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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Jan 22. 2018

내가 참 아끼는, 너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SEFfZDAGuhU

누구나 다 그런 순간을 안고 살아. 언제나처럼 넌 잘 하고 있어.



달려야만 사는 줄 알았어. 물장구를 쳐야만 떠있는 줄 알았고. 지금 네가 그렇듯, 나도 그랬어. 내 손으로 독립해 살며, 내 꿈을 이루며, 벌써 열 개 나라를 여행했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러웠지. 남들은 아직 학교에 있던 나이에, 고등학교를 일찍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던 내 자신을 참 대단하다고 여겼고 말야. 이 모든 것들이 처음엔 그렇게 시작됐어. 몇 번인가의 긴 여행도, 독립해서 지내던 날들도, 어린 나이에 얻게 된 매니저 그리고 대표라는 직함도. 


무언가를 열심히 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대단하다며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어. 엽서를 팔며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사람들의 눈에서 읽었던 부러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자랑하려면 자랑할 수 있는 일들은 아주 많았지. 그런데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항상 불안했어. 다음 번에는 항상 더 나은 무언가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새부턴가, 내가 이루어낸 것들이 점점 내 목을 죄기 시작하더라. 실패, 실수, 한 걸음의 후퇴조차 용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것이 세 걸음을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의 물러섬이라고 했을지라도 말야. 내 옆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고, 난 살기 위해 버텨야만 했으니까.


홍콩에서 돈이 다 떨어진 채로 거리에서 엽서를 팔며 일주일을 버티면서도, 오후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새벽 4시반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알바를 몇 달이나 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학교를 박차고 나온 이후로는 쉬어본 적이 없었지. 난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는 줄 알았으니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작년 여름에 나는 2년을 같이 지낸 사람과의 이별을 겪었어. 그런데도 나는 쉬지 않았지. 오히려 글을 더 많이 쓰고, 사진도 더 많이 찍었던 것 같아. 돈 되는 일도 더 많이 했고. 나의 감정을, 나의 슬픔을, 나의 상태를 똑바로 대면하기보다, 있는 힘껏 옆으로 치워두었어. 감정이란 애들도, 내가 관심을 안 주면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바쁘면 잊혀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러던 차에 타이밍 좋게, 제주에서의 작업 의뢰가 들어왔어. 금액도 크고, 장소도 제주도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신나게 작업을 기획했고, 그것을 통한 새로운 사업을 준비했어. 다 던져서 뛰어들었는데, 허무하게도, 2주만에 무기한 보류 상태가 됐지.


그 일이 있던 9월 중순부터, 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친한 사장님네 게하에 머물며, 청소랑 내 밥 해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냈어. 정말 말 그대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고, 글도 새로 올리지 않았지. 지난 3년간, 사진과 글 그리고 내가 겪은 이야기로 유명세를 얻고 돈을 벌어왔던 내게 그건 삶의 의지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어. 좋아하는 바에 맥주를 마시러 가는 때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때 빼고는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어. 난 평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무책임한 행동이 없다고 믿어왔는데, 그래서 그것을 가장 두려워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굶어 죽는 건 아니란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됐지. 사실 정말 힘들었어. 손에 쥔 것들을 모두 놓는 것 말야. 놓았다기보다는 잡을 힘이 사라진 것이었지만…


사람도 잃고, 일도 잃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만약 제주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아주 잘 됐다면, 지금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달리고있었을지 몰라. 참 미련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기운이 빠지고 나서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지. 쉬는 시간을 조금 일찍 가졌더라면, 사람도 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 빼고 가만히 있는 건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대세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타는 것이었어. 두려움은, 대부분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참 웃기지? 내 생각이 내 발목을 잡는 거 말야.


충분히 쉬고 나니까, 맘이 편안해지고 나니까, 잊고 지냈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더라. 그제서야 말야. 참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불가능할 것만 같다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어.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심도. 돈 때문에 안 될거라고 제쳐뒀던 대학 문제도. 그저, 내가 그 문제를 넘지 못하는 벽이라고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지. 그 또한 내 생각이었어.


이 세상을 만든 신도, 무언가를 만들고 나서는 자기 작품을 돌아보았고,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쉼을 누렸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는 그 순간을 뿌듯해했고, 그가 쉬었던 그 날을 축복하겠다고 얘기했지. 혹시나 사람들이 쉬는 것을 불안해할까봐, 자신이 쉬었던 그 날을 축복까지 하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내가 누군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게 많은 게 무엇이고, 부족한 게 무엇인지. 내가 참 존경하는 멘토님이 그러셨어. 멈춰야 할 때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넘어져서라도 멈추게 된다고. 괜찮아. 쉬어도 돼. 아니, 쉬어야 해.


넌, 나처럼. 이렇게 힘들게 깨닫지 않았음 해.

내가 참 아끼는,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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