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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Sep 06. 2023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5. 스포츠카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3040 모임 친구들과 세 번 정도 만난 이후, 다 같이 모여있는 단톡방은 매일 쉴 틈 없이 울려댔다. 가끔 전시회 정보나 쇼핑몰 할인 정보를 공유하는 등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활발히 대화하며 친해지는 시기였다.


그 무렵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있었다. 얼리버드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몇 개월 전 샀던 티켓인데, 원래 엄마랑 가려고 2장을 구매했었다. 엄마랑 시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R이 생각났다. 같이 전시를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다음 모임 때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오랜만이라 이것도 꽤 긴장이 되었다. 나랑 아직 덜 친해서 같이 보러 가기 싫으시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임 날 R의 옆자리에 앉은 김에 혹시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기획전시를 봤는지 물어봤더니, 아직 못 봤지만 보러 가고 싶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럼 혹시 이번 주 일요일에 저랑 보러 가실래요? 제가 얼리버드 티켓 2장이 있는데 기한이 일요일 까지라서요.”


“오, 정말요? 일요일 전 좋아요. 몇 시에 만날까요?”


“일요일 아침 오픈런이죠! 그래야 사람이 적거든요."


"역시 J님, 뭘 좀 아시네요. 좋아요!"


내 첫 데이트 신청이 먹혔다. 기분 좋게 주말을 맞이하던 중, R이 개인 톡으로 물어온다.


"단톡방에 내일 전시 보러 올 사람 있는지 물어볼까요? 인원 더 있으면 맛있는 거 먹을 때 나눠먹기 더 좋잖아요."


"그럼요, 좋아요! 제가 단톡방에 남길 게요."


나랑 단 둘이 만나는 건 아직 좀 부담스러우셨던 걸까 싶긴 했지만, 나도 살짝 걱정한 건 사실이기에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단톡방에 일요일에 같이 전시회 갈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딱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일요일이 되었다.

 



아침 9시쯤 남부터미널 역을 향해 가고 있는데 단톡방이 울렸다.


"혹시 저도 오늘 전시 벙개 가도 돼요?"

K였다.


“오, 그럼요. 10시까지 오실 수 있으세요?”


“네, 10분 정도 늦을 수 있는데 얼른 갈게요”


“네네, 전 좀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있을 거니까 천천히들 오세요.”


10시 10분쯤 R과 K가 모두 도착했다. 늘 퇴근 후 저녁에만 만나던 분들을 밝은 일요일 낮 시간에 만나니까 이상한 기분이었다. 만나서 근황 토크도 없이 바로 전시부터 보러 들어갔는데, 큰 기대 없이 본 전시는 생각보다 좋았다. 한 시간 정도 관람한 뒤 나와서 엽서 2장을 구매했다.

 

“밥은 이 앞에 두부전골집 갈까요?”


“좋아요. 전골이랑 해물파전 하나 주문하죠.”


밥을 먹으며 K가 갑자기 오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원래 올까 말까 계속 고민했는데, 어제 술 약속이 있었거든요. 아침에 깰지 자신이 없어서 깬 다음 결정하려고 했는데, 술을 생각보다 많이 안 마셔서 올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둘이었으면 추가 메뉴를 주문 못할 뻔했는데. 덕분에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네요.”

 

밥을 다 먹을 즈음 R이 다른 모임 때문에 3시쯤 종로구로 가야 하니, 그전에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했다. K가 본인이 차를 가져왔으니 어차피 이동하는 김에 약속장소 가는 방향으로 이동해서 예쁜 카페로 가자고 했고, 그때 R이 가보고 싶던 찻집이 있는데 가도 되냐고 물었다. 지도를 보여주며 찻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미술관처럼 멋진 건물 외관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K도 나도 기꺼이 좋다고 말한 뒤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K가 두 분 중 한 명에게 미안하다며 말해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런!

차가 2인승 스포츠카다.

뒷좌석이 있긴 하지만 몸을 좀 구겨서 타야 했다.

내가 불편한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바로 먼저 "제가 뒤에 탈게요. R님이 앞에 타요. 저 앞보다 뒷자리가 편해서 그래요."하고 말했다.

뒤에 타고 보니 내 키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천장에 조금 닿는다. K가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괜찮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내심 조금 웃기기도 했다. 일요일 한낮에 이제 겨우 세 번 만난 사람들과 스포츠카 뒷좌석에 타서 서초구에서 종로구까지 이동하는 이 과정 자체가 말이다.

 

3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찻집은 자리가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운 좋게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인스타 핫플이라 그런지 메뉴가 모두 비쌌지만 공간이 워낙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K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문 밖으로 나가는 와중에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쾅!"


매장 안 모두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움직였고, 거기엔 전화에 집중하느라 유리가 있다는 걸 모르고 유리문에 얼굴을 쾅하고 찧은 K가 있었다. 나와 R은 너무 웃겨서 큭큭큭 거리며 숨이 넘어가게 웃었는데, 다른 손님들은 차마 대놓고 웃지 못해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나중에 보니 그 유리에 K의 이마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어서 그마저도 너무 재밌었다. 두고두고 놀리기 위해 R과 함께 이마 자국 사진을 찍어 놓기까지 했다. K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가 놀리는 게 싫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차를 마시며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 R이 다음 약속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녀를 약속 장소에 내려주고 K가 물어온다.


“J님은 어떻게 가시는 게 편해요?”


“전 그냥 K님 가는 이동방향에 있는 아무 전철역에나 내려주세요. 거기서부터 알아서 갈게요.”


“음.. 제가 와인을 사러 신림동으로 갈 예정인데, 2호선 괜찮으세요?”


사실 신림동이면 여기서 다시 멀리 가게 되는 거였다. 그렇지만 딱히 다른 약속도 없었고, 그와 이야기나 좀 더 하다가 갈까 싶어서 흔쾌히 좋다고 했다.

 

처음으로 K와 둘이 남겨졌다.

 

유리창 한가운데 선명한 K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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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을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와 일부 이어지는 조니워커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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