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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Jan 11. 2017

발리는 저렴하지 않다

그러나, 발리의 진짜 매력은 가격표 뒤에 숨어있다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 거기에 말레이시아(환율 때문도 있고..)와 인도네시아까지. 열거한 여섯 나라들 모두 아시아에서 저렴하기로 소문난 여행지들이다. 게스트하우스가 하루에 5천 원 정도, 괜찮은 식사도 2~3천 원 내외에서 해결이 가능하니, 언제나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수염을 기른 유러피안 휴양객들과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넘쳐난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녀온 발리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사실 발리의 저렴함은 캄보디아나 태국의 그것과는 꽤나 달랐다. 저렴하지만, 그리 저렴하지 않은. 발리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열아홉 살 때, 한 대기업의 해외 봉사팀 메인 포토그래퍼로 한 달간 캄보디아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머리털 나고 두 번째로 나가 본 외국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중에 내 기억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놀랍겠지만) 오백원 짜리 생맥주였다. 내가 아직 어리기는 해도, 음료수가 오백 원 하던 시절은 정말 내가 지금보다 더한 꼬맹이었을 때였다. 거기에 한 끼 밥은 2천 원 내외, 게스트하우스의 하루 숙박 요금은 5천 원이었으니, 한국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의 물가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지내왔던 내게 그런 가격들은 꽤나 큰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일 년쯤 후에 다녀온 태국과 라오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백반 가격이 6천 원에서 7천 원대로 올라가는 동안 동남아의 물가는 2년째 그대로였고, 꽤나 행복하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다 집어먹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발리 여행은 내가 그동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꽤나 많이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물론 저렴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저렴하지 않았다. 2~3천 원짜리 밥과 5천 원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찾기 어려웠던 건 아니지만, 하루에 2만 원 정도 하는 빌라(그 가격에 수영장이 딸린 곳도 많다)와 한 끼에 8천 원 정도 하는 레스토랑의 숫자가 훨씬 많아서, 생각보다 선택할 수 있는 가격의 범위가 제한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육천 원짜리 국밥집도 있기는 하지만, 2만 원 정도 하는 한식당들이 거리에 꽉 차있기 때문에 밥값이 비싸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어디에 들어가나 가격이 저렴했던 캄보디아나 태국과는 달리, 저렴하게 돈을 덜 쓰고 뭔가 먹으려면, 그런 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내가 발리에서 먹었던 음식들의 가격 자체는 한국에서 밥을 사 먹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만, 놀라웠던 사실은 그 가격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는 점이었다. 


동남아 음식의 대표주자, 나시 고렝

전통적인 허니문의 천국이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어디에 들어가든 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고, 직원들은 영어를 무리 없이 구사했다. 게다가 음식의 수준이 정말 높았다. 우붓에서 먹었던 80k(K는 Kilo의 약자로 1000을 의미. 100k가 약 8천 원 정도다)짜리 수제버거는 정말 대단했다. 물론 가끔은 태국과 라오스의 저렴한 음식들이 그립기는 했지만,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서비스와 고품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친절한 응대와 깔끔한 서빙,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음식과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센스까지. 비슷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었던 싱가폴의 Level33에서 먹은 저녁 한 끼의 가격은 인당 8만 원가량이었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않은가.


또, 내가 일주일간 지냈던 곳은 1박에 20달러 정도 하는 Private 빌라였는데, 하우스키핑 서비스는 물론이고 24시간 경비 서비스도 제공했다. 거기에 킹사이즈 베드와 햇살이 들어오는 샤워룸, 문을 열면 야외 테이블이 깔린 정원도 있었다. 제주도였다면 게스트하우스 6인실의 1박 가격인데 말이다. 물론 빌라의 1/4 가격에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누린 프리미엄 서비스는 지불한 돈을 잊게 만들 만큼 즐거운 경험이었다. 참, 산골 마을인 우붓에서 시내까지, 그리고 시내에서 공항까지 개인 드라이버를 두 번 고용한 가격이 총 2만 원 미만이었다면 믿겠는가? 태국과 캄보디아가 저렴하기만 해서 놀라웠다면, 발리는 가격을 약간 절충한 대신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수준이 높았다는 데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서비스는 핵심(Core)과 부가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숙박 서비스의 핵심은 '잠을 자는 것’이며 공간의 독립성이나 안락함은 부가적인 요소다. 호스텔은 부가 요소를 빼면서 가격을 낮췄고, 호텔에서는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발리는 호스텔이 아니라 호텔의 느낌이었다. 아주 저렴하게도 지낼 수 있지만, 돈을 조금만 더 지불하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곳. 내가 경험한 발리는 그런 곳이었다. 저렴하지만, 조금 다른. 그래서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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