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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인지천 May 17. 2024

관심 vs 간섭

- 나 자신에 대한 이해로부터

관심은 좋은데 간섭은 사양할게요~

하지만, 그 경계가 참 모호하다. 관심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간섭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무관심과 간섭, 그 사이 어딘가에


국어사전의 의미를 찾아보면 그 구분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관심(關心)

: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


간섭(干涉)

: 직접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함          


하지만, 현실에서는 구분이 모호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달라진 경우이다. 특히 간섭은 국어사전의 정의와 달리 직접 관계가 있는 사이, 부모와 자식 또는 연인 사이에서도 쉽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 더 이상 간섭받기 싫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더 이상 간섭을 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부터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간섭이라고 생각했으면 거부했을 텐데,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후 나중에 간섭으로 느끼는 경우이다. 그런데 그 변화가 누구에게서 시작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간섭이라고 생각되면, 계속 간섭으로 느껴진다.


나는 관심을 보이는가? 간섭을 하고 있는가?




관계


어릴 때는 본능적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따른다. 이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고분히 듣고 있던 예전의 자아가 변해간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하고 싶은 영역이 생긴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말하면,

'이제 그 부분은 간섭받고 싶지 않아요'

의 현실적 표현이다. 


아이가 자란다고, 부모가 함께 성장하지는 않는다. 부모에게 자식은 비록 성인이 되었다 해도,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자식일 뿐이다. 그래서 관계의 변화는 자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사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렇다고, 서양의 모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 가정교육을 보면 서구 사회와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차이가 많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살 준비를 한다. 우리는 품에 있는 자식은 돌봐줘야 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품에서 자식을 보내는 순간, 비로소 떠나보내려 하는데 그 준비 기간이 너무 짧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서 해서 가정 안에서만 다뤄지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의 구조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맞고 틀리다는 접근보다는, 시대적 흐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에 비해서 더 연결고리가 약한 사회적 만남에서는 쉽게 관심과 간섭, 그리고 무관심을 오간다. 분명 서로에 대한 호감 또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되는 관계인데, 어느 순간 그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원인으로 누군가에게 무시를 받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대우를 못 받는다는 감정이 들 수도 있다. 이런 감정을 느낀 나라면, 결정을 한다. 이대로 갈 것인가? 여기서 끝낼 것인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의 대화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의 관심과 간섭, 그리고 무관심을 해석할 때 건강한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느닷없이 연인에게,

"우리 이제 그만 끝내자"

라고 한다면,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상대방은 당황할 것이다.


나의 선택 기준이 상대방이 보기에 합리적이라고 판단이 들면, 대화를 시도하거나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선택이라고 느낀다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오거나 심한 배신감을 토로한다. 이때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기도 한다.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관심과 간섭에 대응하는 나를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간섭에 관대한가?

나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사람으로부터 오는 상처와 불안감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관심과 관심으로 나뉘기보다는, 관심과 간섭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가 쌓여가면, 더 현명한 판단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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