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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May 24. 2020

Every story is a love story

세 번째 행복

어린 시절, 매년 5월이 오면 내게는 가슴 뛰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1년에 단 한번, 어린이날이 오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하는 어린이 뮤지컬을 꼭 보여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내가 모두 좌석에 앉아 뮤지컬을 보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꼭 한 분이라도 나를 데려가서 뮤지컬을 보여주시곤 했다. 그리고 나올 때는 꼭 뮤지컬 OST 테이프를 사주셨는데, 나는 1년 내내 그 노래를 외워서 부르며 다녔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가요보다 뮤지컬 형식의 노래가 익숙했고, 친구들이 잘 모르는 노래를 혼자 부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20살, 성인이 되어 처음 내 돈을 모아 보러 갔던 뮤지컬은 '햄릿'이었다. 햄릿은 원래 "To be, or not to be"로 유명한 연극이지만 그때 본 뮤지컬이 내게 강렬하게 전해줬던 대사는 그게 아니었다. 대신, "산다는 게 연극 같아 온통 거짓말 속에 가려져 있어"라는 노래를 부르며 새아버지에게 보여줄 연극을 준비하는 햄릿의 노래가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인생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었지만, 그 노래뿐만 아니라 햄릿의 널뛰는 감정을 노래하는 매력적인 넘버들과 진짜 뮤지컬의 호흡에 나는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꽤 긴 기간 동안 공연했던 그 햄릿을, 나는 돈이 생기면 보고, 또 생기면 또 그걸 보러 가곤 했다.


뮤지컬의 시작은 '햄릿'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그것만 볼 수 없었다.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 한 돈이나 용돈이 모이면 다른 걸 또 보러 가고,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학생에겐 쉬운 취미 생활이 아니었기에 늘 다음 작품을 고르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건 많아야 1년에 2번이나 3번 정도였지만, 한 번 공연을 보고 나면 마음에 남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마음,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를 계속 품고 지냈다. 물론, 어릴 때처럼 OST를 파는 곳에서는 용돈이 부족하더라도 늘 CD를 사서 돌아오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에서도 이 습관은 변하지 않았고,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위키드를 보고 나왔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는 한국에 뮤지컬 위키드가 나오기 전이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라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웨스트엔드에서 딱 한 작품만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선택한 뮤지컬은 위키드였고, 나는 오즈의 마법과 엘파바, 글린다에게 푹 빠져버려서 지금까지도 런던은 꿈속의 마법도시 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런던의 물가는 생각보다 훨씬 잔인했고, OST를 너무 사고 싶었지만 그러면 다음 날 한 끼도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이던 나는, 여행의 첫 도시였던 런던에서 남은 여행을 후회하게 만드는 결정을 할 수 없다며 돌아섰다. 다음 날부터 이어진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테이트 브리튼에서도, 테이트 모던에서도 한 번 머릿속에 박힌 OST CD는 떠나질 않았고 나는 사야만 낫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런던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런던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환불했다. 런던은 결코 걸어서 모든 곳을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고, 내가 예약한 숙소는 관광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확하게 OST 값을 마련한 나는 저녁에 극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그 CD를 사서 신나는 마음으로 40분이 넘게 걷고 뛰면서 숙소까지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그 위키드 OST CD는 내 보물 리스트에 있으며 장식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


그렇게 소중하게 하나씩 골라 보고, 다른 공연을 볼 때까지 오래도록 기억하던 시절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양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나는 공연의 메카인 대학로에 살면서 일할 수 있는 행운의 간호사가 되었다. 병원 기숙사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면에서 자유와 방종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뮤지컬을 보는 행위는, 갓 돈을 벌기 시작했으나 경제관념이 부족한 20대 초반의 나에겐 강력한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들은 스트레스가 극심하기 때문에 저마다의 방출구가 필요하다. 비싼 물건을 할부로 사면서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다음 월급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번 돈을 좋아하는 곳에 쓰며 푸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는 뮤지컬과 연극을 본 티켓을 매번 다이어리에 모아서 붙였는데, 가장 두꺼운 다이어리를 세어 보니 1년 동안 티켓이 50장이 넘어가길래 더 이상 세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이 보는 팬들도 많겠지만, 나의 경우 특정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새로운 극이라 재관람 할인 등도 없었다는 점에서 지출 사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많이 볼뿐만 아니라, 당시에 봤던 '엘리자벳'이나 '황태자 루돌프' 같은 작품 때문에 소중한 휴가를 끌어 모아 오스트리아 여행을 가서 합스부르크 왕가 유물과 궁전을 보면서 주인공들에 대한 상상을 해소할 정도로 빠져있었다.


왜 그렇게 매달려서 봐야만 했을까. 그때는 정리된 답변을 내놓을 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마음을 현실에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미운 사람과 정말 슬픈 내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고, 말로 꺼내는 순간 내 감정의 크기를 대면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질 때나 나를 믿지 못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모든 감정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풀어놓을 수 있을 때는 조용하고 어두운 객석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볼 때뿐이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풀어놓는 노래에서는 나도 마음 놓고 울었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노래에서는 나도 그 마음을 내놓았다. 나는 나 대신 울어주고 화내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잠도 안 자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그렇게 다녔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늘 '좋은 것'이었던 뮤지컬은, 다른 친구들이 아이돌을 좋아하고 팬이 될 때도 내게 누군가의 팬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에 빠지는 법, 감정이 담긴 노래와 가사를 즐기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많은 극을 자주 보던 간호사 시절에도,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이 싫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배우가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팬이 되거나 그 사람의 무대 밖 모습을 보며 내 상상 속의 주인공의 캐릭터가 깨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특정 팬클럽으로 활동한 적도 없고, 무대가 끝나고 나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도 없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를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나에게는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배우는 공연 속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타인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런데도, 어느 날 대학로를 걸어가다가 익숙한 얼굴이 보여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간호사로 일했던 나는 당연히 병원 직원이거나 환자 보호자인 줄 알고 인사를 했고, 상대방도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했는데 지나가고 나서 생각해보니 뮤지컬 배우인 걸 알고 당황했던 일이 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뮤지컬을 보는 빈도를 줄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배우를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의 연차가 더해질수록 나는 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차차 알게 되었다. 꼭 무대까지 가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공연 중인 OST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노래를 선곡해서 듣는 일도 많아졌다. 석사 논문을 쓰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는 '아침은 오지 않으리'라는 노래를 듣고, 분노가 차오르지만 표현할 수 없을 때는 몬테크리스토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들었다. 반대로 애정과 사랑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애타는 마음이 들 때는 '사랑이야', '참 예뻐요', '혹시 들은 적 있니' 같은 가슴 뛰는 노래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공연을 보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공연을 보고 나온 직후에는 최소 두 달간은 주인공의 정서와 마음에 빠져 지내곤 한다. 나는 가끔씩만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동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 남편이 노래를 외울 지경까지 들은 적도 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그나마 적게라도 보던 공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 수없이 듣고 보았던 공연들은 가끔 머릿속에서 멋대로 재생된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색한 노래가 가득하지만, 내게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른 노래들보다 소중한 노래들이 가득하다. 노래 하나하나 내게는 그 공연을 보러 갔던 상황과 그 날의 무대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말로는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해도 그 감정과 그 공연이 왜 좋았는지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가끔 뮤지컬 포스터나 홍보 문구가 '최고였다'라거나 '여태껏 이런 공연은 처음'이라는 등 다소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알 것도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얘기
소설이나 전설이나
운명적인 실화 거나
동화 속 이야기나
수천 년을 전해오던 오래된 이야기나
방금 전에 일어났던 새로운 이야기나
아름답고 기쁜 얘기
잔인하고 슬픈 얘기
수 천 명이 나오거나
한 명만 나오는 얘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 모든 얘긴
인간의 운명과 같은 애절한 사랑 얘기
 - Every Story is a Love Story

이제는 어디서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뮤지컬 '아이다'의 오프닝넘버이자 엔딩 넘버의 가사 일부다. 2019년에 그랜드 파이널 시즌을 보면서, 이 넘버를 들으며 느낀 감정이 내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유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뮤지컬이 왜 그렇게 좋아?'라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이 노래를 불러줘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노래 가사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뮤지컬의 매력이 너무 많지만, 모든 사랑 이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인간의 끌림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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