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지 않게, 나이에 맞는 듯 그렇게 살아가다.
넌 나이에 맞지 않게~
넌 네 나이에 드물게~
어딜 가나 참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올해 내 나이, 스물 하나. 같은 나이의 많은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거나, 세 번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뭐 하냐구? 음.. 좋게 말하면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고 있다. 꽤나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다니던 고등학교와는 2학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교문 밖으로 훌쩍 걸어나와 일찍 졸업했다. 그 이후엔 원래 좋아하던 사진을 업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열아홉엔 LG디스플레이 해외봉사단 공식 포토그래퍼로 캄보디아에 다녀왔고, 스무 살엔 20만 원으로 떠나는 엽서 팔이 자급자족 세계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행/숙박업계에 발을 들인지도 만 2년 차다. 여행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의 객실 사진을 새로 찍고 마케팅 플랜을 짜 주는 컨설턴트 일도 했고, 번듯한 3성급 호텔의 컨시어지 매니저로 근무한 적도 있다.
자랑인지 아닌지. 뭔가 참 많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재밌어 보이는 것들은 다 해보고 싶다. 천성이라기보다 무의식에 습득된 습관인가 싶기도 하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그리 협조적("Supportive"의 의미인데 한국말로 쓰려니 어감이 좀 그렇다)이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하려는 것은 반대했고(물론 다는 아니었겠지만) 내 얘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얘기도, 다니고 싶은 학교에 대한 얘기도 듣는 둥 마든 둥. 그러다 내가 불평 섞인 짜증이라도 내는 날엔 집이 뒤집어졌다. 도와주려는 모션도,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였다. 부모님은 항상 지나치게 겁이 많았고, 그래서 날 과잉보호하거나,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려서 용감해 보이는 도전을 할 의지를 꺾어놓곤 했다. 동네에 있는 시립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한강변을 따라 잠실대교를 찍고 온 날 밤에 나는 자전거로 누군가를 치거나 누군가에게 치였다면 그 감당은 누가 하냐며, 두 시간짜리 욕설이 섞인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그때 난 고등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우리의 능력은 거기까지니까 넌 그 밖의 세상은 꿈도 꾸지 마라.
이제와서야 이해되는 게 참 많다. 그래서 더욱 답답했구나 싶다. 그래서 그 밖의 세상에 대한 갈망이 커졌구나 싶다. 압력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폭발하듯. 나는 그렇게 학교를 일찍 졸업해버렸고, 그동안 억눌려있었던 욕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혼자의 힘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둔 후 원래도 없다시피 했던 지원은 더욱 매정하게 사라졌다. 교통비 명목으로 매주 용돈으로 만 원 정도를 받았었는데 그마저도 끊겼다. 그래서 바로 일자리를 구했다. 폐 휴대폰에서 살아있는 부품을 꺼내어 짜 맞춰 중고폰으로 재생시켜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90-100만 원을 벌었다. 아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부모와, 열여덟 소년이 맨몸으로 뛰어들기에는 너무나 삭막하고 매정한 사회. 그 틈에서 오갈 곳 없는 꼬맹이였지만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남들이 수능을 공부할 때, 나는 세상을 배웠다. 그 후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내게 부모는 있지만 없는 듯, 아니 애초에 없었다고 여기는 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한 그런 존재로 굳어져갔다. 그렇게 홀로, 계속해서 홀로, 기반을 쌓고 경험을 쌓고, 업적을 쌓고. 그렇게 이 자리까지 왔다. 그래서 난 나이에 맞지 않게 커버렸다. 고통은 항상 성장을 수반한다고 했던가. 성공은 절박함에서 온다고 했던가. 절박한데 아프기까지 했으니, 말 다 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스물한 살 같은 스물 하나로 살고 싶을 때도 있다. 생각 없이 취해보기도 하고, 치기 어린 장난도 쳐 보고 말이다. 내가 술을 피하는 건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지만, 내 정신을 놓는 게 안 돼서 그렇기도 하다. 가젤이 잘 때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사자를 경계하듯, 정신 똑디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 살던 습관이 깊게 배어 있다. 물론 덕분에 또래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이룰 수 있었지만, 익숙해졌다고 해서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2~3년 후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여행 후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야 내 생활의 기반이 조금 마련된 상태이니, 아직 긴장을 늦출 단계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냥 그렇다. 편하게 살아볼까 싶기도 한데,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뭔가 해야 할 게 보여서 내 몸이 그렇게 움직여진다고,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평생 편하게는 못 살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얘기가 좀 길어졌다. 앞으로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싫을 때 이 글을 보여줄 심산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사는 거 안다고. 내 또래에 나같이 사는 애들이 드문 것도 안다고. 근데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절박한 상황 가운데에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그래도 질리도록 더 듣게 되겠지.
넌 나이에 비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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