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 스님 한 분을 붙잡고 템플 스테이를 왔다고 말하니, 덩치가 조금 큰 스님은 대웅전 뒤쪽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합장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나는 스님이 알려준 곳으로 가보았다. 아담한 한옥이 있고 한쪽에 사무실로 보이는 방이 하나 보였다. 절의 종무소(宗務所)인 모양이다. 열려있는 문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머리를 뒤로 묶은 젊은 아가씨가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템플 스테이 하러 왔는데요.”
“아, 템플 스테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유인우요.”
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잠시 후에 여자는 내 이름을 찾았는지 서류 한 장을 프린트하고 컬러 팸플릿과 함께 인쇄된 종이를 건넸다. 종이에는 템플 스테이 안내 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건넨 팸플릿에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컬러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종달새처럼 가볍고 빠른 몸짓으로 내게 방을 안내해 주었다. 그녀를 따라간 곳은 따로 떨어진 별채였는데 방이 한 개만 있었다. 이미 난방이 되고 있었는지 문을 열자 온기가 훅하고 얼굴을 덮쳤다.
“차담(茶談)에 참가하실 거죠?”
문간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그녀가 물었다.
“차담이요?”
“참가형 템플 스테이로 신청하셨죠? 3시에 스님이랑 차담이 있는데요. 차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요. 꼭 참가하지 않으셔도 되기는 하는데, 스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니까, 참석하는 걸 추천드려요.”
밝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키가 무척 작은 여자였는데 절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달리, 가만히 있어도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네. 참석할게요.”
뭐가 뭔지 몰라 나는 어물쩍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들고 있는 수첩에 뭔가를 적더니, “그럼 안에서 쉬고 계세요. 시간 되면 제가 와서 안내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서너 사람이 충분히 누울 수 있을 듯한 방에는 욕실이 하나 딸려 있었고, 방 한쪽 구석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나는 의자를 꺼내 그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욕실로 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건조해서 그런지 입 아래쪽이 터 있었고 입술도 푸석해 보였다. 축 처진 눈 아래로는 다크서클이 내가 보기에도 확연했다. 어중간하게 자른 앞머리는 눈썹 조금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드럼을 칠 때는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열심히도 색깔을 바꿨고, 짧은 앞머리에 뒷머리만 길러 꽁지로 묶고 다닐 때도 있었다. 평범한 게 싫었고, 늘 자신이 특별하며, 더욱 특별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드럼을 연주하기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특별해질 것이라고 여기던 날들.
그런데 지금 거울 속 남자의 모습은 얼마나 평범한가. 격무에 시달린,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버린 평범한 샐러리맨이 거울 속에 있었다. 나는 괜히 손으로 벌써 거뭇하게 수염이 올라온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때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중년 특유의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네자, 나 역시 최대한 여유로운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그는 방구석 책상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두고는 잠시 방을 둘러봤다. 보일러 컨트롤러를 잠시 쳐다보고, 욕실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본 후, 멋쩍은지 괜히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따뜻하네요?”
“네. 그렇네요. 생각한 것보다 더…….”
템플 스테이 신청을 할 때 본 것 같다. 혼자 쓸 수 있는 독방이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방이 있는데, 함께 쓰는 방이 가격이 더 저렴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그걸 골랐는데, 그래서 이 남자가 이 방에 있는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남자와 나는 어색하게 한 방에 앉아 있다가, 그럴 때면 당연한 흐름으로 서로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의 이야기는 묻어둔 채,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이는 서른둘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에 살고 있다는 말도 보탰다. 그는 나이는 서른일곱이고 법원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감규진이란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말했다.
“도(道)라는 거 있잖아요? 신선들이 하는 거. 기(氣)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장풍 같은 것도 손에서 나오고……. 요새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한 번 와 봤어요. 스님한테 한 번 물어보고, 배울 수 있으면 배우려고요.”
나는 그가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으나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는 독신(獨身)이고, 아직은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결혼할 여자가 없기도 하다는 말을 보태며. 작은 체구에 거무튀튀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스님과의 차담에 가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은 방 앞에 있는 작은 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다 신은 그는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렸는데 담배를 찾는 듯했다.
“아! 절에 들어올 때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는데……. 습관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찾게 되네요.”
그는 맨손에 담배를 쥔 듯한 모습을 취했다.
“그렇죠. 저도 벌써 땡기기 시작하네요.”
사실 담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맞춘다고 그런 소리를 했다. 얼마 후 종무소의 여인이 별채로 와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별채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길게 지어진 한옥 한가운데 ‘템플 스테이’라는 문패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건물이었다.
“저기로 가 계시면 스님이 오실 거예요.”
방에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같은 건물에서 지내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아가씨가 방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 중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스님이 앉을 자리로 보이는 방석과 책상 앞쪽에도 남자가 한 명 있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흰색 셔츠와 남색의 바지, 그리고 갈색의 카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은색의 금속테 안경을 쓴 그는 우리가 방으로 들어서자 문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비어있는 방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뒤쪽에 있는 여자아이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 앉아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가족이었다.
맨 뒤쪽, 문 앞에 앉은 나는 구석에 있는 여자를 잠깐 쳐다봤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깜짝 놀라며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바라봤다. 여자는 무릎길이의 청치마에 회색 레깅스를 입고, 위에는 회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갈색의 머리카락은 파마를 한 것인지 원래 그런지, 곧고 가지런히 등뒤로 내려와 있었다. 짙고 화려한 화장이 절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 맞다! 제가 옷을 안 드렸구나! 원래 차담할 때 옷을 갈아입고 하는 건데 제가 깜빡했어요. 이제 스님 오실 테니까, 제가 차담 끝나고 나눠 드릴게요. 죄송해요.”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종무소 여인이 방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민 채 이야기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금세 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녀는 없다가도 갑자기 나타나고, 있다가도 갑자기 사라지는 듯한 사람이었다.
여인이 나간 후 얼마 안 있어 스님이 방으로 들어왔다.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쓴 스님은 다구를 담은 나무 쟁반을 책상 위에 놓았다. 찻잎이 든 도기 안에 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오기를 기다리며 스님은 말을 꺼냈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집채만 한 바윗돌을 뚫는 시간을 겁(劫)이라고 합니다. 옷깃이 스치는 인연에도 500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80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죠. 여기에서 우리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연 또한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처럼 큰 인연에 감사하며, 머무르시는 동안 편안하게 잘 지내다 가시라는 뜻에서 차를 한 잔 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곳에서 수확한 작설차(雀舌茶)입니다. 한 잔씩 마시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앞에 찻잔이 놓이고, 스님은 앞에 앉은 사람부터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말했다. 맨 첫 줄 오른쪽에 앉아있던 내가 먼저 소개를 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유인우라고 합니다. 나이는 서른둘이고요.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템플 스테이에 참여하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아직은 조금 낯서네요.”
내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마치자, 스님이 “마음 편하게 잘 쉬다 가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덕담을 건넸다. 내 옆에 있던 규진은 나에게 말했던 대로 자기를 소개했다. 그리고 말미에 “내공을 얻으면 100년도 넘게 장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신비로운 도를 알아보고 싶어서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스님은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잘 오셨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 옆에 앉은 중년의 사내는 침울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구재필이란 이름의 남자는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가게를 닫고 쉬는 중이라고 했다. 가족들의 권유로 템플 스테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일본식 돈카츠 가게를 하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게를 접고, 다음 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시군요. 아주 힘든 시간을 지나오셨을 텐데, 이곳에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으시고, 앞으로의 일을 천천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그런 말로 사내를 위로했다. 그 뒷줄에 앉은 가족은 예상대로 아빠와 엄마, 딸 세 식구의 가족이었고 경기도 일산에서 전라도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꼭 한번 절에서 오붓하게 머물러 보고 싶어서 템플 스테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석에 앉아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기분 전환 하러 여행 왔다가, 친구가 절에서 묵으면 저렴하고, 밥도 준다고 해서 왔어요.”
그녀의 퉁명스러운 말에 스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잘 오셨습니다.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절밥도 맛이 괜찮은 편이니, 두둑하게 드시고 따뜻한 곳에서 편하게 잘 자고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화답했다.
자기소개가 끝난 후 스님은 길지 않게 불경 속 이야기를 내객(來客)들에게 말해주었다. 고통은 어떤 상에 집착함으로써 생긴다는 것, 이러한 고정된 상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며 해탈이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마음에는 부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곳에 머무는 동안 손에 쥐는 것보다는 손에서 놓는 것을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며 스님은 차담을 마무리하였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아래서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이고, 그래서 친숙한 말씀이었다.
자리를 파하기 전 스님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종무소 보살님이 깜빡깜빡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다들 다른 옷을 입고 있으니 알록달록, 개성 있어 보여서 좋습니다. 겨울이라 그런가, 좀 검은 옷들 위주이기는 하지만요.”
그는 얼굴에 미소를 담고 방을 나섰다.
차담을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있으니 종무소 여인이 회색의 옷을 가져다주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종무소에서 옷 사이즈를 미리 물어봤기 때문에 옷은 알려준 사이즈대로 가지고 왔다.
“혹시 안 맞는 것 같으면 아까 종무소 보셨죠? 거기로 와서 알려주세요. 종무소에 아무도 없으면 거기 안내문에 있는 핸드폰 번호, 거기로 전화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재빠른 몸짓으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벽에 기대어 앉았는데, 먼저 옷을 입고 방 가운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규진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까 그 스님. 메이커 스님은 아닌 것 같죠?”
“메이커 스님이요?”
규진이 단어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뭔가 내공이 깊은 스님은 아닌 것 같아요. 브랜드 스님? 그 왜, 유명한 스님들 보면 뭔가 엄청난 내공 같은 게 느껴지잖아요? 저 스님은 아직 그 정도 내공은 아닌 것 같아요. 저런 분한테는 딱히 배울 게 없을 것 같은데……. 절밥을 좀 덜 드신 것 같네. 아직 젊은 것 같기도 하고.”
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의자에 놓아둔 가방에서 책을 몇 권 꺼냈다. 만화책이었다. 절에 오면 심심할 것 같지만 평소에 활자(活字)와는 담을 쌓고 사는지라 만화책을 두세 권 가방에 넣어왔다. 도깨비가 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오빠가 온갖 고생을 하며 도깨비들과 싸우고, 도깨비 잡는 어느 무리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일본 만화였다. 막상 꺼내놓고 읽으려 하니, 이게 절에서 읽어도 될 만화일까 싶었지만 딱히 할 게 없어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만화책이에요?”
내 모습을 보던 규진이 물었다.
“아, 네.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러시구나.”
규진은 물끄러미 내 손에 들려있는 만화책을 보다가 관심이 없는지 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꽂지 않아 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잘은 모르지만 동양 악기, 그중에서도 목관 악기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별로 크지 않고 귀에 거슬리지도 않았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만화책을 계속 봤다.
쉬고 싶다고 해서 오기는 왔지만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있기는 심심하고, 또 뭔가를 하기는 귀찮고. 그리고 같이 방을 쓰게 된 사람은 뭔가 모르게 이상하고. 나는 입사 후 첫 휴가를 그렇게 어중간하게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