 것이다.


즉, <테넷>의 가치는 매우 복잡한 플롯과 연출의 완벽한 결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테넷>은 상대적 시간관을 반영함으로써 현시대의 과학과 철학에 상응하는 예술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 큰 의의를 가진다. 이는 예술 자체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중요한 지점이며, 이 이후로는 일반적인 ‘점프’의 방식, 다른 말로 고전적인 시간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간에 관해 예술적인 참신성을 추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6723592/mediaviewer/rm3152642049?ref_=ttmi_mi_all_sf_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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