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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Oct 06. 2020

스타트업 마케터의 퇴사일기 04

매니저로 가는 길

2년여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겪은 두 가지 가장 큰 변화는, 입사 만 1년이 될 때즈음 회사가 성장하며 서울에 오피스를 새로 만든 것과, 주니어에서 매니저급으로의 업무 변화였다. 서울 오피스와 시니어급 업무 전환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는 두 사건이다. 본사가 제주도에 있던 터라, 신규 채용이나 구글 등 관계사 미팅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서울 오피스가 생겼다. 서울 오피스가 생기자 먼저 10년차 이상의 팀장급 인력이 충원되기 시작했고 이후에 인턴과 주니어급 인원들도 새로 입사했다. 1년간 입사 순서로도, 나이로도 막내였던 내가 어느새 팀의 중간즈음 되는 위치로 올라가버린 것이었다. 업무에도, 인간관계에도 큰 변화가 필요했다. 퇴사일기 네 번째 글은, 그 변화의 과정에 겪고 배웠던 이야기다. 



내가 할 수 있어도, 내가 하면 안 된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으로 직접 하던 실무의 많은 부분을 매뉴얼로 정리해서 남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 글에서, 캐치잇플레이의 영상광고 대부분을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었다. 주니어로 있을 때는 내가 뛰고, 내가 만들고, 내가 밤을 새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매니저의 일은 달라야 했다. 매니저로서 내 업무시간은 이전보다 비싸졌고, 그에 따라서 더 큰 가치를 내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다.


캐치잇플레이의 인터뷰 영상광고는 아이디어부터 실행과 규모를 키우는 작업까지 모두 내가 스스로 키워 왔던 프로젝트인데, 내가 할 수 있어도, 내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 답답했다. 물론 같은 프로젝트를 다른 형태로 관리하게 된 것이었지만, 늘상 잡고있던 편집툴을 손에서 놓고, 스토리보드를 짜서 편집 오더를 내는 쪽으로 업무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참 어려웠다. 당시 우리 팀 디렉터가 매니저의 역할에 대해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쟈니는 이제 프리미어 사용 금지”. 밴드오브 브라더스 후반부에, 주인공인 이지 중대가 설원을 넘어서 마을로 진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고전하는 이지 중대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려 뛰어가는 윈터스에게, 자네는 이제 이지 중대가 아니라 대대 지휘관이라며, 당장 돌아오라고 호통하는 호튼 소령의 대사가 머리에 맴돌았다.

자넨 편집자가 아니라 매니저야! 당장 프리미어 꺼! _유튜브 샤를TV 캡쳐



체계와 매뉴얼을 만들고 관리하기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만들고 발전시켜 온 업무의 일부를 남에게 맡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매뉴얼을 만들고, Scaling이 가능한 형태로 transformation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인터뷰 영상광고 제작과정은 한 사람의 메인 편집자가 진행하는 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작업자가 하나의 소스를 가지고 편집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큰 개편이 필요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촬영/스크립팅/스토리보딩/편집의 단계였다. 촬영된 소스를 스크립트로 정리하고,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여러 명의 편집자에게 동시에 편집 오더를 내려서 영상을 전달받았다. 스토리보드 작업은 내가 혼자 기획하고 편집할 때는 불필요한 과정이었지만, 팀 단위로 묶어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내 업무는 각 단계의 작업을 매뉴얼대로 관리하고, 또한,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이쪽을 개선하면 저쪽에 문제가 생기고, 또 그쪽을 개선하면 다른 쪽에 이슈가 생겼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외부 작업자를 활용한 실제 베타테스트를 돌려 보면서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의 테스트 사이클을 돌려 보자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것을 통해 매뉴얼을 확정할 수 있었다.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매니저는 바쁘게 일하기보다, 조용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했다. 업무를 기획하고, 작업자들에게 미션을 주고, 각자의 미션을 받은 작업자들이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생각의 여유가 많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광고영상제작 시스템의 핵심은 외부의 작업자에게 가능한 많은 업무를 위임해서, 광고영상의 제작 수량이 내 시간에 종속되지 않게 분리하는 것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은 모두 외주로 맡기고,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을 내가 한다


가장 먼저 외주팀에게 맡겨진 업무는 촬영이었다. 원활한 편집을 위해 스크립터를 고용해서 그간 촬영했던 모든 소스를 스크립트로 만들었고, 그 스크립트를 통해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편집자들에게 전달했다. 편집업무가 빠지면서,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또한, 프로젝트의 전체 그림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에, 각 파트의 작업자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디에서 업무가 정체되어있는지, 어떤 파트에서 시스템이 만드는 오류가 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 세세한 부분까지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스스로 만든 업무로 회사에 들어가서, 주니어 생활을 하고, 또 같은 업무로 매니저 업무까지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참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초부터 퇴사를 하던 6월 말까지, 광고 프로젝트의 매니저로 업무 성격이 바뀐 이후,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퀄리티를 유지하며 광고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광고제작의 전체 사이클이 내가 가진 시간에 종속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덕에, 매니저로의 전환 자체는 어려웠지만, 매니징 업무 자체에는 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만든 업무가 이 스케일까지 커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뿌듯했다. 업무의 만족도나, 업무 자아 존중감도 좋았다. 그러나, 퇴사의 트리거를 당긴 사건 또한 이 매니징 업무를 하던 중 발생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아티클에서 다뤄 보겠다. 퇴사의 이유.




Johnny Kim

김재일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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