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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T Oct 15. 2022

MICROSCOPE: 결혼 이야기(2019)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는 노아 바움백의 2019년작 장편 영화이다. <결혼 이야기>의 전반적인 소개부터 하자면,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아담 드라이버 역의 명성 높은 연극 감독 찰리와 스칼렛 요한슨 역의 배우 니콜의 이혼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변호사 없이 서로 합의하기로 했던 이혼은 니콜이 이혼 변호사를 만나면서 위태로워지고, 결국에는 찰리도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둘은  치열하면서도 처연한 공방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혼 절차를 밟는 중에도 니콜과 찰리는 아들 헨리를 위해 고군분투해나간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역설의 영화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한 장면을 깊이 들여다볼 것이다. 이 장면은 내가 영화를 보며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고, 개인적으로 봤을 때 가장 연출의 공이 큰 씬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한다. 바로 니콜(스칼렛 요한슨 역)과 이혼 변호사 노라(로라 던 역)의 첫 대면 씬이다.


글의 한계 상 영상과 함께 내용을 전개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대본과 함께 살펴볼 것이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넷플릭스 제작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거나, 혹은 이 장면을 관람하면서 읽는다면 보다 더 깊은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니콜과 노라의 첫 대면은 21:28에 시작한다.)



INT. NORA FANSHAW’S OFFICE. DAY

Nora Fanshaw, 40’s, looks amazing and elegant. Today she is in tight designer jeans, a YSL blazer, red pumps and full make-up. 28. Nicole, in old jeans and a button-down, sits on a comfortable, stylish couch, a Moroccan rug on the floor--in an office that looks like a suite at a W Hotel. A sheepskin throw, fresh flowers on the coffee table. 

NORA I had an event at my kid’s school.

Nicole grows suddenly self-conscious about what she’s wearing. 


우선 장면의 시작부터 살펴보자. 이 씬은 니콜이 파일럿을 촬영하면서 알게 된 여성 스태프에게 노라를 소개받는 장면에서 이어진다. 이때 영화는 L컷으로 두 씬을 잇는다. L컷이란 영상이 전환된 후 소리가 전환되는 편집 기법인데, 이 장면 전환에선 노라의 모습이 먼저 보이고 미세하게 직전의 여성 스태프가 하는 말이 들리다가 노라의 사운드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 L컷은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편집의 자연스러움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만일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잘랐으면 지나치게 단절되어있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혼 변호사 노라는 로라 던이 맡았다. 노라는 자신의 테이블 옆에 서서 전화기를 끄고 니콜이 앉아있는 소파 옆 의자에 앉는다. 노라는 지문에서 설명한 대로 풀메이크업 상태이면서 매우 자신감 넘쳐보인다. 로라 던의 긴 팔과 다리, 그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와 여유로운 표정은 ‘노라’라는 인물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카메라는 패닝과 동시에 움직이며 노라의 걸음을 잡는다. 그 뒤 감독은 스틸 카메라로 니콜을 보여준다. 니콜은 하얗고 긴 소파의 끄트머리에 앉아있으며, 약간 쪼그린 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니콜을 연기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표정도 약간 울먹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씬이 시작할 때 노라의 포즈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이 둘의 분위기 대비, 더 나아가 기세의 대비를 암시한다. 그리곤 노라가 앉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앵글 왼쪽에 살짝 걸린다.


로라 던의 대사는 “Sorry, I… look so shrubby. I had an event at my kid’s school.”이다. 원래의 각본에서 앞에 붙인 한 마디는 이후 지문에서도 서술된 니콜이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모션에 힘을 싣기 위함이다. 또한 로라 던이 호흡을 뱉으며 대사를 하는 것은 상대역인 니콜에게 여유와 안도감을 준다.



NORA Let me get this out of the way, I think you’re a wonderful actress.

NICOLE Thank you.

NORA I loved All Over The Girl but the theater stuff too.

NICOLE (can’t help but be pleased) You’ve seen the theater stuff?

NORA I saw Electra.

NORA I was in New York last year for my book -- which, remind me to give you a copy -- and my publisher took me.

NICOLE Oh...great. Thank you.

NORA Fantastic. You’re awesome.


노라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노라가 꺼내는 첫 소재는 니콜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영화 <All Over The Girl>이다. 그리고 이때의 로라 던의 손 제스처, 표정과 끄덕거리는 고개는 실제 이혼 변호사가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부분에서 노라와 니콜은 각자 다른 앵글로 분리되어있다. 아무래도 니콜에겐 원하지 않던 이혼 변호사였고 아직 친밀감도 충분하지 않기에 느끼는 거리감이 있을 것이고 이는 약간의 단절감이 가미된 편집으로 반영되었다.


니콜의 짧은 리액션 후 노라는 곧바로 호흡을 가져가며 니콜이 참여한 연극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는 노라가 유명인인 니콜과 찰리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노리고 던진 소재일 것이다. 이 의도를 모르는 니콜은 지문의 ‘can’t help but be pleased’를 아주 짧은 순간동안 표현한다. 니콜의 사운드도 눈에 띄게 먼저 들어갔다. (이것은 위의 J컷의 반대인 L컷이다. 영상보다 소리를 먼저 등장시키는 방식의 편집이다. 둘의 자연스러운 대화 연출에는 J컷과 L컷이 (특히 L컷이) 빈번이 사용된다.) 니콜이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고 있는 것이다. 로라 던은 의도적으로 “I saw Electra” 대사를 건너뛴다. ‘Electra’는 찰리가 연출하고 니콜이 연기했던 연극의 이름일텐데, 굳이 이 장면에서 연극의 이름을 넣어 리듬감을 깨트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 뒤 노라의 대사는 변호사로서 자신감 넘치는 당당함을 완전히 발산한다. 로라 던의 작은 움직임들도 분명히 한몫을 한다. 그 뒤 니콜을 비추는 스틸 카메라로의 전환에서도 L컷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서로의 친밀감과 호감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NICOLE (almost apologetically) Charlie directed it.

NORA I know. He’s very talented.

NICOLE He is. They’re moving it to Broadway. Without me of course.

NORA He was lucky to have you.

NICOLE While I’m making a show about a plant invasion.

NORA (really asking the question) How are you doing?

Having been asked that question at that moment in that way, does something to her. Tears run down Nicole’s cheeks.


니콜은 멋쩍은 웃음 뒤에 살짝 불안정하게 찰리가 연출한 연극임을 이야기한다. 물론 노라도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사실 노라가 의도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편집은 씬이 시작할 때 드러났던 단절감이 전혀 없이 사운드와 영상을 서로 걸쳐서 편집을 이어나간다. 노라의 노련함으로 대화는 허물없이 자연스러워졌다. 니콜의 마지막 대사는 다시 멋쩍은 웃음으로 대체되었다. 약간 코믹한 저 소재는 어차피 이후 대사에 등장하기도 하고, 이 직후 노라가 던지는 대사가 호흡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게끔 생략되었다.

노라는 니콜에게 어떠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니콜이 감정적으로 북받치게 되는 질문이기에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이 임팩트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니콜의 멋쩍은 웃음으로 한 번, 사운드와 영상이 동시에 끊어지는 편집의 투박함에서 또 한 번, 그리고 호흡을 놓지 않는 로라 던의 연기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임팩트를 얻는다. 로라 던의 호흡을 살펴보면, 니콜이 “They’re moving it to Broadway” 대사를 할 때부터 로라 던은 숨을 뱉지 않고 호흡을 잡는다. 이는 노라의 대사에 긴장감, 다르게 말하면 니콜의 감정을 울리는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는 어떠냐는 질문에서 조용히 폭발한다. 이 대사를 들은 니콜은 울먹거리며 눈물을 훔친다. 스칼렛 요한슨의 씬 초반부터 붉어진 얼굴로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 연기에서부터 감정선을 이어나간 결과이기에 놀라운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감정을 터뜨릴 수 있었다. 로라 던이 계속해서 잡았던 호흡은 이 부분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뱉어낸다. 노라 입장에선, 사실상 영업이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이다.



NORA Oh, honey.

Nora kicks off her shoes and tucks them under her feet. She rises, grabs a box of tissues and curls up next to Nicole on the couch. Nicole takes a tissue and she and Nora meet eyes. It feels intimate and safe.

NORA You take some breaths. And while you do, I’m going to tell you about myself.

She texts something to someone and then very deliberately puts her phone down on the table. Nora puts her hand on Nicole’s leg. She talks to her like a good girlfriend.

NORA If you should choose to hire me, I will work tirelessly for you and am always available by phone or text, EXCEPT when I’m with my kids. I insist on doing drop-off and pick-up at school every day.

NICOLE (likes this) Oh, I understand. 


스칼렛 요한슨이 호흡을 뱉어냄과 동시에 로라 던은 대사를 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카메라는 로라 던의 움직임을 자유로운 앵글 회전으로 천천히 따라간다. 그 후 카메라는 스칼렛 요한슨의 오른쪽 얼굴을 비춰 로라 던이 앵글 속으로 침투하게끔 한다. 이 구도는 노라가 니콜에게 침투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우 영화의 법정 장면에서도 반복되는 구도이다.

노라는 니콜 옆에 무릎을 꿇은 채로 웅크리고 앉아 신발을 벗어던진다. 신발이라는 것은 왕가위의 <화양연화>같은 영화에서도 그랬듯이 제약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노라가 울고 있는 니콜 앞에서 빨간 하이힐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품위보다도 막역한 사이로 니콜에게 다가가는 노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노라의 신발을 벗기는 노라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앵글은 니콜의 왼편으로 바뀌고, 노라는 니콜의 등을 쓰다듬으며 대사를 말한다. 이후의 이 부분의 대사들은 전부 오버숄더 씬으로 카메라에 담긴다. 둘의 친밀감은 이제 매우 높아진 상태이다. 노라가 대사 중 겉옷을 벗는 것도 신발을 벗는 것과 같이 높아진 친밀감을 드러낸다. 니콜도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황에서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An assistant enters with a tray that has green tea and cookies. Nicole starts eating the cookies, Nora does not.

NORA I’ve been through this myself so I know how it feels.

NICOLE (hopeful) You do?

NORA Yes. I have a kid from my ex who was a narcissistic artist and verbally abusive. I’m now with a great boyfriend, who lives in Malibu.

NICOLE Oh, good. (hesitates) But Charlie’s not terrible.

NORA No, of course not, but they ravish you with attention in the beginning and then once we have babies, we become the mom and they get sick of us.

Nicole nods. 


이 부분은 지문과 대사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다. 우선 위에서 이어지는 둘의 대화의 리듬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라의 대사가 먼저 시작되고, 중간에 차와 과자를 대접하는 비서에게 감사 인사로 “Thank you, Mannie”를 추가한 뒤 나머지 대사를 한다. 카메라는 부드러운 틸트로 자연스럽게 차와 쿠키를 보여주고 넘어간다. 이후 재개되는 대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라 던의 연기이다. 고개와 표정만을 움직이는 로라 던은 우선 호흡을 들여마시지 않고 노라가 니콜 속으로 침투하려는 모습을 이어서 보여준다. 그러다 “verbally abusive” 전에 잠시 숨을 마셔 이 부분에 강조를 넣는다. 노라는 자기 전 남편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니콜에게 같은 처지에 있다고 안도감을 건네주려 한다. 로라 던의 끄덕거리는 고개가 설득력을 더해준다. 이후에는 니콜의 리액션 쇼트를 짧게 삽입하는데, 스칼렛 요한슨은 노라에게 완전히 빠져든 표정을 한 채로 숨죽여 로라 던의 대사를 듣고 있다. 그러다가 조금을 텀을 두고 찰리를 변호하는 대사를 칠 때에는 직후 로라 던이 바로 리액션을 하며 호흡을 가져간다. 이 대화는 이제 노라가 모두 장악한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Nicole nods.’ 지문에서 호흡을 내뱉는다.


다만 이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영화의 제작 상 로라 던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와 스칼렛 요한슨을 비추는 카메라로 각각 오버숄더로 한번 씩 촬영했을 것이다. 이때 로라 던을 비추는 카메라에서 초점 밖에 있는 스칼렛 요한슨의 뒷모습과 스칼렛 요한슨을 비추는 카메라의 모습이 약간 다르다. 스칼렛 요한슨은 몸을 정면으로 향하게 하고 고개만 돌려 로라 던과 대화하고 있는데, 로라 던을 비추는 카메라에 보이는 스칼렛 요한슨은 등을 약간 보이고 있다. 엄청나게 거슬리지는 않지만, 약간은 어색함이 느껴진다.



NORA Where do you want live now, doll?

NICOLE (takes a breath) Well, I’m here now, obviously, and I don’t know if this show will be picked up, but... it feels like home... it is home. It’s the only home I’ve known without Charlie.

NORA You want to stay here.

Nicole likes hearing this affirmation, but then hesitates.

NICOLE Charlie won’t want to do that. He hates LA.

NORA We’re interested in what YOU want to do. Sounds to me like you did your time in New York. He can do some time here, no?

NICOLE (nods) He always said we would, but we never did.

NORA How old is your son?

NICOLE Henry is eight. He likes LA, but I don’t know if it’s fair to him...

NORA It sounds like a wonderful childhood to me: the first half New York and the second half in LA.

NICOLE (to herself) The second half...

Nicole processes this.

NORA I want you to listen to me, what you’re doing is an act of HOPE. Do you understand that?

NICOLE (suddenly meaning it) Yes.

NORA You’re saying, I want something better for myself.

NICOLE I do.

NORA And this, right now, is the worst time. It will only get better. Wasn’t it Tom Petty who said the waiting is the hardest part?

NICOLE I don’t know.

NORA I represented his wife in their divorce, I got her half of that song.

NICOLE Oh, I don’t want money or anything, he doesn’t have money anyway, he puts it all back into the theater-- I used to think he gave TOO much away. I just want it to be over.

NORA Of course you do. But we can do both.

NICOLE I just worry... You know we weren’t going to even use lawyers so...I don’t want to be too aggressive. I’d like to stay friends.

NORA Don’t worry, we’ll do it as gently as possible. (beat) Now, can you tell me a little bit more about what’s going on? Because part of what we’re going to do together is tell your STORY. 


이 부분에선 두 배우의 티키타카 연기가 빛을 발한다. 말하는 중간중간 여유를 주는 것도 감정적으로 훌륭하다. 그럼에도 특히 두 배우와 감독이 각본을 어떻게 조정했는지가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노라의 “It sounds like a wonderful childhood to me:~” 부분은 생략되었고 바로 니콜에게 향하는 충고로 넘어간다. 이는 찰리에게 굽히는 니콜의 대사 직후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노라의 대사를 이어붙인 것이기도 하며, 약간 노라가 니콜의 상황을 판단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는 듯하기도 하다. 또한 이후 니콜의 “he doesn’t have money anyway,~”대사도 생략되고 바로 변호사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이는 노라의 속물적인 인상을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어찌됐든, 이 부분에서의 대화는 유려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beat) 지문에 맞춰 차를 건네주는 노라의 질문으로 완성된다. 이후부터는 니콜의 독백과도 같은 대사가 시작된다.



NICOLE It’s difficult to articulate. Sorry. It’s like I know why I’m doing this but I don’t know too. It’s not as simple as not being in love anymore.

NORA (O.S.) I understand. Why don’t you start at the beginning, wherever that is for you.

계속해서 이전의 구도가 반복된다. 이후 시작되는 니콜의 긴 대사에서  구도의 변주가 화려하게 일어난다.

And Nicole begins. As she talks she finds her voice and gains momentum and she starts to feel better, the tears start to dry up and she becomes more powerful, more herself.

NICOLE Well, I was engaged to Ben, you know, and living in LA and I felt like “Yes, I want to make movies and marry Ben” - Jesus I was only nineteen or twenty, I’ve never felt older in my whole life - But if I was honest with myself, there was a small part of me that felt dead, or dead-ish, but you tell yourself “no one is perfect, no relationship is perfect.” (realizing) Boy, this tea is delicious.

NORA Isn’t it? It’s the Manuka honey. 


지문을 먼저 살펴보자. 지문은 니콜의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점점 자신감이 회복되는 모습을 지시한다. 이 지문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간 니콜을 연기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여유로워진 표정과 화법에서 등장한다. 중간에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려고 하는 듯한 눈빛은 강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농담을 받아주는 로라 던의 리액션이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그러다가 니콜이 차를 마시고 차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여유를 찾은 니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살짝 쉴 틈을 제공한다. 니콜에게 있어 중요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t’s the Manuka honey.” 대사를 하는 로라 던의 능청스러움은 정말 로라 던을 실제 이혼 변호사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준이다.)



NICOLE Anyway, you were asking about Charlie. So yes, so I was happy with Ben, but aware of the deadness. And then I went to New York to meet a director for a space movie, but one where they take space seriously. Sex trafficking in space. It was political, or they wanted us to think it was. It was actually just fulfilling the same need certain fucked up porn does.


이제 니콜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메라도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 니콜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니콜의 자신감을 담기 위해 약간의 속도감도 들어가있다. 차 이야기로 잠시 쉴틈을 마련했던 스칼렛 요한슨의 대사는 아직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내용 자체도 크게 감정이 동원되어야 할 내용도 아니거니와 대사를 하며 코를 풀고 립밤을 바르는 것을 감정이 격해진 모습보다도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NICOLE (CONT’D) Anyway, while I was there, the producer invited me to a play. It was in someone’s living room with all the lights on and like nothing I’d ever seen before.


이제 니콜은 아예 화장실로 들어가버린다. 문을 통해 들리는 니콜의 목소리는 사운드 보정을 통해 약간 울리는 느낌의 연출이 첨가되어있다. 니콜이 코를 푸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관객이 아직 감정적으로 몰입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친절함이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앵글의 왼쪽에 오게 걸어가도 카메라 앵글은 화장실 입구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연극을 보는 관객의 고정된 시야를 보여주는 인상을 준다. 여담으로, <결혼 이야기>의 연출을 관통하는 모티브가 바로 연극이다.


이제 찰리가 니콜의 대사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NICOLE (CONT’D) A strange, surreal dystopian story. So well acted and one of the actors was this big shaggy bear who played all his lines looking directly at me which I knew couldn’t be really the case, but it felt that way, and of course later I learned that it was. (also realizing) The cookies are really great too.

NORA (O.S.) I’ll give you some to take home. 


이 부분은 총 네 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 화장실 입구 앵글 속 니콜, 노라의 짧은 리액션, 의자에 앉은 니콜의 클로즈업, 그리고 노라의 대사이다. 대사의 마무리에 니콜이 쿠키가 맛있다며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주는 것도 아직 감정적으로 몰입할 시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찰리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기 시작하는 니콜의 모습은 아주 미세한 줌인으로 반영된다. 첫 쇼트에서는 카메라의 미세한 줌인 도중 니콜이 앵글 속으로 나가버려 몰입을 잠시 깨고, 세 번째 쇼트에서는 쿠키 이야기를 하며 몰입을 재차 깬다. 이는 이후 대사를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쯤 로라 던은 리액션 쇼트에서 보이지 않는다. 로라 던의 웃고 있는 눈과 진지한 입은, 실제 LA에서 활동하는 이혼 변호사가 쇼파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NICOLE Afterwards, I was introduced to the cast and this bear turned out to also be the director. He didn’t really know who I was - or he did, or he figured it out later - and that was it. He started talking to me. And I talked back - and the dead part wasn’t dead, it was just in a coma. And it was better than sex, the talking. Although the sex was also like the talking... everything is like everything in a relationship, do you find that? ... We spent the whole night and next day together, and I just... never left. And to be honest, all the problems were there in the beginning, too. I just went along with him in his life because it felt so damn good to feel myself alive. In the beginning I was the actress, the star, so that felt like something. People came to see me, at first. But then the farther away I got from that and the more the theatre company got acclaim, I had less and less weight. I became “Who?” “Oh you remember, that actress who was in that thing that time.” And he was the draw. And that would have been fine, but...I got smaller. I realized that I didn’t really ever come alive for myself, I was just feeding his aliveness. He was so smart and creative, it didn’t matter. I would tell him things at home, in private, and then they would work their way into public conversation, into his work and for a while that felt like enough. I was just so flattered that someone like him would find an idea of mine worth using or a comment of mine worth repeating. And then I got pregnant.


일단 스칼렛 요한슨의 대단한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중간에 로라 던의 리액션 쇼트가 나오긴 하지만, 줌인을 보면 저 방대한 양의 대사가 하나의 컷으로 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사 초반에는 찰리와의 사랑스러운 첫 만남과 행복했던 나날들을 이야기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커리어의 상실로 우울해지는 내면을 꺼내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빠르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를 클로즈업 앞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는 분명 드물다. 정말로 놀라운 연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 때의 쇼트에서도 줌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하고 아주 서서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줌인을 하는 카메라 앵글은 감정을 표현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에 깊이를 배가시킨다. 


이후 스칼렛 요한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라 옆에 앉고, 카메라도 부드럽게 들어올려 니콜의 움직임을 따라한다. 



NICOLE (CONT’D) And I thought “having a baby will be ours, really ours, and it will also really be mine” and he was so excited. And it was nice for a while. But kids... they belong to themselves. Like the instant they leave your body, it’s just a process of going away from you. And I didn’t belong to myself. It was stupid stuff and big stuff-- All of the furniture in our house was his taste.


감정에 복받친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이제 니콜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맞았던 산후 우울증의 위기를 표현한다. 각본의 흐름 자체가 결혼 후 자신의 커리어를 잃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우울감을 느끼는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도 수려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흔드는 로라 던의 움직임은 스칼렛 요한슨의 실감나는 연기에 몰입감을 더한다. 



NICOLE (CONT’D) I wasn’t even sure what my taste was anymore because I’d never been asked to use it. I didn’t even pick our apartment, I just moved into his. I made noises about wanting to move back to LA, but it came to nothing. We’d come here on holidays because he liked my family, but whenever I suggested we do a year or something, he’d put me off. It would be so weird if he had turned to me and said “And what do you want to do today?” I watched that long documentary about George Harrison and I thought “just own it, own it like George Harrison’s wife. Being a wife and mother is enough.” And then I realized I couldn’t remember her name.


이제 니콜의 대사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찰리와의 동거와 출산을 거쳐 이제는 자기 자신과 가족으로 시야를 옮긴다. 이후에도 중요한 소재로 남게 되는 LA로의 이사 이야기의 등장도 그렇고, 이 대목에서 니콜이 가장 큰 심리적 고난을 겪고 있는 포인트로 보인다. 이는 이전에도 반복되었지만 여느 때보다 임팩트있는 줌인으로 표현된다. 전 몇몇 쇼트에서의 미세한 줌인에서 힘을 받아 이 부분의 줌인은 관객을 강력하게 빨아들여 니콜의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줌인은 서서히 옆에 있는 노라를 앵글에서 쫓아낸다. 여태까지 노라는 리액션을 담당하던 일종의 중개자, 니콜과 관객 사이의 중개자였다면, 줌인을 통해 이제 관객을 니콜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누구라도 니콜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NICOLE (CONT’D) So this pilot came along, and it shot in LA and it paid so much and it was like there was a little lifeline thrown to me “Here is a bit of earth that’s yours.” And I was embarrassed about it in front of him, but also, it felt like “this is who I am, this is what I’m worth and it’s stupid, but at least it’s mine.” And if he had taken me in a big hug and said “Baby, I’m so excited for your adventure and of course I want you to have your own piece of earth” then we might not be getting divorced. But he made fun of it. And was jealous, like he is. BUT then he realized about the money and told me I could funnel it back into the theatre company. And that’s when I realized that he truly didn’t see me. He didn’t see me as something separate from him. And I asked him to say my phone number. And he didn’t know it. So I left.


이제 앵글에는 스칼렛 요한슨 밖에 남지 않았다. 카메라는 줌인 속도를 낮춰 이전과 같이 서서히 줌인을 한다. 동시에 동요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따라간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면 카메라도 왼쪽으로 살짝 움직이는 방식이다. 니콜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커리어의 회복과 함께 이혼을 결심하게 된 마지막 계기를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카메라는 니콜의 이야기 중 결혼 생활 속 우울을 앓았던 부분부터 이혼을 하게 된 마지막 부분까지를 깊은 줌인으로 조명한다. 물론 그 전의 행복한 시절도 있었겠지만, 특히 이 씬의 카메라는 니콜의 이야기 중 저 특정 부분만에 집중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는 <결혼 이야기>라는 작품 자체가 사랑 이야기를 조명하는 방식이다. 헤어짐을 통해 사랑을 되돌아보는 구조이기에 작품의 연출, 편집, 촬영을 통틀어 모든 요소가 이를 향하고 있다. 노아 바움백의 흐리지 않은 집중력이다.



Nora wipes a ink-stained tear from Nicole’s cheek and hugs her.

NICOLE (realizing she forgot to include) I think Charlie also slept with Mary Ann, the stage manager.

NORA (fierce) That fucking asshole.


노라의 위로와 공감을 담은 포옹으로 니콜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후 니콜은 아무 힘 없이 찰리의 외도를 이야기한다. 그 직후 로라 던의 리액션은 작품에 약간의 코미디적인 센스를 다시 불어넣는 듯하다. 이렇게 이 장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어쩌면 이혼 소송 속에서 상대의 외도 사실이 어떤 감정적인 동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남편의 외도에 힘을 주고 연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각본에서도 이는 가장 뒷전에 있고, 스칼렛 요한슨이 말하는 모습도 힘을 다 빼고 가볍게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결혼 이야기>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소송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헤어짐의 과정 속에서 되돌아보는 사랑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남편의 외도 의심은 크게 중요하진 않다. 인물의 감정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기에 각본 속 이 장면은 <결혼 이야기>의 배경을 서술해줌과 동시에 영화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압도적인 이유는 이 장면이 영상 언어를 가장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배우의 연기 뿐만이 아닌, 편집과 촬영, 음향 믹싱이나 구도를 통해 감독은 내러티브 이상의 무언가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이 장면은 이의 훌륭한 예시이자 성과이다. 여태까지 살펴본 이 장면 속 영상 언어의 활용은 두 인물의 관계성과 한 인물의 독백을 전달하는 탁월한 매개체이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7653254/mediaviewer/rm3272785665?ref_=ttmi_mi_all_sf_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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