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雨期)에는 귀가 예민해진다. 비가 넘쳐 방안을 적실까 봐. 못 듣고 넘기면 자라처럼 물속 잠을 자게 될까 봐. 수중 호흡이 안 되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잠을 청해야지. 포자(胞子)처럼 퍼지는 호흡, 여긴 호흡을 나눌 인간도 없어서, 난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뻐금거리지만 다행이야, 벽지 가득 곰팡이를 피워내잖아 내가. 불운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내 능력이니까, 한 떨기 꽃으로 피는 건 못하니까, 대량증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아직 나 그 정도로 퇴화(退化)하지는 않아서 햇볕은 감지하지도 못하는 두 눈을 뜨고 (눈을 떠봐야 보이는 건 종아리뿐이잖아!) 그래도 다행이야, 태양에 약한 시력은 어둠이 보호해 주고 있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파보면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더 깊이깊이 파 내려가면 이 기생충 같은 빛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내려가면 나는 정말로 이 어둠만을 원할 수 있을까. 아직도 땅 위로 올라가려 하고, 뜨거운 8월의 태양에 입 맞추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아직 변신(變身)하지 않은 게다. 옆구리에 썩은 사과를 끼고 갑각류의 피부를 한 채, 폭염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습기는 방안을 맴돌고 아, 또 한 가지 생각이 부화하려 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 그것이 가장 위험하다. 총총 빗소리 대신 벌컥벌컥 귀에 소주를 붓는 시간, 조금 더 퇴화를 꿈꾸는 시간, 내 두 다리는 이제 더 이상 중력을 견디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