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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Dec 26. 2022

서울 촌놈의 경기도 적응기

2. 어서 와, 경기도는 처음이지?


J가 집을 매매해본 건 무려 3번째다.

결혼 후 남편과 공동명의로 2번 매매를 했었지만, 단독 등기를 친 온전히 자기만의 집은 처음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그녀가 집을 구할 때 가장 신경 쓴 건 직주근접이었다. 물론 회사 근처면 가장 좋겠지만, J가 근무하는 지역은 서울에서도 집 값이 가장 비싼 동네로 손꼽히는 부자동네라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면 회사까지 한 번에 가는 지하철 노선 중 편도 40분 이내의 지역을 찾아봐야 했다.

그렇게 고른 지역이 지금 살게 된 경기도의 한 구도심 지역이다. 광교, 위례처럼 신도시라면 참 좋겠지만 역시나 그 동네에도 그녀의 예산으로 갈 수 있는 집은 없었다. (빌라나 주택을 살 생각은 없었다.)

경기도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대출 때문이었다. 서울은 전 지역이 투기지역으로 묶여있어서, 조정지역 정도로만 골라도 대출을 최대 60%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까.


경기도를 매매할 때 당연히 걱정이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서울이라는 부동산계의 불문율(?) 같은 게 있었으니까. J의 부모님도 서울에 집을 사는 게 좋지 않겠냐며 걱정하셨다.

하지만 J는 꽤 고집이 있는 편이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편이라 그대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이 훗날 틀리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 한 결정이어야만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결정한 집은 집 자체는 참 좋았다.

문제는 동네였다.

처음 뭔가 잘 못되었음을 깨달은 건 이삿날 J의 언니와 함께 끼니를 때우려고 배달앱을 켠 순간이었다.

배달앱을 켜면 보통 그 동네의 인기 맛집이 상단에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동네는 켜는 순간 롯데리아와 피자헛이 최상단에 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동네 맛집이 없다는 소리다.

생각보다 그 충격은 오래갔다.

이혼 후 한동안은 요리 안 하고 배달이나 시켜 먹을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될 상황이다.


이사 후 처음 한 달 동안은 주말마다 동네를 산책했다. 구석구석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편의시설이 있는지, 위험한 동네는 없는지 살펴야 했으니까.

하루 12000보 이상 걸으며 열심히 걸어 다녔다. 언덕이 많은 동네라서 저절로 운동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배달앱에 이어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여자가 혼자 다니기에 무서운 골목이 꽤 많았던 거다. 도우미를 부르는 노래방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었고, 수상쩍은 여관촌이 있는 골목도 있었다.

경기도 구도심은 이런 느낌인 건가 싶었는데, 다른 구도심을 안 가봐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편의시설의 질과 양도 현저히 떨어짐을 느꼈다. 맛집이 없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기대보다 더 없었고, 그나마 맛집을 찾아가려면 집에서 좀 더 떨어진 도심까지 가야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숨은 맛집 발견은 커녕, 안 숨어있는 맛집도 보이지 않는 지경이었다.

편의시설도 꼭 필요한 것들은 있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좁았다. 버스 배차간격은 빠르면 5분 내외였지만, 절반 가량은 20분 이상이라 한 번 버스를 놓치면 그 날은 지각이었다.




매매 전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이사한 지 2개월도 안돼서 들기 시작했고, 부동산 앱을 켜보기까지 했다.

주변에서의 조언을 왜 더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인 한 명 없는 낯선 동네 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남은 2년을 어떻게 버티나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J를 휘감았다.


하지만 이런 뒤늦은 후회와 자책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가짐을 바꿀 수밖에.


실거주 2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최소 2년은 이 경기도 구도심 생활을 즐겨야 한다.

서울에서 누리지 못할 일들을 해볼 작정이다.


가장 기쁜 일은 집 근처에 시립아트센터가 있는데 서울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J는 평소 클래식 공연과 전시회를 보는 걸 좋아해서 이보다 좋은 문화혜택은 없었다.

그리고 한강공원에 비해 훨씬 덜 붐비는 하천길이 근처에 있었다. 러닝을 뛰기 딱 좋은 길인데, 한강공원보다 러닝 길이 훨씬 넓어서 뛰기 좋았다.

산이 가까운 것도 무척 좋다. 집에서 등산로가 바로 연결되는 놀라운 혜택(?)을 가지고 있으니 수시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촌놈 J의 경기도 적응기는 이제 시작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지만, 까짓 거 이혼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 싶다.

‘인생의 고난을 겪어본 자는 무서울 게 없는 법이지.’

라며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로 살아보려 한다.

조금만 나가면 교외 대형 카페가 많은 건 정말 좋다. 빵순이에게 최고의 복지다. 요즘은 주말에 카페가서 글 쓰는 재미에 빠져있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2회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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