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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Aug 26. 2023

안국


안국은 추억의 동네다.


작년 11월 오퍼미팅을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의 쌀쌀했던 그날의 공기가 떠오른다. 초겨울 진입의 문턱에 있었던 터라 한기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고, 사실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기에 오피스로서의 안국은 내게 '희망'이자 '긍정'의 공간이었다. 아내와 연애초반, 제일 먼저 들렀던 곳이 종로부터 삼청동까지 계속되었던 걷기 코스였고 광화문을 지나 명동으로 이어지는 곳곳에서 우리는 소소한 재미를 누렸다.


 그래서 이곳은 내게 업무의 영역보다 포근한 감정의 영역으로 남아있고, 이는 나의 일을 대하는 태도와도 많은 부분 연결된다.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던 때와 비교해 보면 거리도 멀어졌고 피로도 또한 높아졌지만, 늘어난 이동시간만큼 나는 생산적인 활동을 즐기고 있다.


 최근 이사를 하며 더욱 늘어난 이동거리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지하철에서는 짤막한 글을 한편 쓰거나 책을 읽는다. 출퇴근 왕복 2시간이면 100페이지에서 120페이지가량을 읽게 되니 2~3일이면 출퇴근 시간으로만 책 1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편도 1시간 동안 1편의 글을 쓰려 노력한다. 제한된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정제된 표현으로 남기는 활동은 고도의 집중과 몰입상태에 있어야 가능하며 이는 실제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핵심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펴기 위해 지하철에서 글을 쓸 때와 유사한 뇌의 활동을 시작하고 빠르게 결론에 다다른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정신적인 피로도 역시 낮지 않은 작업이지만 두루 생산적이고 삶의 많은 영역으로 확장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국으로 향하는 길, 안국에서의 시간은 고요함과도 이어지고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고요하지 않았던 역사였지만 나에게는 이 두 가지 개념이 연결되어 있다. 가끔 점심시간에 걷게 되는 삼청동은 무리 지어 다니는 관광객을 제외하곤 평온하다. 때로는 잠들어 있는 동네와도 같은 느낌이었기에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발을 디디며 서있는 이 공간에 대한 감사함은 나를 더 걷게 했고 한 여름 삼청공원 역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정과 평온이 휘감는 이곳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난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노동자의 감정보다 사랑의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사실, 감정 그리고 나의 생각이 한 동안 아니 꽤 오래 구석구석 흐르는 시간의 역사와 함께 고요하게 머물러 나만의 추억의 안국으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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