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ICOSI, 안식년, Sabbatical, 휴식, 건강, 가족
나는 X세대다. 어느덧 4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꼰대 대열로 합류하고 있다.
늘 꼰대로 낙인찍히지 않으려고 MZ들의 생각과 행동, 트렌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지, 우리 세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 같다.
X세대는 운이 좋았다. 무슨 말이냐? 하고 IMF를 겪으면서 집안이 어려워 고생한 X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대개 그런 것 같다. MZ들이 취업에 고생하기 시작하기 3~5년 전에 취업을 해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취업난을 겪지도 않았다. 그리고 30대 초반까지 결혼을 해서 내 집 마련을 위해 노력한 X라면 아마도 집값이 이처럼 오르기 전에 대출 끼고 집도 하나 장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취업도 했고 내 집마련 계획도 보이고 하니 다들 30대 초반에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둘 낳고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취업에 고생하여 사회에 나온 시점이 늦어졌고, 집값이 올라 집도 못 사고, 그런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가는 동생들 MZ들에 비하면 훨씬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X들이 볼 때 MZ들은 안타깝기 이를 때 없을 것이고, 꼴에 이런저런 충고를 한다. 그러면서 꼰대 소리 듣는 거다. 꼰대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MZ들 눈에는 집 대출 갚는데 인생 허덕이고 있고, 애들 사교육비 대느라 넝마 수준의 옷 걸치고 다니는 안타까운 X형들이라고 평가받을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을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하였고, 이직을 하여 현재 금융권에 종사하고 있다. 이미 직장생활 2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있고, 회사에서도 임원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 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잠깐 "쉼"을 선택했다. 회사에서 휴직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회사를 그만뒀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선택의 이유는 "미국1년살이WHY" 매거진을 읽어봐 주시면 좋겠다.
https://brunch.co.kr/magazine/sabbatical0
"관성에 사로잡혀 나를 잃고 세월 보내지 않고, 일단 세워 놓고 나를 한번 돌아보기를 실행했다."
삼성에 다니는 친구가 최근 휴직을 내고 안식년을 갖고 있다. 나와 비슷한 시점에 입사를 했으니 이 친구 또한 15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다. 지역전문가를 다녀올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던 친구이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며 회사에 열정을 다했던 친구다. 가족상이 있어 조문을 갔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조문객과 조화가 와 있어 아~ 이 친구는 삼성에서 성공한 커리어를 구가하고 있구나... 임원은 되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육아휴직을 내고 자체 안식년을 갖고 있다. 회사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임원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게 아니다. 임원이 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회사에 나를 갈아 넣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잠깐 멈춤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그동안 못 했던 운동을 하고, 와이프 직장 라이드 해주고, 방과 후 돌아오는 아이를 맡고 있다고 한다. 전국 곳곳, 해외의 몇몇 친구들 집을 방문해서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만 만나던 친구들과 얼굴 보고 앉아서 옛날 얘기도 하고, 소주 한잔 하는 사진을 찍어 보내오는데 너무 행복해 보인다.
국내 IT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있다. 재수도 하지 않았고, 군대도 2년 만에 다녀왔으며, 또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현재까지 쉽 없이 달려 거의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런 그도 이번 여름에 회사에서 직을 내려놓고 육아휴직을 내고 해외1년살이를 떠난다. 아들 둘의 교육을 주된 이유로 얘기하지만 그간 고생한 자신에 대한 선물을 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외벌이 아빠인지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대단한 선택을 하였다. 최근 준비에 한창이고 조금 먼저 시작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온다. 나는 지금은 잘 보이지 않고 불안하겠지만, 너무 잘한 결정이고, 앞으로의 1년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일 것이라고 내 경험을 가져와 반복적으로 얘기해 준다. 나는 이미 보인다. 1년 반뒤에 다시 돌아온 이 친구가 얼마나 활기찰 것이고, 본인은 물론이고 아이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랑이 넘칠 것이고, 훨씬 더 성장했을 것이다. 너무 잘했다.
친구 중에 나와 예전부터 "아빠 어디가?"를 찍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우리는 딸들이 나이가 같아서 어렸을 때부터 가끔 주말에 키즈카페나 박물관 등에서 만나 딸들 놀게 해 주고 우리는 한두 시간 수다 떨고는 했다. 이 친구가 이번에 둘째를 낳았다. 계획임신이다. 아내가 친구와 동갑이다. 친구는 둘째가 대학 갈 때면 우리가 몇 살이라는 둥, 이제부터 키워서 언제 키우냐는 둥,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이 되기는 했는 모양이다. 자기 발이 평발이라 자기는 달리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던 친구가 2023 서울마라톤대회 10km 완주하고 왔다. 대회 출전 전에 비슷한 거리를 몇 번 뛰었기도 했나 보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계기 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도 변하고 있다. 자기 몸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인생 길다. 40대 이제 시작이다. 친구야.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힘들 것이고, 개인의 시간도 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첫째를 키우면서 좋았던 기억을 되돌려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살짝 늙긴 했지만, 좀 더 능력 있어졌고, 노련해졌고, 강해진 상태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30대를 다시 살아갈 친구가 너무 부럽다.
건강을 챙기는 X들이 정말 많이 늘었다. 주변에 마라톤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 마라톤클럽에 참여를 했다고 내 기록이 얼마였다고 SNS로 연락이 오는가 하면, 평소에도 서로 경쟁적으로 달리기 기록들을 속속 올리곤 한다. 예전만큼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
많은 X들이 변화하고 있다. 남자가 겁없이 육아휴직을 내어 잠깐 쉼을 선택하고, 단거리 질주해왔던 젊고 분기탱천했던 30대를 지나보내고 이제는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한다. 입신양명이란 미명하에 바깥으로 나돌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가족들을 보살핀다. 평생지기 친구들에게 마음을 쓰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변화들을 표현하는데 "Yolo"라는 단어는 좀 가볍다. 좀 더 묵직하고, 강력하고, 세련되었다. 멋지다 친구들아!
100세 시대에 40대 중반을 달리는 우리 X 세대들은 인생의 1막을 끝내고 2막을 준비해야 할 때다. 회사나 본인이 몸담은 기관에서 안식년을 제공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직도 관성에 몸을 맡겨 내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르는 X 들에게 자체 안식년을 추천해주고 싶다. 7년에 한 번 휴식을 갖는 게 어렵다면 10년에 한 번 안되면 20년에 한 번이라도 휴식에 도전하자. 변화를 위해서는 조금은 강제적으로 멈춤이 필요하다. 아니면 늦둥이를 가지는 수준의 계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