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이사 온, 서울소년 이야기
새벽엔 눈이 쏟아지더니 오후엔 맑았다. 섬 날씨는 참. 바람은 좀 세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라 기분은 상쾌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저 멀리 흰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가 보였다. 도심 한복판인데, 바다가 보인다. 작년 이맘때쯤,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엔 꽤나 신기했던 사실인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싶다. 집 앞 대로에 나가서 남쪽을 보면 한라산이, 북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섬에 살지만, 섬이 아닌 것 같은 이 곳. 가끔, 하루에 여섯 번씩 바뀌는 날씨와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서야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곤 한다.
요즘은 영어학원에 출강을 나간다. 영어 자체도 편하고, 학원을 오래 다녔던 터라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돈도 꽤 되고 말이다. 전임을 맡아볼까 하는 생각(원장이 슬쩍 말을 흘리더란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도 잠깐 해 봤지만, 늘어나는 업무량과 책임에 비해 오르는 월급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물만 빨아먹고 싶다는, 참 얄밉고 영악한 이유에서 나온 결정이 아닐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그쪽이 마음이 편한 것을. 가르치는 기술은 있지만 사명감이 없는 나 같은 선생은, 애들 자주 안 가르치는 게 서로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돈 준다면 달려가는, 참 나쁜 선생이다. 그래도 새로운 재능을 발견해서 좋기는 하다. 뭐, 언젠가는 사명감이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맑았던 하늘이 이내 흐려지고, 수업 내내 싸리눈이 창문을 두드렸다. 금방 쌓이지만, 금방 사라지는, 제주의 눈.
꽤나 추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