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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Dec 20. 2022

여자 혼자 사는 걸 들켜선 안돼

1.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의외의 이유


자취에 대한 로망, 당연히 있었다.

J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한 번도 떨어져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결혼을 하며 바로 남편과 함께 살다 보니 내가 자취를 하게 되는 순간은 남편과 사별을 하면 가능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혼이라는 사건이 J의 삶에 등장하면서, 난데없이 준비 없이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여섯 살.

자취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혼자 사는 삶이 시작되었다.




혼자 처음 살게 된 동네는 전혀 연고도 추억도 없는 낯선 지역이다. 경기도의 구도심 중 하나를 찾게 된 이유는 오직 회사와의 거리, 직주근접 때문이었다.

회사까지 환승 없이 갈 수 있는 지역 중 그녀의 예산에 들어오는 지역은 많지 않았는데, 그중 대단지 아파트에 경치가 좋고, 집 구조가 마음에 드는 집을 골랐다.

처음으로 갖게 된 단독명의의 내 집. 전월세를 건너뛰고 매매로 자취를 시작하다니. 이보다 우아한 돌싱이 또 있을까. J는 혼자 흐뭇해하며 잠시 우쭐함에 젖어보기도 했다.

누가 보면 20억 강남 아파트라도 산 줄 알겠다 싶지만, 현실은 명의만 그녀의 것 일뿐 융자가 절반 가까이인 은행과 공동소유인 집이다.

그마저도 작고 소중한 월급에서 나갈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려 40년 대출을 받은 나(와 은행)의 집.


매매계약을 하러 간 건 계약금을 넣은 7월로부터 3개월이 지난 10월이었다. 아직 전남편과 함께 살고 있을 때였는데, 계약을 한 뒤 바로 인테리어 공사를 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전체 인테리어 공사를 해 본 적은 없다. 다행히 늘 상태가 나쁘지 않거나 이미 인테리어가 된 집, 또는 신축 아파트에 살았었기에 간단한 도배장판 공사 정도만 하고 들어갔었다.

그러다 보니 집이 그녀의 취향대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구해줘 홈즈를 즐겨보고, 오늘의집 앱을 통해 자기 취향인 인테리어를 스크랩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뿐이다. 마음에 드는 타일과 자재를 쓰려면 전체 비용이 5천만 원은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타를 맞으며 상상을 멈추곤 했다. 인테리어 비용에 1억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건가 싶어 부러움을 넘어 경외심이 들었다. (J와 같이 일반 서민은 1억의 돈이 있다면 인테리어가 아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지역의 더 좋은 아파트를 매매하는데 투자하지 않을까?)


요즘 부동산 뉴스에서 신나게 두들기고 있는 소위 '영끌족' 중 하나인 J에게 인테리어를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매우 한정적이다. 25평 방3화2 아파트를 3천만 원 대에서 끝내고 싶었다.

여기저기 견적을 받아 비교해보았는데 최소 4천만 원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제일 비싸다는 새시 교체도 안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견적을 받아보니 3천만 원 대로 견적이 나오고, 대화할 때 ‘아’ 하면 ‘어’ 하는 식으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잘 이해하는 업체와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으로 받은 견적이라 인테리어 상담을 위해 업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사 갈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의 멀지 않은 곳이었다.

C 대표는 예상보다 젊은 분이었다. J와 5~6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 젊은 남자 사장.

J는 혹시 몰라서 신혼집 인테리어를 하는 거라고 말해둔 상태이다. 여자 혼자 살 집이라는 걸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남편 되실 분도 같이 오셨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길래, 워낙 바빠서 시간 내기가 어렵고 다 내 취향대로 해도 된다고 허락받은 상태라고 둘러댔다.

상담은 원활히 진행되었고, 예상대로 J가 원하는 느낌을 잘 이해하고 더 좋은 제안도 해주는 센스와 정성이 있는 업자였다. 예산도 크게 초과하지 않을 것 같아서 계약금과 잔금 스케줄을 서로 맞춘 뒤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총 공사기간은 4주. 더 빨리 했으면 했지만 자재가 충분히 건조되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하셔서 여유 있는 일정으로 하기로 했다.

공사기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방문해서 현장을 틈틈이 확인할 생각이었다. 회사가 바쁜 시기였지만 이런 공사를 할 때는 자주 방문해서 확인하고 있다는 걸 업자에게 티를 내줘야 공사를 더 꼼꼼히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방문하면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이었고, 현장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1시간 30분은 걸리기에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4주의 공사기간이 지나고 이사 전 날이 되었다. 입주청소가 끝난 뒤 마무리 실리콘 작업을 위해 C 대표가 혼자 일하고 있는 집에 퇴근 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차, 들어서자마자 눈앞의 물건을 보고 실수했음을 감지했다.

J는 앞으로 평생 혼자 살 생각이니 큰 침대는 필요 없겠지 싶어서 슈퍼싱글 사이즈 매트리스를 구매해서 배송시켜놨었다. 그게 하필 오늘 문 앞에 있었는지 C 대표가 안에 들여놔준 것 같다. 신혼집이라고 거짓말했었는데 슈퍼싱글이라고 버젓이 크게 적힌 박스가 배송되었으니.. 집도 어차피 넓고 공간도 남아도는데 그냥 퀸사이즈를 살 껄.. 뒤늦은 후회와 함께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마친 그녀의 집은 예상대로 만족스러웠다. 공사 하자도 특별히 보이지 않았고, 몇 가지 작은 옵션이 빠져있는 걸 확인해서 그 부분은 내일 마저 와서 달아주기로 했다.

그 내용까지 확인한 뒤 잔금을 계산해서 드리고 계약관계가 종료되었다.

하자보증보험을 들 거냐고 묻길래 그럴 거라고 했더니 생년월일을 묻는다. 보험을 들려면 필요하다고.

J의 생년월일을 알려줬더니 C 대표가 놀라면서,

"어? 생각보다 많으시네요? 저는 저보다 되게 어리신 줄 알았어요. 제가 8*년 생이거든요."

라면서 묻지도 않은 TMI를 얘기한다. 그 후로 나이에 다한 얘기, 자기가 사업을 하면서 요즘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 등등 계속해서 묻지 않은 TMI를 말해온다. 느낌이 벌써 싸하다 싶었다.

그렇게 10여 분 마무리 작업을 더 하고 장비를 챙기던 C 대표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시간이 늦었는데, 저녁은 드셨어요? 아직 안 드셨으면 저랑 같이 식사하실래요?"


응? 이건 무슨 소리인가.

그동안 여러 인테리어 공사를 해봤고 다른 분들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같이 식사를 하자는 말을 꺼낼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너무 이상해서 "아뇨, 집에 가서 가족들하고 먹을 예정이라서요."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아 그러시겠어요? 그럼 지금 집으로 가시는 거면 역까지 차로 태워다 드릴까요?"

"아뇨, 집 좀 더 살펴본 다음 가려고요. 먼저 가셔도 돼요."


C 대표가 집을 나선 이후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 사장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J가 혼자 살 집이라는 걸 들킨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 물어봐도 그건 100% 수작질을 건 거라는 피드백이다.

물론 그냥 던져본 말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혼자 살게 될 텐데 시작부터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그냥 작업을 건 것도 아니고, J가 앞으로 살 집을 공사한 사람이다 보니 우리 집을 정확히 알고 있고, 이름과 전화번호도 정확히 알고, 과한 상상일 수 있지만 이 집 어딘가에 몰카나 도청기를 설치해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아닐 거라 믿고 싶지만, 세상에 그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니 조심해서 나쁠 건 언제나 없다.)

이 얘기를 J의 언니에게 했더니, 앞으로 그분이 집에 와서 공사를 하거나 할 일이 있으면 자기한테 꼭 연락하라고 같이 있겠다고 한다. 그리고 몰카를 탐지하는 필름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혹시 몰라 그분이 올 때 현관 선반에 장식해놓으려고 전남편과의 결혼사진 한 장을 액자에 준비해놓기까지 했다. J는 이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현타가 조금 왔다.




혼자 사는 삶의 시작.

첫 번째로 감수해야 할 건 여자 혼자 사는 걸 들켜선 안된다는 불안감이었다. J의 취향대로 예쁘게 완성된 내 집에서 우아한 혼삶을 시작한다는 기쁨과 동시에, 앞으로 이런 지레 겁먹는 상황들이 자주 생길 수도 있다는 걱정이 함께 찾아왔다.


걱정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J의 혼삶이 시작되었다.


공사하는 동안 끝도 없는 결정과 선택을 하느라 몸보다 정신이 지쳤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다음엔 신축으로 이사가리라 다짐했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2회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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