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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Dec 29. 2022

2주 동안 청소기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3.혼자 사는 집을 청소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인간 2명과 고양이 2마리가 살던 가정에서 청소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상이었다. 하루에 최소 1번은 해야 하는 빼먹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였다.

매일매일 털을 뿜어대는 고양이들 덕분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인간들은 매일 청소하고 환기하며 강제로 깨끗한 집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J의 전남편은 청소에 진심인 편이라 J가 하루 정도는 청소 안 해도 되지 않냐고 유혹해도 청소를 거르지 않았다. 지나치게 성실한 배우자가 가끔 불편할 때가 있었지만, 청소를 알아서 열심히 하는 남편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이혼 후 J가 살게 된 집은 이혼 전과 똑같은 방3 화2(방 3개에 화장실 2개라는 뜻의 부동산 은어) 구조로 일반적인 2~4명 가구가 살기 좋은, 다시 말해 혼자 살기엔 너무 넓은 집이었다.

J는 혼자서도 넓은 집에 살면 좋지 뭐,라고 생각하며 큰 집을 계약했는데 혼자 청소를 하게 되니 얘기가 좀 달라졌음을 느꼈다.


주중에는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집을 비우고, 저녁에 돌아와서도 3~4시간만 활동하다가 잠이 든다. 그마저도 저녁약속이나 야근을 해서 늦게 들어오면 정말 씻고 잠만 자는 정도로 집을 이용하게 되었다. 주말에도 집에 가만히 붙어있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J가 집을 이용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에 안 붙어 있더라도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 혼자 살기에 너무 넓은 집을 청소할 사람은 J 자신 밖에 없다는 거다.


처음엔 어차피 이삿짐도 계속 풀고 새 가구를 들이는 과정이라 청소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 후 2개월 정도 지나니, 이제 어느 정도 살림은 모두 갖춰졌고 루틴 하게 청소를 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청소를 하겠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J에게 들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만 보기엔 집은 늘 깨끗했으니까. 짐만 제자리에 두고, 쓰레기만 휴지통에 잘 버리면 집이 어지러워질 일은 없었다. 굳이 청소기와 걸레질을 매주 하고, 화장실을 매 주 청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1주, 2주, 청소를 안 하고 버텨봤다.


놀랍게도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집은 역시나 계속 깨끗했다.

'뭐야, 이 정도면 한 달쯤 청소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 자신만 모르는 척하면 약간의 먼지와 머리카락만 돌아다닐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게 제 자리에

모든 게 변화 없이

이건 마치 J 본인의 삶과 같다고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고요히 평화롭게 잔잔히, 그러나 서서히 낡고 병들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끝은 부정적이 생각이 드는 게 좋지 않은 신호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도, 심지어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속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번져나갔다. 이혼 후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한 동안 J에게 생긴 안 좋은 습관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고, 이래선 안 된다고 여기며 수시로 생각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소가 그런 역할을 해줬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뒤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통을 비웠다. 2주 간 쌓인 먼지는 생각보다 적었으나 없지는 않았다.

물걸레를 적신 뒤 밀대로 걸레질을 했더니 방구석 모서리에 숨어있던 먼지가 물걸레에 묻어 나왔다. 멀리서 보면 마냥 깨끗해 보이던 바닥이었는데 구석을 잘 들여다보면 먼지가 쌓이는 모습이 마치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넓은 거실과 침실을 그렇게 청소하고, 하루에 10분도 사용하지 않는 서재와 옷방도 마찬가지로 청소했다.

화장실도 빼놓지 않았다. 혼자 쓰는 욕실이라 당연히 깨끗했지만 락스 성분이 있는 세정제로 청소를 하니 그 락스 냄새 덕분에 왠지 모를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완전히 집 전체를 청소하는 데는 한 시간이 꼬박 들었다. 세탁기 돌리기와 분리수거는 할 힘이 없어서 평일 저녁에 해야겠다 싶었다.

이런 일련의 청소 과정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작은 성취감이 들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보기엔 똑같은 집 상태지만, 그녀 스스로는 알고 있다.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집을 청소하는 게 내 머릿속을 청소하는 효과도 있구나.'하고 새삼 느꼈다.

게으름을 부릴 때는 몸은 편해도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마음이 불편했는데, 청소를 하고 나니 부지런한 자신에게 뿌듯함과 대견함이 들고, 오히려 일주일간 청소 생각 안 하고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생각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J는 2주 간 청소를 안 한 덕분에 인간 혼자 사는 집은 생각보다 많은 먼지를 만들어내진 않는다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경험치를 추가했고, 대신 그만큼 마음속 먼지는 천천히 쌓여간다는 별 거 아닌, 그러나 앞으로 잊지 말아야 할 단순한 깨달음도 얻었다.


워낙에 혼자 살아보는 건 처음이라 별 거 아닌 일상에서도 새로운 발견이 찾아온다. 이런 소소한 인생 경험치를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자취만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잠 결에 베란다에 나왔다가 화분을 걷어차버렸다. 얼른 치워야지 하며 미룬지 1주일 째. 사실 여전히 청소는 귀찮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2회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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