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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Apr 26. 2020

식물 초보가 꽃과 함께 사는 방법

첫 번째 행복

꽃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꽃과 식물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 때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비서 일을 하게 됐을 때였는데, 나의 보스는 녹색 식물과 꽃들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었다. 가끔 직접 나무들을 닦아주시기도 하고, 동양란을 제외하고 20개가 넘는 화분에서 매일 새 잎이 나는 것을 구분해서 알 수 있을 만큼 애정을 가진 분이었다. 나는 그분의 비서로서 공식 업무에 그 화분들을 관리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난도 다 죽이던 내가 그분의 연약한 나무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침마다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고, 빛을 좋아하는 화분과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화분, 물을 많이 먹는 화분과 많이 주면 죽는 화분에 대해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일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는 화분이나 꽃을 키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좋아하는 일도 업무가 되면 싫어진다고 하는데, 관심이 없던 일이라 식물이 좋아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결혼해서 집의 모든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 때부터, 어쩐지 창가에 화분이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졌다. 첫 신혼집에 어울리는 작은 화분을 키우면서, 새 잎이 나고 자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내가 모르는 사이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보기 좋았다. 내가 내 화분을 키우기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그때의 보스 마음을 이해했다. 바쁘고 힘든 일만 계속되는 일상에서, 말없이 자기 삶을 계속하고 살아내는 그 꽃과 화분들이 그분에게 위로가 되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보기에 예쁜 화분을 들이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내재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벌레가 생기고, 약을 뿌리면 또 다른 병이 생기고, 물이 적어서 그런지 많아서 그런지 원인조차 모른 채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미 환경에 적응한 화분을 전임자가 가르쳐 준 매뉴얼대로 키우던 비서 시절과는 달리, 나는 몇 번 화분을 비우면서 나름대로 식물을 들이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방법은, 그저 예쁘다고 사 오지 않는 것이었다. 플라워 카페나 아주 예쁘게 꾸며 놓은 작은 꽃집에 가면 생소한 꽃과 예쁜 화분들이 마음 약한 고객인 나를 흔들어대곤 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의 화분과 까다로운 꽃들은 그곳의 관리자쯤 되어야 반려 식물로 들일 수 있는 것임을, 나는 키워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겨울에 작은 실내 화원에서 홀린 듯 5초 만에 포인세티아 화분을 사버렸는데, 이틀 후부터 벌레가 창궐하여 크리스마스에 화분 전체가 병드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 이후로 자연광 상태에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병들어서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식물을 데려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나는 빛이 잘 드는 크고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취급하는 친절한 화원에 가서 관리가 쉬운지, 어디 두고 어떻게 키울지 다 듣고 나서 고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식물이 아프거나 너무 잘 자라서 분갈이를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너무 먼 곳보다는 차에 화분을 싣고 갈만한 집 근처 화원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면 훨씬 싼 가격에, 내가 관리할 수 있을만한 식물을 데려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제철 꽃을 사서 화병에 꽂는 방법이었다. 사실 나는 녹색 식물도 좋지만, 꽃이 피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에 따라 함께 오래 살기 위한 식물을 고르다 보면, 예쁜 꽃집을 지나칠 때마다 미련을 떨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예쁘게 묶인 꽃다발을 사기도 하고, 그 꽃을 말려 드라이플라워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이플라워도 사람들이 팔고 사는 것엔 이유가 있다. 집에서 꽃을 말리다 보니 권연 벌레가 꼬이거나, 예쁘게 마른 것 같아 방부제와 함께 병에 넣었는데도 덜 말라서 그 안에서 썩어버리는 등의 일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그저 화병에 꽂아두고 보기 위해 꽃을 사게 되었고, 예쁘게 플로리스트가 정리해둔 꽃다발이 아니더라도 제 철에 한 단씩 묶어서 3천 원, 5천 원에 파는 꽃을 사다가 내가 매일 줄기를 다듬어서 서서히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기로 했다. 이렇게 산 꽃은 활짝 핀 꽃보다 꽃봉오리가 많지만, 매일 물을 갈아줄 때마다 줄기 끝을 조금씩 사선으로 잘라주면 꽃다발로 사 온 꽃보다 높은 확률로 싱싱하고, 오래도록 피고 지는 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려온 꽃들은 오래도록 쉽게 키울만한 녹색 화분이 주지 못하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한껏 채워주었다.


세 번째는, 식물은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말하지 못하니 매일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나는, 식물을 돌보는 일이 아기를 돌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들도 매뉴얼대로만 따라 한다고 돌볼 수 없듯, 아무리 꽃을 사 온 화원에서 며칠에 한번 물을 주라고 친절하게 알려줘도, 날이 너무 습하거나 건조하면 그 주기는 바뀌기 마련이다. 사람도 건조하면 물을 더 마시는데, 물이 주식인 식물은 더할 수밖에 없다. 나는 흙에 손가락을 한 마디 정도 넣어서 흙이 말랐는지를 2-3일 간격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놀라울 정도로 물을 많이 먹는 수국 같은 친구들은 손가락을 넣을 필요도 없이 눈으로 보기에도 흙이 금방 말라서 봄과 여름엔 매일 샤워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육이 종류인 화분들은 겉으로는 흙이 말라 보여도 물을 더 주면 바로 잎이 썩어 들어가기도 했다. 각자의 선호도를 내게 말해줄 수 없으니, 내가 더 자주 들여다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함께 살기로 작정한 이상 내가 가장 건강해야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너무 우울하고 힘들 때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화분의 흙이 말랐는지, 병이 들었는지, 햇빛이 필요한지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나 자신조차 돌보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식물 친구들도 병들거나 시들시들해졌다. 돌보는 사람이 제대로 보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대책 없는 사직을 결정해 생 백수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어떤 식물도 키우지 못했다. 내 마음처럼 모두 병들고 죽어버렸고, 새 친구를 들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도, 키우기 쉬운 화분들도 건사하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식물 친구들을 맞이했다. 집 안에 화분을 두고 다시 돌보고 싶은 욕구는 내 몸도 마음도 이제는 다른 생명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충전되었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나는 화원에 가서 커다란 잎과 꽃이 매력적인 스파티필름과, 향긋한 바질을 우선 데려왔다. 그리고 지나가다가 마주친 라넌큘러스 한 다발도 잘 보이는 곳에 줄기를 다듬어 꽂아두었다.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라넌큘러스의 줄기를 다듬어 물을 갈아주고, 덜 핀 봉우리를 창문 쪽으로 돌려서 다시 꽂아준다. 그리고 화분들의 흙 상태를 확인하고, 오후 햇살에 맞춰 거실에 빛이 들면 바질 화분을 얼른 빛에 맞춰서 자리를 옮겨준다. 오늘도 결혼사진 앞을 빛내는 라넌큘러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내일은 스파티필름에 올라온 새 꽃도 활짝 열릴 것 같다. 오늘도 힘차게 피어있는 라넌큘러스와, 멋진 스파티필름의 줄기와, 잎이 무성 해지는 바질 덕분에 웃으며 아침을 맞았다. 아마도 내일 아침의 미소도 이 친구들 덕분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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