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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Jul 28. 2018

Jazz in the city

seoul soul

 그간 바쁜 일상 속에 정신이 많이 고갈됐다. 이리저리 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것을 느꼈고 더욱이 위협적이었던 것은 나를 잃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 조차도 서로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그런 위기의식을 느꼈기에, 그 근방을 무조건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자유를 가지고 의지대로 무너져가는 것들, 무더져가는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번 여름을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특별한 규칙을 세우기도 했다. 남들이 부탁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꼭 하루에 1시간씩의 시간을 갖는다. 내 마음의 병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생각해본다. 등등 나는 나를 보호할 철저한 계획들로 무장핸 채였다.

 서울의 더위 아니, 2018년 여름의 더위는 모든 전의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밖에 나가고 싶은 의지도, 전시회를 열심히 다녀보겠다는 의지도, 친구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도, 많은 것이 힘없이 스스로 반려되었다. 말그대로 거절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를 힘들게 만드는 이 태양빛, 더위, 습한 공기 속에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열심히 하고 싶지 않고, 안할꺼야! 무조건 거절이야’라는 생각을 가진 채 최소한의 활동으로 에어컨 바람을 찾아다니며 7월을 보냈다. 땀으로 뒤범벅 되어 끈적한 감촉과 습기로 가득 찬 답답한 공기에 야외활동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문득 ‘이 여름을 너무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반문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카페에서 나름의 피서 생활을 하며 독서와 그림, 글쓰기,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는 터라 다시 자신을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 없었다면, 나는 이 젊은 여름날의 추억과 인생을 협소한 공간에서의 간접적인 경험들로 채우고 있을 것만 같다. 삶에서 경험은 참 중요하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수록 사람은 성장하는 것 같다. 같은 책 또는 영화를 시기별로 접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것 처럼, 경험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더위 속에 갖혀서 카페 창밖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참 지루해보였다. 어딘가 놀러가는 듯해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이 더운데 어딜 가나, 바보같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더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가치들이 있기 때문에 작렬하는 태양 빛 속으로 과감히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태양빛에 따가움을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점이 있기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은둔의 생활을 하던 중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35도의 더위를 뚫고 방문해야하는 곳의 위치는 용산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방법과 버스를 타고 도착하는 방법 중 가장 시원해 보이는 방법 단 한순간도 더위를 덥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철저하게 손풍기와 양산, 물로 무장을 한 채 출발 준비를 마치고, 마음 속으로 왜 하필 오늘이냐며 툴툴대고 있었다. 역시나, 집을 나서자마자 숨막히는 습기와 더위에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가방이 어깨를 눌러서 더욱 짜증은 불어가며 나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버스만 타면 괜찮다’를 외치며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냉동차마냥 시원하길 바랬던 버스의 에어컨은 중복 더위에 지친냥 힘을 내질 못했다. 기사님이 냉방병이 지쳐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애써 참아가며 이번엔 ‘잠들면 괜찮다’를 외치며 신용산역 버스정거장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한 손에는 양산과 손풍기, 다른 한손에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 목적지를 찾았다. 내 세상에는 머리 위 태양과 나 밖에 없었다. 오랜 만에 도착한 용산역의 풍경도, 용산역을 오기 위해 지났을 한강의 풍경도 각자의 길을 가는 버스의 승객들이 들어을 틈은 없었다. 그렇게 지도를 보며 한참을 걸으며 서서히 모든 것을 포기해갈 때쯤,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 되었고, 에어컨의 천국 속에서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밖에는 절대 나가서는 안돼 절대로!!’라고 다짐했다.

다시 태양빛 속으로 들어간 나는 ‘집에 가는 길은 오는 길 만큼 지도를 보지 않아도 돼서 덜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어디선가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더운 바람과 공기 속에 울리는 소리를 찾아 도착한 곳은 작은 무대였다. 섹소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호른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하는 3명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왜 이 더위 속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저렇게 땀을 흘리며, 짜증 보다는 존경과 호기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호른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하는 저 아이는 진짜로 연주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었다. 돈 때문에 하는 것이어도, 사망하는 사람이 나오는 이 더위 속에서는 짜증이 날 것이었지만 모두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더위에 휩싸인 도심 속에서 몸과 정신 속을 울리는 소리,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등으로 흐르는 땀도, 이마에 맺힌 땀도, 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 자리에 서서 돌아본 풍경, 용산역을 하얀 구름을 도착해서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문득 ‘이번 여름을 카페나 집에서만 보냈다면, 이 귀한 소리를 듣지도, 이 풍경을 보지도 못한 채 여름이 지나가 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라는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위협 속에서도 삶에 한발 한발 차근 차근 내딛는 것이 아닐까? 물론 카페에서 좋은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문제는 없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내가 만들었던 그 안전지대라는 우물을 혹은 치즈 창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물의 고갈 혹은 치즈의 고갈로 인한 빈곤이 발생하지는 않았을까? 더위 속에 추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들은 꽁꽁사매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삼 더위 속에서 삶의 생기를 느꼈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도 춤추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듯 폭풍우라는 인생의 고난이 나를 찾아오더라도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이 마지막에도 가져갈 것이 가장 많은 삶은 아닐까? 그간 너무나도 많은 두려움 속에 거절의 여름을 보냈지만, 이제 남은 순간들은 인정과 수긍의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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