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난 1996년생, 올해 스무 살이다.
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갑내기 친구들은 새내기가 됐거나,
길고 험난한 2차전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나? 난 못 갔다, 아니 안 갔다. 못 간 게 반, 안 간 게 반이다.
대학 포기하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긴 여행을 떠났다.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 만 7개월을 혼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엽서를 만들고, 그걸 팔아서 하루하루 버텨 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여덟 살의 꼬마가 열여덟 살이 되기까지. 꽉 채워 십 년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고등학교에서 짐 싸서 나왔던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성적으로는
밀리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입시경쟁의 승리자였다. 그게 내 자랑이었고,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학교의 자랑이었다. 그렇게 살았다. 열심히만 하면,
잘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누구를 팼다든지 하는 사고를 쳐서 나온 게 아니다. 내 발로 걸어 나왔다.
정확히는 너덜너덜해져서 반쯤 죽은 상태로 기어나온 거지.
다니던 학교는 수업료가 학기당 200만 원이 넘었다. 꽤나 알아주는
사립 고등학교였거든. 1학년까지는 어찌어찌 잘 마무리했으나
학기에 두 번씩, 수업료를 낼 때마다 난 엄마의 날카로운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이번엔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네 학비를 냈다"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맞다. 넉넉했던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거의 7년간
지속적인 적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기 살려드리겠단 생각으로 빚을 내어
메꿔가며 운영했다. 그러다 빚이 감당이 안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가게를 간신히 정리했다. 불똥은 내게 튀었고.
중학교에 진학할 시점에 모 국제중학교에 원서를 넣었었다. 서류와 면접에서
붙고 추첨에서 떨어져 입학에 실패했는데 오히려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만 했다.
활동비까지 합치면 연간 학비가 천만 원이었다나 뭐라나..
고등학교 진학할 땐 공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난 학교에 가고 싶었다.
혁신적인 교육방식으로 유명한 한 대안학교. 원서는 넣어보지도 못 하고 포기했다.
이래저래 연간 3000만 원이란다.
그래서 들어간 게 거기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참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이유로
나가떨어졌다. 그리고는 위로받을 새도 없이 '엄마의 현금서비스'에 깔려 있는
'내가 이렇게나 고생해서 보낸 학교니까 죽자고 덤벼라'는 그 압박을 버텨야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가 너무 힘들단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힘들다, 아프다, 가기 싫다고 했다. 그리고는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그런 위기를 두어 번 겪으며 중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 입학하고도 마찬가지였다. 7시에 집을 나서서 밤 열 시까지. 학교에선
입시에 치이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너덜너덜해져서 집에 돌아와서는
학비 얘기에 치이고. 그래서 힘들다고 했다. 또 맞았다. 이번엔 주먹으로.
1학년은 그렇게 다녔다. 이상하게 이유없이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했다.
기립성 저혈압으로 잠시 의식을 놓친 일도 있었다. 2학년 땐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맞아 죽든 학교 다니다 쓰러져 죽든, 그게 그거다 싶었고
결국 자퇴했다. 자살로 안 끝난게 다행이란 생각을 아직도 자주 한다.
그 후 몇달동안 난 집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피해자는 난데. 미안하단 얘기나 사랑한단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학, 갈 수 있었다. 돈 빌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아니면 과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든지. 그냥, 고등학생 때 조금 더 이기적이었으면 됐다. 고등학교
학비는 당연히 부모가 내 주는 거 아니냐고. 왜 나한테 짜증을 내냐고.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여행을 다니며 사진과 엽서사업을 한다.
돈 빌려 집안이 망가진 꼬라지도 봤고, 돈 내 준 사람이 얼마나 생색을 내는 지도,
그리고 억지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지도 겪어봐서 안다.
그래서 목표는 하나다. 내 손으로 돈 모아서, 돈 안 빌리고, 원하는 학교 다니는 것.
사실, 짧게나마 대학 생활을 해 보긴 했다. 5월 초, 대만에 있을 때 츠지 대학교에
공식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일주일간 머물며 그곳의 미디어학과 학생들과
한 팀을 이뤄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했다. 같이 다니고 밥 먹고 공부하고.
그 때 알았다. 대학생활, 진짜 재밌다는 거. 그리고, 대학은 취업의 관문이 아니라
조금 비싼 문화생활이어야 한다는 걸. 감상평을 써 내기 위해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서 즐기는 뮤지컬 관람같은 느낌이랄까, 어차피 대기업에 날 팔아 볼 생각은 없으니,
재밌게 공부하고 사람들 만나고. 그렇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내 학창시절은 너덜너덜해진 상처 뿐이지만.
대학생활만큼은, 아름답게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