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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챔버 Apr 12. 2022

메타버스. 소멸된 경계의 시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의 잡생각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를 위해 폴란드 루마니아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다녀왔다. 국내법상 우크라이나의 입국이 제한돼 있는 국내 취재진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로의 경계인 국경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국경을 넘지 못한 국내 취재진은 국경을 넘어온 이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국내에 전했다.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절대적이고 강제적인 선인 국경(Border).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저 선을 넘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고 살기 위해 모든 삶의 터전을 남긴 채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간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폴란드로 선을 넘어온 우크라이나인은 4월 8일 현재까지 약 257만 3천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내 취재진에게도 선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열렸다. 우크라이나 보급창고인 서부 주요 도시 체르니우치에 한 해 예외적 여권법을 적용했다. 단 2박 3일 동안의 체류를 허가해 준 것이다. 체르니우치로 가기 위해서는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루마니아 수체아바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를 가는 길의 풍경은 너무도 유사했다. 사실 두 지역은 꽤 오랫동안 루마니아의 지배를 받아 왔다가 2차 대전 직후 소련이 강제 병합을 한 곳으로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류는 산과 강과 같은 물리적인 장벽이 없는 광활한 대지를 문화와 종교 그리고 언어의 차이로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 냈다. 국경검문소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하는 둥근 지붕의 옥소도스 교회의 모습은 또 다른 경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서구 카톨릭의 끝자락이자 러시아 정교회인 옥소도스(orthodox)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교회의 경계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과 루마니아 수체아바 지역으로 가면 교회의 모습이 달라진다. 러시아 정교회인 옥소도스가 시작된다.

 인류는 끊임없이 너나 나를 나누고 우리와 그들을 묶어 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 보다 신체적으로 약했던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으로 무리를 이루어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수단이었다. 이번 전쟁 역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경계 안과 밖이냐? 물음에 대한 강요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계를 다시 100년 전으로 돌린 이번 전쟁으로 사람들은 국가가 강제로 묶어 놓은 이 경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격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자본주의 폐해와 정치적 불안정이 가져다준 가난과 생존의 공포에 사람들은 현실세계에 자꾸만 지쳐 가고 있다.      

루마니아 수체아바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으로 가는 국경.

 만약 이런 경계가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권력자들이 만들어 내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문화와 종교와 언어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나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곳. 다양성이 보장되고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을 있는 곳. 즉 경계(Border)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 사람들은 이미 열광하고 있었다.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Meta)과 우주(Universe)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공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 원’이나 메트릭스 시리즈에서는 메타버스 내 인간들의 생활이 오히려 실제 생활을 더 통제하고 있다. 실생활은 VR 기기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된다. 현재 기술로도 시, 청각을 비롯해 촉각까지 사물과 연결이 가능하다. 오감이 모두 가상공간에서 전달이 된다면 메타버스 내의 영역은 기존 국가의 경계가 전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선 새로운 형태의 사회경제 활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 사실 상 아무런 통제 없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실에서 메타버스 시대에 핵심 기술 기업의 독주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가상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국가라는 경계가 완전히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 원', 메타버스 세상을 가장 흥미롭게 그려 낸 SF 영화. 넷플릭스에서 현재 서비스가 되지 않아 못 보고 있었는데 폴란드에서는 볼 수 있었다.

 현재의 메타버스는 분명 과하게 포장된 점이 있다. 아직 몰입도가 높은 VR 기기와 트레드밀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메타버스의 미래를 논하는 건 일정 부분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메타버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시기의 문제이다. 다양한 기술 측면을 고려하고 그를 통해 경제적 윤택함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돈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면 언제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레디 플레이 원에서 채굴만을 위해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사람들, 가상공간이 더 삶의 실체가 되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속에서 또 차별과 계급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할 수가 없다. 너무 비대해져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언론이라도 먼저 곱씹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대비 역시 꼭 필요할 것이다.


 대학원 과제를 우크라이나 국경 가는 길에 짬을 내어 작성했다.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그 당시의 기분에 경계가 사라진 세상이 메타버스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었다. 생각이 났을 때는 참 그럴듯했는데 글로 옮기고 나니 너무 어설프구나. 글 쓰기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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