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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Apr 30. 2020

달의 미소

두 번째 행복

바쁘게 살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는데, 밤하늘의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한 건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 때는 밤하늘이 너무 멋져서, 천문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손전등으로 별을 비추며 천체 망원경으로 너무 예쁜 별들을 가까이 보여주던 천문대 체험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내 나이에도 맞지 않았던 우주와 별에 대한 책을 사달라고 졸라서 우주와 별 사진을 하염없이 보곤 했다. 열정적으로 별을 사랑하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내가 눈여겨보던 천체 망원경을 사주는 대신 천문대에 나를 다시 데려갔다. 그 날은 천문대 선생님이 달이 너무 밝아서 다른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달을 아주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망원경으로 보여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구멍에 눈을 대고 보았던 달의 영롱한 자태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호기심 많은 어린이였던 나는 아주 여러 번 미래의 직업을 바꾸었다. 사춘기 중간쯤에 코스모스 같은 책을 읽으며 우주물리학자의 꿈도 스쳐갔으나, 그때쯤엔 내 수학 점수나 물리 점수를 보고 미래의 직업을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준은 되었던 것 같다. 20살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유년 시절이 끝나 성인이 될 때까지 달이나 별에 대해 깊게 생각하거나 밤하늘을 올려다보진 않았다. 그래도 대학생 시절엔 꽤 낭만적인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달과 별을 많이 보곤 했다. 천체 관측 동아리는 아니었고, 풍물패였는데 방학마다 1주나 2주씩 산골에 위치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전수관에 가서 밤마다 달과 별을 벗 삼아 연습하곤 했다. 어찌나 산골이었는지 주변 환경 보전을 위해 모든 전수생들이 샴푸 대신 비누와 사과식초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었다. 근처의 문명 시설은 그 전수관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이 모두 끝나고 자율 연습시간인 저녁이 오면 달과 별이 아주 가깝게 많이 보였다. 그때까진 달을 올려다보는 것도, 거기서 둥근달이 나오는 민요를 부르는 것도, 달이 작아지면 보이는 별들을 보는 것도 그저 좋았던 것 같다.


밤하늘이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게 느껴진 것은, 겨울에 별을 보며 출근해서 다시 별이 뜰 때 퇴근해야 하던 간호사 시절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낮을 볼 수 없는 뱀파이어라도 된 것 마냥 3교대의 쳇바퀴 속에서 늘 밤하늘은 나를 더 외롭고 춥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두운 하늘은 애써 올려다보기 싫은 것이 되어버렸다. 일찍 출근하는 것이든, 늦게 퇴근하는 것이든 사방이 어두우면 나도 같이 어둡고 고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환자 상태는 밤이나 새벽에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12시간 이상 근무하고 나서 마주치는 밤하늘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사실 그런 날을 보내고 나면 밤새 일하고 달이 아니라 해가 비쳐도 눈물이 나곤 했다. 생각해보면 간호사 생활을 했던 몇 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내게 밤의 달과 별은 낭만이고 로망이었는데, 몇 년의 어두운 출퇴근길은 더 이상 내가 밤하늘을 보지 않도록 만들고 말았다. 달은 별로 잘못도 없이 내 미움을 받았고, 나는 밤이 오면 어두운 하늘보다 밝은 건물 안으로 종종거리며 도망치듯 그렇게 살게 되었다.


3교대를 벗어나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도, 밤하늘은 야근할 때가 아니면 굳이 볼 일도 없었고 달 모양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 여유는 더욱 없었다. 그래도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에 지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점심시간에 혼자 한강에 나가 낮에 뜬 달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걸 보면서 하는 생각이란 낭만과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 대부분 오늘은 저 달이 밝게 뜨는 시간이 오기 전에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정도였다. 야근하는 날,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한강공원을 지나가면서 보이는 달의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졌고 오늘은 몇 시간이나 자고 출근할 수 있을까를 계산했다. 직장인이 되고 난 후의 달은 어쨌든 내게 어릴 때와 같은 의미일 수 없었다. 천문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어린 시절의 꿈이나, 거기서 봤던 달의 모습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는 과거일 뿐이었다.


그 날의 달을 발견한 것은, 내가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어서 일지도 모른다. 서서히 지쳐가던 마음이 이제 그만하라고 몸에 신호를 보내며 자주 쓰러지면서 나는 멋지게 백수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멋진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나를 위한 최고로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백수의 신분과 함께 나는 새로운 환경에 살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소설이나 희곡, 문학류 전자책을 부자처럼 사들여 탐독하며 지냈는데, 그 날은 남편이 집 근처의 하천 산책로와 카페거리를 발견했다며 그 근처를 걷게 되었던 날이었다. 조용하게 흐르는 작은 하천과 산책로, 사람이 없는 거리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과 약간 시원한 바람의 도움으로 거의 완벽한 장면처럼 보였다. 다음에 그곳에 찾아가면 근처에 어떤 카페가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주변을 둘러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나는 다음엔 저기도 가보자, 하며 그 근처의 거의 모든 카페들을 가리켰고 남편은 그저 웃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산책한 그 하천 근처에서 그 달을 마주칠 때 더욱 그랬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1번이냐 2번이냐를 선택해야 했고, 가능하면 두 개를 다 해야만 했던 지난 수년간의 세월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요즘은 다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를 근본부터 다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날 달을 마주친 순간, 어린 시절 천문대의 기억까지 소환되고 말았던 것 같다. 나는 시작일지, 가는 길인지, 길을 잃고 다시 경로를 찾고 있는 중인지 모를 시간을 30대가 되어 보내고 있다. 진로 고민은 사춘기 때 충분히 했으니 다시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불안과 고요, 평온과 기쁨 사이를 오가던 나는 그 날 분명히 보았다. 달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로 미소를 짓는 것만 같은 모양으로 떠 있었다. 그 날의 그 달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같은 어린 시절의 내 다른 꿈들도 다시 가져도 괜찮다고 승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주 웃었다. 이 정도면 그 날의 달도 내 대답을 알아들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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