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 프로 DIY러의 작업실 페이스오프!
Johnny Kim
내가 지금 사는 집에 이사를 온 건 열여덟 살 때였다. 벌써 4년 전이다. 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한 가지 버킷리스트가 있었다면, 방을 내 손으로 직접 꾸미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방은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 무지 벽지로 도배를 했다. 마치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는 거대한 도화지 안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열아홉 살에, 사진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내 벽은 액자의 배치와 사이즈를 가늠하는 용도로 사용했었다. A3 사이즈부터 가로폭이 1미터가 넘는 크기까지,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도록 연필로 사각형 프레임을 그려두고 방의 반대편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실물 사이즈로 시뮬레이션을 했었다. 예쁜 벽지였다면, 벽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놓는 것부터 상상도 못 할 일이었겠지만, 흰색 벽지라 부담이 없었다. 이러려고 제일 저렴한 흰색 무지벽지로 도배한 것이기도 했고.
그리고는 문구점에서 큰 색도화지를 여러 장 사 와서,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 붙여놓고 살았었다. 네 가지 색으로 나뭇잎도 만들어 풍성하게 붙이고. 파란 새 한 마리도 가지에 붙여두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쓰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컴퓨터를 다 뒤져보았는데, 아쉽지만 남아있는 사진은 없었다. 언젠가 하드디스크를 크게 날려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사라진 것 같다.
그렇게 내 방은, 큰 나무 한 그루가 심긴 상태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열아홉 때, 캄보디아 촬영에 이어, 스무 살엔 세계를 누볐고, 스물한 살엔 제주도에서 살았고, 스물둘이 되어서야 집에 다시 정착해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최근에 완성된 인테리어의 1차 페이스오프도 그때 진행된 거다.
오랜만에 집에 막 들어와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인가, 3년 전에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내 방을, 내 손으로 꾸민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디자인 기획을 시작했고, 준비가 끝나자마자 인테리어샵에 가서, 필요한 재료들을 사들고 왔다. 쇠뿔도 단 숨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시작된 게 작업실 페이스오프였다.
디자인 컨셉은 Urban Warmth. 디자이너들이 얘기하듯이 괜히 멋지게 표현해보자면 이렇다. 도시의 차가움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따뜻한 온기. 디지털의 극단에 있으면서 감성을 담아내는 내 작업 스타일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페이스오프의 기능적 중점은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있었다. 내가 지내는 집은 서울의 경계선에서 고작 2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창문 너머로 산이 보이고, 조금만 걸어나가면 시냇물이 흐르는 동네에 있다. 거기다 방에 달린 창문이 참 거대했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사진이나 영상을 편집하든, 어떤 매체를 바라보는 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내게, 자연의 변화가 너무나 잘 느껴지는 내 방은, 살기 좋은 곳일지는 몰라도 작업공간으로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외부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정한 느낌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책 혹은 모니터 말고는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없도록 방 전체에 미니멀하고 최소화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부담스럽게 쏟아져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철저하게 막을 수 있도록 창틀 너비에 꼭 맞는 암막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또, 소소하게는 멀티탭 재배치라든지, 공유기를 벽에 설치하는 등 작업실 사용 편의성을 위한 몇 가지의 개선점도 적용했다.
일단 어두운 회색으로 공간에 무게감을 준 후에, 따뜻한 컬러의 조명으로 밸런스를 맞출 계획이었다. 밝은 조명 하나보다는, 서로 다른 톤의 아기자기한 조명을 다양하게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페인트의 컬러가 Pantone Cool Gray 11C였다. 회색은 차분한 안정감을 주는 컬러다. 무채색이면서도 조명을 잘 이용하면 지루하거나 차갑지 않고, 특색이 없는 컬러이기 때문에 어디든 잘 묻어들어간다. 그리고 한 가지 컬러만 살려놓고 나머지를 B/W 처리하는 사진 기법처럼, 모니터를 제외한 다른 곳의 컬러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려는 내 의도에 가장 잘 맞는 컬러이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벽이 액자 시뮬레이션이 그려져 있던 벽이고, 왼쪽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붙어있던 나무의 흔적이다. 창가에 있는 조명도 새로 추가했다. 천장에 배선만 설치되어있는 상태였는데, 전등갓이 달린 클래식한 소켓을 설치했다. 필립스 12W LED 전구다. 색온도는 3000K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상용 스탠드도 하나 새로 구입했다. 전구는 역시 필립스의 7W LED. 색온도는 같다. 가까운 곳에 두고 사용하는 전구이기 때문에, 광량이 적은 것으로 구매했다.
방의 길이와 폭은 각각 5000mm, 3000mm, 그리고 높이는 2400mm다. 양쪽의 큰 벽을 뺀 나머지 작은 벽은 각각 문과 창문이 있어서, 칠해야 하는 면적이 방의 크기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다. 페인트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조색이 필요 없는 컬러여서, 점도만 일정하게 유지해서 발라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가구를 거실로 옮기고 작업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냥 간단하게 작업하는 벽의 반대쪽으로 가구를 몰아넣는 쪽을 선택했다. 페인트를 칠하는 것보다, 가구를 옮기고 방을 정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만일을 대비해 김장비닐로 덮어두었고, 장판은 뒤집어 말아두었다. 자세한 작업 사진을 남겨두지 못한 게 아쉽다.
페이스오프 1차전은,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작업이었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총 작업시간은 5시간 정도. 벽지가 코팅되어있지 않는 종이였기 때문에, 페인트를 참 잘 흡수했다. 페인트칠 후에도 남아있는 벽지의 텍스쳐는 덤. 벽지가 텍스쳐가 없이 매끈했다면 어딘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을 거다.
1. 벽 페인트칠 (Pantone Cool Gray 11C)
2. 천장 조명 한 개 설치 (12W LED, 3000K)
3. 책상용 스탠드 설치 (7W LED, 3000K)
4. 벽에 나사를 박아서 공유기 설치
1차 페이스오프를 끝낸 건 2017년 4월 말이었다.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첫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나서부터 무척이나 바빠졌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방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는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갔고, 또다시 집을 몇 달 동안 비워두었기 때문에 큰 변화를 주는 작업은 해가 바뀔 때까지 미뤄졌다.
올해 1월, 제주도에서 막 돌아왔을 때, 내 방은 아빠와 동생 방을 예쁘게 정리하기 위한 창고 비슷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아니! 아무리 밖에 나가 지내는 날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창고라니요... 이 사람들이!) 첫 페이스오프의 계기는 버킷리스트였고, 두 번째 페이스오프의 계기는 방 다이어트였다. 들어오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방을 정리하면서 가구 배치를 송두리째 뒤집기 시작했고, 그 작업이 2차 페이스오프가 되었다.
방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물건들을 꺼내서 분류하고, 과감하게 많은 것을 내다 버리는 것만 꼬박 3일이 걸렸다. 그동안 집에 오래 여유롭게 붙어있는 날이 없었다는 핑계로 미뤄 온 작업이기 때문에 4년 동안 밀린 청소나 다름없었다. 어느 정도 대청소가 마무리되어갈 때, 새로운 가구 배치를 위한 구상을 시작했다.
내 방의 구조는 참 특이하다. 방의 왼쪽 구석에는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해치가 달려있고(단독주택 아니고 아파트다. 1층의 특권이랄까) 마주 보는 모서리(위 사진의 왼쪽 끝, 거울이 있는 곳)에는 벽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큰 옷장이 있다. 창고가 딸려있고, 옷장이 벽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공간 활용에는 유리하지만, 폭이 좁고 길이가 길며, 모서리 두 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인터넷 단자가 한쪽에만 있어서, 책상의 위치도 사실상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디자인의 옵션도 줄어들지만, 다행히 여러 방면으로 테트리스를 해 본 후에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머리가 창문 쪽에 가도록, 긴 변에 붙여두었던 침대를 90도 돌려서 창문과 평행하게 두었고(침대를 그렇게 놓으면 지하실 해치 옆으로 여유가 1cm도 남지 않을 만큼 절묘하게 딱 들어간다. 폭이 좁아서 그렇다.) 메인 책상 왼쪽에 두었던 책꽂이를 침대 옆으로 옮겼다. 침대와 책꽂이 사이에는 간이 소파를 놓았다. 그래서 아주 아늑한 독서공간이 확보되었다. 메인 책상은 스탠드얼론으로 따로 떼어 두었고, 메인 책상의 반대편으로는 보조 책상이 있다. 2차 페이스오프는 공간을 용도에 따라 분리하는 것과 조명을 추가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번 섹션은 사진을 많이 넣어봤다. 전체적인 공간 배치는 위에 올린 파노라마 사진과 같다. 소소한 디테일은 사진에 각각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독서공간은 침대 옆에 만들어두었다. 일하는 공간과 책을 읽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어서였다. 책을 읽다 소파가 불편하면 언제든 침대로 슥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러다 스르르 잠들 수도 있다. 메인 책상에서 사용하던 스탠드를 책꽂이로 가져와 라이트박스를 만들었다. 직광이 아니라 반사광으로 독서등을 구성해 봤다. 라이트박스! 조금 어둡다 싶으면, 천장에 설치된(아까 소개한) 조명을 켤 수도 있다. 처음에 무드등을 설치했을 땐, 침대 바로 위에 설치된 조명인데도 방문 옆에 있는 스위치로 켜고 꺼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페이스오프엔 독서등을 설치하면서 무드등 스위치도 침대에서 조작할 수 있도록, 배선을 따로 빼서 스위치가 있는 멀티탭에 연결해 두었다. 이젠 호텔처럼, 누워서 무드등과 독서등/수면등을 켜고 끌 수 있다. 오예! 거기에 메인 책상에서 사용하던 스피커도 침실/독서공간으로 가지고 왔다. 고품질 사운드를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호호호
이전에 달아 두었던 천장 조명은 위치를 약간 옮겼고, 침대 머리맡 멀티탭에서 켜고 끌 수 있게 전선을 새로 설치했다. 그러면서 다시 홀로 남은 천장 배선은 레일 조명을 연결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타이밍 좋게, 새것같이 깨끗한 레일, 전선, 전구 세 개까지 풀 세트를 중고로 2만 원에 사 왔다.
그래서, 이젠 작업실 책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 봐도 예쁜 내 책상 호호호. 거기에, 얼마 전부터 같이 일하던 헤어숍의 쇼핑몰 사업을 책임지게 되어서, 제품 선반을 새로 추가했다. 어느 한 곳 버려지지 않은, 꽉 찬 구성의 인테리어가 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여기서 배치를 크게 바꾸는 일은 없을 것도 같다. 1년의 작업 기간을 거쳐 완성된, 룸 스윗 룸:D
1. 페인트 작업 Touch Up (Pantone Cool Gray 11C)
2. 가구의 전면적 재배치
3. 레일 조명 설치 (12W LED, 3000K 1EA, 5600K 2EA)
4. 독서용 라이트박스 설치 (7W LED, 3000K)
5. 무드등/독서등 컨트롤을 침대에서 할 수 있도록 배선작업
6. 대~~청~~소
생각해보면, 인테리어의 큰 획을 그은 건 그동안 소소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선택했던 지름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작업실 페이스오프 번외편. 아, 행복한 지름이여.
작업실 페이스오프를 하면서 처음으로 지른 물건은 로지텍의 무선 마우스 G602였다. 작업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작업공간의 편의성을 끌어올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잡을수록 편안한 그립감. 거기에 작업도, 게임도 놓치지 않는 성능 때문에, 아주 즐겁고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
아아, 나의 히어로, LG의 울트라와이드 모니터다. 두 대의 노트북 모두 15인치이지만,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에는 약간 아쉬운 화면 사이즈 때문에 불편했는데, 이 녀석이 날 살렸다. 마우스와는 다르게, 작업실의 분위기를 많이 바꿔놓기도 했다. 일단 크기에서 오는 포스가 장난이 아님. 거기에, 내 벽의 컬러와 잘 어우러져 들어가는 블랙 컬러와, 미니멀한 디자인 덕분에 책상이 참 예뻐졌다.
메인 모니터링 스피커로 쓰던 녀석들을 자신 있게 북셸프로 뺄 수 있었던 건, 걸출한 신예가 투입되어서였다. 영상이나 음악 작업을 할 때 보통 인이어 모니터를 쓰곤 했는데, 아무래도 귀에 밀착되는 이어폰이다 보니 오래 사용하면 귓속에 습기가 차서 외이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질렀다. 최고의 음질, 한 음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에, 책상에 있기만 해도 멋짐이 폭발하는 포스까지. 지르고 나서 이렇게 오래도록 기분이 좋은 물건도 없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지른 품목, 그리고 제일 비싼 녀석이기도 하다. 이동이 많아서 작업용 컴퓨터는 한사코 노트북을 고집했었는데, 이제는 서울에 정착할 예정이라 큰 맘먹고 질렀다. 아 역시, 컴퓨터는 신제품이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 작업용으로는 주로 맥 OS를 사용하는 편이라, 해킨토시를 올려 두었다. 걸출한 성능. 그리고 아주 조용한 소음. 아주 믿음직스럽다.
동생이 책상을 새로 사면서, 있던 책상을 버리려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내 방으로 뺏어온 뒤, 벽과 같은 컬러의 페인트를 칠했고, 제품 스튜디오로 쓰고 있다. 이것이_사진작가의_인테리어_빅픽쳐!
어머나, 이렇게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니! 감사하옵니다:D
안녕하세요, 여행작가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글, 재밌게 신나게 즐겁게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도록, 잊지말고 구독&라이크&공유 찍고 가시는 센스는 더 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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