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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차별에 대하여> With 빠띠(1)

쉬었음 청년, 그들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하다(25.11.19일자)

상반기 디지털 시민광장 [빠띠]에서 기획한 <쓰다:재난상황> 프로젝트.
우리 주변의 장애 그리고 재난에 대한 글을 쓰며 활동했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 혹은 이웃들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글쓰기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었는데요.

자유양식으로 총 2편의 글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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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열린 「2025 국회입법박람회」.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 민생시민의회로 기억한다. 3개 분과(서민금융·노동환경·주거환경)중 노동환경분과에 소속되어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 아젠다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양했다. 프리랜서 및 가사 노동자를 비롯하여 노인 일자리 등 지역에서 피부로 체감되는 주제들이 고루 나왔다. 나 또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쉬었음 청년”에 대해 정부 정책 기조와 연계하여 절실함을 담아 공유하였다. 반응은? 대체로 “쉬었음 청년”에 대해 잘 모르거나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시민들은 해당 용어를 처음 들었다며 기사를 찾아보니 심각성과 지원의 시급성을 알게 되었다고 전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떻게든 이를 화두로 던져 쉬었음 청년들의 기다림과 재도약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다른 이슈에 결국 묻혔다.


아쉬웠지만 납득했다. 혼자서 내는 목소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미약함을 체감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프리랜서 사회복지사이자 쉬었음 청년 중 한 명이라 더 그런 듯하다. 원치 않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으며 자꾸 내몰리는 악순환을 끊고 싶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쉬었음 청년”의 정의와 현주소 그리고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이들을 위하여 함께 나아갈 방향들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쉬고 있지만 쉬고 있지 않은, 그래서 등장한 세 가지 차별


“쉬었음 청년”이 언제부터 정확히 등장했는지는 뚜렷한 기준이나 연도는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취업 여부나 경제활동인구조사 등에서 항목을 체크할 때 ‘쉬었음’을 표기하는 것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쪽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언론이나 학계 등에서 “쉬었음 청년”의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며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닌, 전부터 계속 거론되던 단골 주제라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쉬었음 청년”의 정확한 정의나 명칭은 뭘까?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학업이나 구직 또는 취업활동은 물론, 아르바이트나 단기 근로 등도 하지 않은 채 집이나 개인적으로 쉬고 있는 청년들을 말한다. 물론 실상은 정의와는 좀 다르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정식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 단기 근로자 상당수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취업이나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마땅한 수입원이 없어 경력단절이 길어지거나 구직활동을 단념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content_7d1203e77d.png 출처: 고용노동부 월간내일 25년 11월호


여기까지 보면 ‘니트 청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에서도 “쉬었음 청년”의 노동시장 유입 촉진을 위하여 단계별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잠시 멈추고 쉬는 청년><일하고 싶은 청년> 그리고 <일하는 청년>으로 나눠 단계별 정책을 추진하고 근로여건 보장 및 성장 지원 등이 골자다. 좋다. 그러나 기존 청년 고용정책에서 일부 강화나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들 “쉬었음 청년”에 맞춰져있다 보긴 힘들다.


장기 미취업 상태라고 해서 가만히 놀거나 구직을 아예 단념한 청년들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쉬었음 청년은 약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70% 이상은 장기든 중·단기든 근로 경험이 있다. 이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렇기에 자칫 “쉬었음 청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다르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곳곳에 만연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일할 곳이 많은데 눈이 높은 게 아니냐”부터 “게으르다”, “왜 놀고 있냐. 노력을 안 하네”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차별이 발생한다.


“쉬었음 청년”은 은둔고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경계는 이미 많이 허물어진 듯하다. 그들은 일을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닌, 미래를 염두에 둔 적합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뿐인데 말이다. 또는 자기 계발이나 역량 강화, 소진이나 기타 심리·정서적 어려움으로 잠시 쉼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 등도 있다. 복합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성이 분명 있음에도 무조건 취업을 시키는 것에 목전을 둔다. 선택이 아닌, 반강제적인 실적 중심의 지원 제도가 두 번째 차별이다.


마지막은 취업 경험이 없거나 경제 상황도 어려운 “쉬었음 청년”들을 여러 조건을 갖춘 다른 청년들과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본다. 이 부분은 약간 논란의 이슈가 있겠다. 고용시장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사업장마다 상이할뿐더러 특수한 직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표준 지침을 따른다. 무조건 “쉬었음 청년”들에게 맞추라고 하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개정할 부분이 있지만)기존 청년 대상 고용정책이나 지원 제도도 나름 잘 갖춰져 있다.


중요한 건 다음 호에 다룰 “경계선 지능 청년”처럼 이들의 현 상황과 특성을 채용 시 어느 정도는 고려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쉰 기간이 길거나 취업 경험이 없다고 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자격까지 없다는 건 아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되지 않도록 천천히 쉬었음의 기간을 줄이고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 포용적 접근이 배제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쉬었음 청년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비율은 0.1이든 0.01이든 낮출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해결하거나 없앨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함께 품고 갈 수밖에 없다면 오롯이 바라봐 주고 근거 없는 편견이나 비판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직접 그들과 만나 교류하거나 잠시라도 얘기를 나눠보면 알 수 있다.


내 기준이 아닌, 그들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무엇이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 잠시 맛보는 성취감과 보람, 작은 희망은 어떻게든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연결기>로 작용한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 연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쉬었음 청년”을 은연중에 차별하지 않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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