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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May 28. 2017

올 나잇 워커홀릭이면서, 동시에 프로 백수로 살아가기

스물 둘, 프로 밤샘러의 넋두리

일은, 잘 될 때 해야 하는 것이더라.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 한켠에 항상 박아두면서, 손에 안 잡힐 땐 미련 없이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나는 낮보다 밤이,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혼자 조용히 앉아있을 때의 생산성이 훨씬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낮에는 여유롭게 취미활동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일이 제일 잘 되는 시간까지 일부러 기다리곤 한다. 아니면 아예 해 질 녘에 일어나버리든지. 사흘 나흘 낮동안 뽑아낸 영상보다, 어느 날 자정에 확 스쳐간 아이디어로 밤새 수정해서 완성한 영상의 퀄리티가 항상 더 좋았고, 글은 항상 아이디어가 스쳐가고 문장이 술술 쓰여 내려갈 때 몰아서 쓰곤 한다.


늦음과 아주 이름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시간에 느껴지는 약간의 몽롱함, 그리고 그 몽롱함 아래에서 집중력이 날카롭게 올라올 때의 기분이 참 좋다. 그런 몽롱함에 센치함을 더해주는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라면 더 좋고. 그래서 나는 일부러 내 작업실을 어둡게 유지한다. 언제나 밤의 느낌을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벽의 페인트는 어두운 회색 톤으로 칠했고, 조명은 은은한 주황색 전구 두 개를 쓰고, 창문에는 필요에 따라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암막 블라인드를 설치해 두었다. 여러모로, 부모님 댁은 불편하다. 내 부엌은 새벽 두 시든 세 시든, 라면 하나 끓여먹을 때 자는 사람들 눈치 안 봐도 되는 곳이었음 하고, 내 거실은 언제든 나가서 소파에 널브러져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있을 때의 그 안정감이 참 좋다. 한 2년 정도 밖에서 살다가 들어온 지 세 달쯤 됐는데, 곧 다시 독립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펼쳐질 재미있는 꿍꿍이를 꾸미고 있기도 하고.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업무의 편리함과 생산성에 따라 마음대로 밀었다 당겼다 할 수 있는 건,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얻은 자유다. 어쩌면 누구나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성격에 안 맞는 사람에겐 매일 새벽 6시에 출근길에 나서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성격 탓이다. 규칙적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 나와는 요만큼도 어울리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삶의 큰 틀을 잡는 것이 더 쉬워졌다. 편하고 재밌는 일들만 하기로 마음먹고 실제로 그렇게 세상을 내 입맛에 맞추다 보니, 이제는 내 주변이 다 그렇게 정리되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더니. 맞는 말이더라. 일을 해야 할 때는 미쳐서 일하고, 쉴 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올 나잇 워커홀릭이면서 동시에 프로 백수다. 글을 쏟아낼 때는 며칠 안에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내면서도, 안 써지면 글을 언제 썼냐는 듯이 완전히 놓아버리기도 한다. 중앙선 그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양 극단을 오고 가며 중심을 맞춘다. 


나는 내가 언제 일을 잘 하는지 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잘 하는지도 안다. 그래서 일을 하기 참 편하다.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받지를 않으니까 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누군가 내 글이나 작품에 좀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어쩌다 보니 나이 스물둘에 벌써 사회생활 5년 차다. 시작부터 배짱을 두둑하게 부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했던 터라,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기반이 만들어졌다. 여행도 다니고, 조그만 사업체 경영도 해보고, 내 회사도 만들어 보고, 이래저래 해본 것이 많아서 참 좋다. 덕분에 대학에서 안 가르치는 내공이 많이 쌓였다. 매너 있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만, 이기겠다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어리다고 무시하다가, 나한테 물려서 피 본 회사들 몇 군데 된다. 계약서에 써놓지도 않은, 실무면접 때도 얘기 안 했던 수습기간을 핑계로 급여를 공제해버리길래 조용히 서너 달 동안 증거를 모아놨다가, 목돈으로 되돌려 받은 적도 있고, 은근슬쩍 추가 수당 빼먹으려는 회사를 나오면서 마지막 남은 내 월급 십원 한 장까지 다 받아온 적도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얻어진 전투력은 아니다. 열여덞에 일찍 졸업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치이며 배우고 있었겠지만, 다행히 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 더러운 꼴을 웬만큼 봐 두어서,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다.


물론, 내 주변의 세상을 내 입맛대로 고치는 건 힘든 작업이다. 모두가 부장의 퇴근을 기다릴 때, 6시 땡 하자마자 내일 뵙겠단 인사를 날리며 퇴근할 수 있는 포커페이스와, 내가 원하는 것은 버티고 싸워서 결국 얻어내고야 마는 지독함을 가지고 몇 년을 쌓아 올려야 한다. 나는 3년 걸렸다. 처음엔, 학교를 일찍 졸업했단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고, 그 모든 것들이 점점 굳어져 가면서, 좀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그동안 행복을 위해 싸워왔던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권을 위해 이리도 많은 싸움을 이겨내야 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 내가 조금은 유별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참 오랜만에 긴 글을 쓴다. 참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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