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ny Kim Feb 10. 2017

눈이 온다, 제주도에

섬에 이사 온, 서울소년 이야기

새벽엔 눈이 쏟아지더니 오후엔 맑았다. 섬 날씨는 참. 바람은 좀 세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라 기분은 상쾌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저 멀리 흰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가 보였다. 도심 한복판인데, 바다가 보인다. 작년 이맘때쯤,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엔 꽤나 신기했던 사실인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싶다. 집 앞 대로에 나가서 남쪽을 보면 한라산이, 북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섬에 살지만, 섬이 아닌 것 같은 이 곳. 가끔, 하루에 여섯 번씩 바뀌는 날씨와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서야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곤 한다.


요즘은 영어학원에 출강을 나간다. 영어 자체도 편하고, 학원을 오래 다녔던 터라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돈도 꽤 되고 말이다. 전임을 맡아볼까 하는 생각(원장이 슬쩍 말을 흘리더란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도 잠깐 해 봤지만, 늘어나는 업무량과 책임에 비해 오르는 월급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물만 빨아먹고 싶다는, 참 얄밉고 영악한 이유에서 나온 결정이 아닐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그쪽이 마음이 편한 것을. 가르치는 기술은 있지만 사명감이 없는 나 같은 선생은, 애들 자주 안 가르치는 게 서로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돈 준다면 달려가는, 참 나쁜 선생이다. 그래도 새로운 재능을 발견해서 좋기는 하다. 뭐, 언젠가는 사명감이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맑았던 하늘이 이내 흐려지고, 수업 내내 싸리눈이 창문을 두드렸다. 금방 쌓이지만, 금방 사라지는, 제주의 눈.

꽤나 추운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됐고, 지금 시작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