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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T Oct 17. 2022

MICROSCOPE: 아네트(2021)

아네트

<아네트>는 레오스 카락스의 9년 만의 신작이자 첫 뮤지컬 영화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글램록 듀오 밴드 스팍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레오스 카락스가 작품의 총감독으로 간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각본과 음악에 대해선 온전히 레오스 카락스의 결과물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아네트>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연출만큼은 감독만의 비범함이 형태 그대로 담겨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9년 전 <홀리 모터스>를 제작해 아주 깊은 철학 속에 자전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레오스 카락스가 이번엔 뮤지컬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발표 당시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이유는 뮤지컬 영화는 장르적으로 정형화된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데이미언 셔젤의 <라라랜드>나 린 마누엘 미란다의 <틱, 틱, 붐!>, 롭 마샬의 <시카고> 등등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 속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해냈던 작품이라도 ‘뮤지컬’만의 요소를 탈피하는 데에 실패했다. 다시 말해, 잘 만든 뮤지컬 영화로 그쳤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아네트>는 그 형태가 전혀 예상되지 못했던 작품이다.


결과는 극히 파격적이었다. <아네트>는 뮤지컬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기이한 분위기로 관객을 끌고 갔으며, 거기에 스팍스의 넘버와 배우들의 연기가 합쳐져 여태껏 어떤 뮤지컬 영화도 해내지 못했던, 온전히 새로운 뮤지컬 영화를 개척해냈다. 거기에 전작인 <홀리 모터스>와 같이 철학적인 아이디어 속에 감독 자신을 투영해 울림을 자아내는 스토리텔링 역시도 훌륭했다. 전작의 강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던 서술의 모호함은 공동 프로젝트 과정을 거치며 약간 덜어내졌고, 그 역시도 뮤지컬 장르에 최적화된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번 글에서 다룰 시퀀스는 <아네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오프닝 시퀀스이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 본인의 나레이션부터 오프닝 넘버인 <So May We Start?> 시퀀스 이후 아네트 타이틀이 등장할 때까지 약 6분 내외의 시간동안 <아네트>는 그만의 방식으로 막을 연다. 



OPENING CREDITS 

We hear the murmur of an audience getting seated before a show. 

ANNOUNCER'S VOICE (CARAX) Ladies and gentlemen, We now ask for your complete attention. If you want to sing, laugh, clap, cry, yearn, boo or fart Please, do it in your head, only in your head. You are now kindly requested to keep silent and to hold your breath until the very end of the show. Breathing will not be tolerated during the show. So, please take a deep, last breath right now. Thank you. 

The audience takes a deep last breath. 

SONG (first recorded human voice ever) "Au Clair de la Lune"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 위에 사운드를 입히며 시작한다. 가장 처음 들리는 것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다. 떠들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사람들의 소리 사이로 마이크를 손으로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본 상황은 감독이 영화가 시작하기 전 소란스러운 관객을 조용히 시키고는 유의사항을 하나씩 말해주는 것이기에 이 목소리는 스크린을 넘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목소리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영화에 완전히 집중하라고 요청한다. 어떠한 행위도 하지 말고 영화를 감상하길 원하는 듯하다. 심지어는 숨도 쉬지 말라고 한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들이키라고 하면 이후에 관객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 영화를 보는 우리 또한 이 소리에 맞춰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나면 감독의 짧은 감사인사로 나레이션이 마무리된다.


전작인 <홀리 모터스>의 오프닝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홀리 모터스>에서는 역동적인 영화(활동사진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듯하다)의 장면과 영화관에서 죽은 듯이 좌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는 당시의 영화라는 매체와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레오스 카락스 본인의 관찰이 투영된 것인데, 영화는 역동적이지만 그를 감상하는 관객은 죽어있는 아이러니와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아기와 개의 모습은 생기없이 변해버린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며들어있다. 어쩌면 <홀리 모터스> 이전 레오스 카락스의 <폴라 X>의 상업적, 비평적 실패와 연관이 되어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그만큼의 사랑을 보이지 않는 감상자에 대한 감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네트>의 오프닝은 <홀리 모터스>와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이제 시작할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 준비를 하라는 듯한 레오스 카락스의 나레이션은 <아네트>에 대한 호기로움과 함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홀리 모터스>의 오프닝과 같은 통찰이지만 다른 자세이다.

나레이션 이후에는 약간 뭉개진 음악 소리가 들리는 데, 이는 각본에 서술되어있다시피 <Au Clair de la Lune>이며, 인류 최초의 녹음이다. 인류가 최초로 남긴 청각 자료라는 점은 이후 이어지는 연출과 연결되어 꽤나 의미심장하게 작동하게 된다.



PROLOGUE LOS ANGELES 

EXT. THE VILLAGE MUSIC STUDIO - NIGHT 


Traffic at night in front of the L.A music studio. 

Waveforms, following sound, superimposed on picture. 


삽입된 사운드가 끝나면 영화는 각본에 나와있는 녹음 스튜디오의 외관을 비춘다. 시간은 밤이고, 이 앞에는 차가 오고 간다. 특이한 점은 화면에 처음 보이는 순간은 밝기를 어둡게 눌러놓았다는 것이다. 빛은 있지만 그 외의 어떤 형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면은 어둡게 조율되어있다. 이 화면을 밝게 비추는 것은 정체 모를 잡음과 함께 보이는 붉은 파형이다. 소리가 커지면 화면도 더 밝아진다. 잡음이 끊기고 나서야 화면은 원상태로 돌아와 스튜디오와 지나가는 차들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다.


파형이란 청각을 시각화한 수단이다. 영화에서 파형을 보여주는 것은 곧 청각이 시각화되는 과정을 보이는 것이고, 다시 말해 청각과 시각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소리가 커지면 화면이 밝아지는 것도 이에 일맥상통하다. 청각이 시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앞에서 <Au Clair de la Lune>을 삽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첫 청각적 녹음이라는 것은 곧 인류가 처음으로 눈을 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청각은 곧 시각이기 떄문이다.


이러한 스탠스는 <아네트>라는 영화를 향해있기도 하다. 송스루 뮤지컬 영화답게 모든 대사가 음악으로 전개되는 <아네트>인만큼 청각적인 정보에 편중되어있을 테지만, 청각은 또 다른 시각이기에 <아네트>는 영화라는 매체가 자극하는 관객의 감각을 완전히 활용한다. 청각이 시각만큼 중요하고, 시각이 청각만큼 중요하다. 스팍스의 음악과 가사, 그리고 레오스 카락스의 연출 모두 <아네트>에선 같은 종류의 정보이다.



INT. THE VILLAGE MUSIC STUDIO - NIGHT 

IN THE CONTROL-ROOM: 

A man (Carax), sitting behind the mixing console, waiting for something to start on the other side of the windowpane. 


이제 우리는 레오스 카락스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우리를 사로잡는 건 초점이 나간 스틸 컷이다. 그러다가 점점 초점이 잡히고, 스튜디오 속 분주한 사람들을 밖에서 지켜보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글라스와 담배, 이는 레오스 카락스의 시그니처적인 미장센이다. <홀리 모터스>에서도 그랬듯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감독에게 있어 영화란 반영과 성찰의 도구이기 떄문인 듯하다. 어떤 내러티브 속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시켜 그 깊이를 풍부하게 하는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에서 감독 본인이 등장하는 것은 놀랍지만은 않다.


짚고 넘어갈 것은, 컷의 초반부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이 약간 불연속적이다. 애초에 초점이 나가있는 이미지로 시작했다면 이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더 천천히, 또 연속적으로 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더 스크린 속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이러면 그 뒤에 나오는 오버랩에서도 충격이 배가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편집도 그만의 느낌이 있다. 이는 필자의 아날로그적인 취향의 영향인 듯하다.



Close-up of VU meters on a mixing console: the needles react to offscreen sounds— instruments tuning up, feedback, amplifiers and mikes being plugged in and tested, chorus girl warming up, etc. 


각본에는 오버랩에 관련된 서술이 없지만 레오스 카락스는 클로즈업들을 하나하나 오버랩시켜 이미지를 전개한다. 이러한 클로즈업 몽타주는 종종 크래시 줌과 연계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작품들이 대표적인데, 이는 상황의 유머러스함을 살려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면의 리듬감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레오스 카락스의 클로즈업 몽타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몽타주’라는 의미 자체로, 시각의 파편을 산개시켜 압도적인 이미지를 연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버랩이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각 클로즈업은 녹음 직전 세션들이 조율하는 장면들인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밝기가 낮게 뭉개져 있으며, 소리가 들리면 밝기가 높아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앞에서 보았던 청각과 시각의 스탠스가 연장되는 것이다.



CARAX (to his young daughter, Nastya, sitting behind him) Tu viens Nastya? Ça va commencer. (Into the mike) So… May we start? 

SPARKS (offscreen) So may we start? High time to start… 

IN THE LIVE ROOM: 

Starting the song "So May We Start?": Hands on drums, hands on keyboards. 

SPARKS One, two, three, four!


레오스 카락스는 담배를 피우며 뒤편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이제 시작할 것이니 오라고 말을 건넨다. 이 여성은 레오스 카락스의 실제 딸로, <홀리 모터스>의 초반부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아네트>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독이 딸과 함께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자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오스 카락스가 스튜디오 안에 있는 스팍스와 세션에게 이제 시작하자고 이야기하면 스팍스의 보컬인 러셀 마엘이 각본에 나와있는대로 노래 첫 소절을 불러본다. 드럼의 트레블이 들리고, 이후 카메라는 녹음실 안에 있는 러셀을 보여주고 러셀은 카운트와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SO MAY WE START? 

SPARKS & CHORUS GIRLS 

So may we start? 

So may we start? 

It’s time to start 

High time to start 


스팍스의 키보디스트인 론 마엘이 등장하는 장면을 특히나 스타일리시하다. 론 마엘의 키보드는 우측 하단 코너에, 키보드를 치는 다른 세션은 좌측 상단 코너에 위치해있고, 론은 그의 키보드와 같이 검은색 바지, 넥타이와 흰색 셔츠를 입고 있고 위쪽 세션은 키보드 색에 맞춰 빨간 후드티를 입고 있다. 이 장면은 짧게 지나가지만 색감이나 구도 상으로 아주 인상적이다. 또한 카메라는 매우 정적이지만 <So May We Start?>의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론 마엘의 손은 아주 경쾌해 약간은 기계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후에는 코러스의 모습이 핸드헬드로 짧게 비친다. 이후에도 언급하겠지만, 이 코러스는 이후 극중 헨리 맥헨리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등장하는 코러스들이다. 


드럼의 모습을 보여주곤 다시 러셀 마엘의 클로즈업을 거쳐 밴드 전체의 롱쇼트로 흘러간다. 카메라가 뒤로 가면서 스팍스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러셀 마엘의 목소리 떨림이나 론 마엘의 코러스 (혹은 더블링)을 보아 둘은 실제로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롱쇼트에 도달할 때까지 관객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로 메일 사운드트랙 녹음 장면을 삽입한 것으로 인식한다.



Sparks put their coats on to go out of the studio. 

They hope that it goes the way —it’s supposed to go 

There’s fear in them all but they —can’t let it show 

They’re underprepared but that —may be enough 

The budget is large but still —it’s not enough 

INT. MUSIC STUDIO: CORRIDOR - NIGHT 

Sparks leave the recording studio, still singing… and the Chorus Girls join in. 

SPARKS & CHORUS GIRLS 

So may we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So may we start? 


<아네트>의 오프닝 시퀀스의 힘은 이 순간, 찰나에 강력히 발산한다. 단순한 녹음 장면같아 보였던 시퀀스 속 스팍스는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결국 이 시퀀스는 그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뮤지컬 장면의 일부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작품을 제작하고 이에 출연한 배우와 제작진들이 모두 나와 영화를 시작하며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관객은 이러한 분위기의 전환을 보며 몰입을 방해받음과 동시에 <아네트>의 오프닝 시퀀스에 깊숙이 빠져든다. 이는 다른 글에서도 설명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쉽게 말해 제 4의 벽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원테이크 프롤로그는 관객의 예상을 산산조각내는 영화의 첫 인사인 셈이다.


이러한 전환은 사운드적으로도 매우 깔끔하게 연출되었는데, 마엘 형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각자 앞에 있는 마이크로 수신받은 소스를 영화에 삽입하고, 자리에 일어나는 순간부터는 촬영 당시의 붐 마이크로 녹음해 소스를 마스터한 것으로 들린다. 일어나는 순간 보컬의 질감 차이와 헤드폰이 떨어지는 소리, 러셀 마엘이 스카프를 두르며 고개를 움직일 때 나오는 이펙트, 론 마엘의 목소리를 보면 중간에 두 목소리의 소스가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션의 연주는 끊겨있는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이는 아마도 시퀀스의 촬영이 끝날 때까지 녹음실에 있는 마이크로 실시간 녹음을 해 덧입힌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부분의 가사도 꽤 흥미롭다. “May we start?”라는 말은 이제 영화를 시작하는 제작진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화자는 <아네트>의 제작자가 될 것이다. 가사에 등장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이야기나, ‘예산 규모가 크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얘기는 스팍스가 제작자로서 관객에게 던지는 농담과도 같다. 스팍스가 등장하는 부분의 가사이기에 더욱 제작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스팍스와 코러스들은 녹음실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카메라를 맞대고 노래를 부른다. 이제 본격적으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The main actors (Adam Driver & Marion Cotillard) join in, and sing along. 

MAIN ACTORS, SPARKS & CHORUS GIRLS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It’s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High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스팍스를 비추던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패닝해 계단을 내려오는 두 주연 배우를 비춘다. 이때 배우들은 극 중 인물로 출연하는 것이 아닌, 배우 각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둘은 손을 잡고 스팍스와 코러스 무리에서 앞장선다. 스팍스가 문을 열고 나설때와 마찬가지로 각 배우의 이름이 타이밍에 맞춰 크레딧 형태로 등장한다. (각 이름의 색은 이후 각 배우가 맡은 극중 인물을 상징하는 색이다. 아담 드라이버는 초록색, 마리옹 코티야르는 노란색이다.) 이제 바깥으로 나온 출연진들은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EXT. MUSIC STUDIO - NIGHT 

They leave the building and continue singing outside, walking on the sidewalk. 

MAIN ACTORS, SPARKS & CHORUS GIRLS 

We’ve fashioned a world, a world —built just for you 

A tale of songs and fury —with no taboo 

We'll sing and die for you —yes in minor keys 

And if you want us to kill too —we may agree 

So may we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So may we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It’s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High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우선 오디오에 집중해보자. 아담 드라이버가 메인 멜로디를, 마리옹 코티야르가 화음 선율을 부른다. 거기에 촬영 당시 주변의 차들 소리와 경찰차 소리도 작게 들어가 있다. 아무래도 촬영 당시에 경찰이 교통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건데, 또한 각본에도 경찰차 소리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는 촬영장에서의 즉흥적인 연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담으로, <아네트>의 음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아담 드라이버의 약간 불안정한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에서도 아담 드라이버가 <Being Alive>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작품에서도 그렇고 <아네트>에서도 아담 드라이버의 보컬은 인물의 불안정하고 연약한 내면을 대사로 표현하는 듯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송스루 뮤지컬인 <아네트>에서는 모든 노래를 라이브로, 편집 없이 했기 때문에 목소리의 떨림은 일반적인 영화에서보다 더하다.


이 부분의 가사는 오프닝 넘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배우들은 관객에게 ‘당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놓았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아네트>의 세계관을 뜻하는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예술은 또 하나의 세계이기에 감독은 관객에게 선보일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노래와 분노의 세계’이며, ‘금기는 없다’고 말한다. 즉, <아네트>는 노래와 분노로 가득찬, 또 금기는 없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뒤이어 배우들은 ‘당신들을 위해 노래하고 죽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작중에서 앤의 모습이다. 앤은 오페라 가수로, 관객들 대신 죽음을 맞이하며 관객을 구원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가사는 배우들이 관객인 우리를 구원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뒤 ‘우리가 당신들을 죽이길 바란다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 구절과는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이다. 이 또한 작중 헨리의 모습을 표현한 가사이고, 코미디언인 헨리는 관객을 웃겨준다. 허나 <아네트>에서 헨리가 관객을 웃기는 것은 곧 관객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 또 관객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행위이기에 배우들이 우리에게 ‘당신들을 죽여줄 수도 있다’라는 것은 헨리가 작중에서 하는 일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부분의 가사는 이후 <아네트>의 인물들이 관객에게 하는 일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깊게 들여다보자. 왜 <아네트>의 출연진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일까. 우선 첫 번째로, <아네트>라는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예술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앤과 헨리는 모두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는 인물이며, 전자는 관객을 구원하고 후자는 관객을 죽인다. 이러한 공연자-관객의 구조는 예술가-관객의 구조와 닮아있다. <아네트>에서의 앤과 헨리의 역할은 예술 자체의 창작자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때 앤과 헨리가 공연으로서 관객을 구원하고 죽이는 것처럼 예술가 또한 예술을 통해 관객을 구원할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아네트>의 서사에 있다.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와 같이 <아네트>는 전반부에서 이후에 벌어질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나 표현 위주로 흘러가는 작품에서 중요한 상징들을 친절히 안내함으로서 작품 감상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


세 번째는 <아네트>의 구조이다. <아네트>에서 등장하는 무대 구조는 공연자-관객의 형태이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예술가-관객 형태의 전반적인 예술의 구조로 확장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아네트> 속에서 앤과 헨리를 보는 관객은 <아네트>를 감상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아네트>는 이중 무대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앤과 헨리는 <아네트>라는 작품 자체와 더불어 감독 본인을,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은 작품을 관람하는 우리를 닮아있다. 그렇기에 배우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앤과 헨리가 그들의 관객에게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앤과 헨리의 대조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헨리는 관객에게 진실을 말하고도 살아남기 위해서 관객을 웃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헨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결국 작품은 이 둘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 헨리가 앤에게 ‘I killed them’이라고 말하는 것도 ‘죽이는 행위’와 ‘웃게 만드는 행위’,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행위’를 동일시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헨리가 앤과 지휘자를 죽이는 것은 그들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앤의 공연은 항상 죽고 난 후 감사 인사로 마친다. 작중에서 앤은 관객들을 대신해 죽어준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이 구원은 거짓 구원이다. 헨리의 경우와 반대로, 앤의 경우에선 ‘죽어주는 행위’와 ‘구원하는 행위’는 모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 일반화시킨 경향이 있다. 큰 폭에서 이러한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배우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할 수도, 거짓을 말할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모든 예술이 그러하는 말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아네트>의 이중 구조를 통해 우리의 삶 속 깊숙한 곳에 침투한다. 제 4의 벽을 허물은 효과이기도 하다. 



Simon Helberg joins in. 

MAIN ACTORS, SPARKS & CHORUS GIRLS 

So close all the doors and let’s —begin the show 

The exits are clearly marked —thought you should know 

The authors are here so —let’s not show disdain 

The authors are here and they’re —a little vain


사이먼 헬버그까지 합류한다. 손을 잡고 있던 배우들은 이제 서로 팔짱을 낀 채로 당당히 걸어간다. 이 부분의 가사에선 제작진이 작가진을 지칭하며 쓴 말인 것으로 보아 이 넘버의 화자가 감독과 스팍스, 배우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사는 작가들이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아네트>의 각본을 함께 작업한 작가나 이전 레오스 카락스 혹은 스팍스가 만났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린다. 


노래를 부르는 무리들은 길을 따라 직진하다가 코너를 돌아 노란 조명을 마주한다. 여기에서 음악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Chorus Boys, Carax and Nastya, join in here. 

The actors and Sparks kneel down, as for a prayer. 

ALL 

Now… The music resounds and all —the flames are lit 

So ladies and gents, please —shut up and sit 

The curtains of our eyelids — lazily rise 

But where's the stage, you wonder 

Is it outside? Or is it within? 

Outside?… Within? 

Outside?… Within?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과 참여진들은 코너를 돌아 역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재밌는 포인트는, 론 마엘이 살짝 오른쪽으로 떨어져 무릎을 꿇는데, 옆에서 걸어오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그의 딸이 뒤에서 그 틈새를 채워 온전한 역삼각형 구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스크린의 구도를 정확히 계산했기에 보이는 흔적이다.

쇼트 속의 배우들은 전부 고개를 약간 들어 시선이 카메라 위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이 시선 처리는 이 장면의 미적인 감각을 살려준다.


여기에서의 가사도 의미심장하다. 특히 ‘outside, within?’은 위에서 이야기한 <아네트>의 이중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네트>가 던질 물음들이 과연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가, 혹은 스크린 밖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가. 우리는 여기에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반사적인 구조를 강조하는 듯이 가사는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음을 반복해 이야기한다. 



They ALL stand up and start walking and singing again: 

ALL 

So may we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So may we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It’s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High time to start 

May we start, may we, may we now start? 

(…) 


사이먼 헬버그의 리듬으로 음악은 다시 역동적으로 돌변한다. 카메라도 이에 따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무리의 걸음을 포착한다. 이제 프롤로그는 끝을 향해 달려가며, <아네트>는 시작을 향해 달려간다. 이어지는 브라스 라인은 감히 환상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넘버의 다이나믹한 무드를 배가시키며 관객에게 전율을 선사한다. 



Towards the end of the song, Adam and Marion change while walking and singing (trainees hand them their coat or jacket, a helmet, a wig, etc.) Still singing, the other singers watch as: 

—Henry McHenry (Adam) goes to a powerful bike parked on the sidewalk, puts his helmet on, and rides off 

—The Accompanist (Simon) walks away down the street 

—Ann Defrasnoux (Marion) gets in the back of a SUV (door opened by the driver). The car drives off. 

SPARKS Bye Henry! 

NASTYA Bye Henry, good luck. 

SPARKS Bye Ann… Bon Voyage! 

CHORUS BOYS & GIRLS Bye!… Bye-bye!… Good luck!… Bye-bye! 


이제 극은 곧 시작한다. 배우들은 연기할 채비를 마치고 자신의 첫 포지션으로 갈 차례이다. 이에 맞춰 각 배우들은 각자 배역에 맞는 소품을 제작진들에게 건네받는다.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모자를 쓰는 등.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촬영 현장을 떠난다. 헨리는 트레이드마크인 오토바이를 타고, 앤은 리무진을 타고, 지휘가는 걸어서 현장을 떠난다. 남아있는 스팍스나 레오스 카락스, 또 그의 딸과 코러스들은 현장을 떠나는 세 배우를 배웅한다. 카메라가 왼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비추는 것은 마치 연극 전 배우에게 무운을 비는 것과 같다.


재밌는 부분은 넘버가 잠잠해질 때쯤 첫 부분에서 들렸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다시 들리며, 경찰차가 ‘Do not try to start’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이 또한 즉흥적인 연출이라고 짐작하는데, 경찰, 즉 인간의 제도 자체를 상징하는 경찰차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넣었다는 것은 또한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소재가 된다. 그리고 스팍스가 앤에게 ‘Von Voyage’라고 하는 말이 크게 들리는데, 이는 이후 아네트가 해외 투어를 다니면서 나오는 넘버에서 반복된다. 일종의 이스터 에그를 심어놓은 셈이다.


이후 카메라는 왼쪽으로 패닝해 떠나는 아담 드라이버의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오른쪽으로 다시 패닝하여 마리옹 코티야르가 탄 차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원테이크는 마무리되고, 쇼트들이 편집되어 나타난다. 패닝 이후에는 무리 사이로 보이는 감독과 그의 딸을 심도 있게 비추는데, 떠나는 마리옹 코티야르를 따라 움직이는 레오스 카락스의 고개는 이상한 울림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며 카메라는 이를 그대로 담아냈다. 

이 쇼트를 끝으로 영화는 타이틀 로고를 보여주며 프롤로그를 마친다.



<아네트>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주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스팍스의 오프닝 넘버, 원테이크로 촬영된 연출, 그리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편집은 서로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완벽한 시너지를 냈고, 그대로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다. 전에 필자가 데렉 저먼의 <비트겐슈타인>의 엔딩이 최고의 엔딩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와 같이 <아네트>의 오프닝은 영화를 시작하는 완벽한 방법을 선보인 듯한 느낌이다. 아주 섬세하게 가공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날것인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내가 여태껏 본 최고의 오프닝이었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6217926/mediaviewer/rm1124003841?ref_=ttmi_mi_all_sf_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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