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흐린 색이다. 흙색이라고 할까. 아니면 잿빛이라고 할까. 평범한 하늘 아래, 그러니까 회색빛 하늘 아래 사람들은 강물에 몸을 씻는다. 분명히 크지 않을, 시시콜콜한 죄들을 가져와 강물에 씻어버린다. 화장(火葬)을 마친 누군가의 유골도 그곳으로 떠내려간다. 아무개의 삶의 마지막 흔적과, 너무 작아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도 못할 죄, 어디에도 말 못 할 욕망들이 강물에 뒤섞인다. 그리하여 강은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뱅골만에 이른다. 발원지는 히말라야. 한자로는 항하(恒河)라 하는데, 불교에서 ‘많고 많은 것’을 뜻하는 항하의 모래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곳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한다. 해외에 한 번도 못 가본 나로서는, 항하는 그저 상상 속의 강일뿐이다. 인도(印度)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아직 가보지 못했다. 어릴 때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으며 가지게 된 꿈이었다. 걸핏하면 기차가 연착하고, 뭐라도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기 십상이고,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허허벌판에 내려 볼일을 봐야 하는, 불편함과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여행. 그것이 내게는 오히려 낭만으로 여겨졌고, 나이가 들수록 이곳에 없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가 되어온 셈이었다.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이미 미어터지는 2호선 전철 속으로 몸을 마구 밀어 넣어야 할 때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퇴근 시간, 1분 1초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빨리 저녁을 먹고, 빨리 집안일을 해치운 다음, 빨리 샤워를 하고, 빨리 잠자리에 누워, 빨리 유튜브를 켜 빠르게 도파민을 충전한 다음, 빨리 잠을 청해야 하는 삶. 그래봐야 욕망은 꿈틀거려 잠자리는 뒤숭숭하고 다음 날 피로를 그대로 안고 또다시 전철 속으로 나 자신을 밀어 넣어야 한다. 가끔은 그 글러먹은 순환을 어떻게라도 끊고 싶어서, 갠지스는 아니라도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도가 아니라) 절이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눈치를 보며 하루 연차를 내고, 금요일과 주말을 붙여 템플 스테이를 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절 홈페이지에는 오후 2시까지 들어와 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12시 즈음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뭘 좀 먹을까 터미널 근처를 돌아다녔다. 1시에 사찰로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있다고 하니 시간은 넉넉했다. 평일이라 읍내는 한산했다. 고깃집과 순대국밥 집이 눈에 띄었으나 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결국 어느 김밥집으로 들어가 김밥 한 줄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어느 한적한 동네 카페, 영어로 ‘카페 스토리’라고 적혀 있는 가게로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섯 개 테이블이 전부인 곳. 창가에 세 개. 안쪽에 두 개. 주인아주머니는 펌을 준 머리를 커다란 집게핀으로 단정하게 정리한 모습이었다. 오른눈 밑에는 작은 점이 하나 있었다. 아주머니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음료를 건넸다. 나는 음료를 들고 창가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창가의 다른 테이블에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을 재생하자마자 강렬한 사운드가 이어폰으로 흘러들어온다. 크리드(Creed)라는 밴드의 “Full Circle”이란 앨범. 첫 곡부터 강렬하게 시작한다. 허스키한 보컬의 목소리, 드라이브가 최대로 걸린 기타 소리, 찰지게 적재적소로 들어오는 드럼, 이 전체를 그루브 하게 감싸는 베이스 소리. 한때는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 담긴 소리들.
고등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드럼을 연주했다. 프로 뮤지션을 지망했다. 지금은 손 놓은 지 3년 정도. 지금도 가끔 집에 있는 고무 연습대를 드럼 스틱으로 칠 때가 있지만, 그것도 가장 최근이 세 달 전이었다.
한창 드럼에 빠져있을 때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프로 뮤지션으로서 화려한 무대 위에 설 날을 꿈꿨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내가 재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은 음악 따위의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기에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던 것일까.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시고 전봇대 옆에서 구토를 하다 고시원방으로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를 깜깜한 방에서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음을 깨닫고, 학창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고이 접어, 나의 갠지스 강 위로 흘려보냈다. 이제는 너무 멀리까지 흘러가, 도저히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꿈. 그래서 다시 잡아보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이렇게 이어폰으로 ‘음악의 장벽’을 만들어, 혼자만의 콘서트를 즐기는 것이 전부다. 여전히 드럼을 치던 버릇이 남아 있어, 두 발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베이스 드럼 비트와 하이햇 심벌에 맞춰 들썩거린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했을 것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은 같은 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앞머리를 반듯하게 자른 여자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도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때리며 까르르 웃었다. 세파(世波)가 조금도 묻지 않은 두 사람. 나는 그들을 보며 살짝 질투를 느꼈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두 사람 모두 패딩 점퍼를 입고, 아래는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편안한 차림이었다. 남자는 검은색, 여자는 하얀색 패딩 점퍼. 바둑돌 같은 두 사람은 편안한 대국을 하듯, 표정만으로 계속 행복을 직조해내고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반 정도 남기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절로 직행하는 버스가 있었다. 1시 출발인 버스는 5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나는 차창으로 이 고장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은 내가 군생활을 한 곳이었다. 2년 정도를 머무른 곳이었기에 익숙한 고장이다. 인간이란 역시 낯선 곳보다는 익숙함에 끌리는 존재일까. 이틀의 휴가 기간을 나는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지나간다. 낮은 산과 황톳빛 들판, 그 사이로 보이는 외딴 소나무와 무덤, 낮은 지평선 위로 낮게 내려와 있는 푸른 하늘. 모난 곳이 없는 풍경이다. 차가 어느 정도 달리고 왼쪽으로 작은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이라기보다는, 개천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겨울이라 수량은 풍부하지 않았다. 강을 끼고 달리던 버스는 오른쪽으로 꺾어 사찰 입구로 들어섰다. 5분 정도를 여유롭게 달려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했고, 유일한 승객이었던 나는 버스 기사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