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행복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실생활에 사용할 수는 없지만 예쁘고, 그 활용도에 비해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것들이 주로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그 예쁜 쓰레기는 사는 사람이 계속 사게 된다는 신묘한 특징이 있다. 나는 계속 필요해서 샀다고 주장하는 편이지만, 나도 예쁜 쓰레기를 자주 사는 사람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남들 눈에 예쁜 쓰레기여도, 내 눈엔 보물이란 점이 중요하다. 각자 가치를 느끼는 부분이 다른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가치 환산의 기준이 돈이기 때문에, 내 보물들의 가격이 높을수록 다소 다른 이에게 주는 충격이 큰 편이다.
내가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곤 하는 아이템들은 해리포터와 관련된 것들이다. 해리포터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8살일 때, 처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서 신문에 광고가 났다. 우리 엄마는 다른 장난감은 몰라도 신문에 소개된 책을 사주시는 데 매우 관대한 분이었고, 나는 동네 서점에서 처음 그 책을 만났다. 평범한 세계에 숨어있던 마법 세계는 8살이던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버렸고, 중학생 때부터는 번역본이 나오는 걸 기다리기 힘들어 원서까지 사서 읽으며 내 영어 실력을 키워주었다. 영화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유일한 동양인 주연인 ‘초 챙’ 역에 지원하는 메일도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 친구들과 함께 자랐고,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가 나왔을 땐 나도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 친구들 모두 어른이 되어 자기 자녀들을 호그와트행 급행열차에 실어 보낼 때, 나는 나의 유년시절의 종말을 선고받은 기분이 되어 슬픈 장면도 아닌데 혼자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해리포터 책도, 영화도 끝이 났지만 아직도 주제곡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8살의 해리와 나에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모든 시리즈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아직까지 제일 좋은 건 역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다. 평범하다 못해 늘 남보다 부족한 존재인 취급을 받았던 해리가 사실은 마법사 세계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존재임을 알고 호그와트에 입학하기까지의 두근거림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나이도 거기서 멈춘 것처럼, 나는 마법사 지팡이나 해리포터 피규어, 호그와트행 급행열차 레고 등을 사 모으곤 했다. 심지어 뜨개질을 취미로 하기 시작하면서 해리포터 삼총사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해리포터 오르골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문제작 상품이었는데, 그 안에 들어간 개구리 초콜릿 모형과 헤드위그 새장 모형은 내가 유니버설 스튜디오 해리포터 존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사 온 것들이었다. 가끔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어둡고 조용한 방에서 오르골 조명을 켜고, 태엽을 돌려 오르골을 멍하니 바라보곤 한다.
어릴 때부터 작은 장난감들을 모으는 사람도 많지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고 나서 하나씩 사서 모은 것들이다. 가장 많은 돈을 쓴 것은 물론 해리포터와 관련된 것들이지만, 사실 옛날 애니메이션에 나온 캐릭터와 관련된 장난감은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벨이나 미세스팟과 칩, Frozen의 엘사와 안나, 스티치, 미니언즈 등 사실 내 장식장 속 보물들은 다양한 편이다. 이상하게 나는 성인이 되고 가장 마음이 바쁘고 힘들 때 그런 보물을 사는 것에 더 집착하곤 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지 말라는 행동은 그냥 안 하고 마는 아이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 가끔 나를 산골소녀 취급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내 돈을 주고 만화책을 빌려본 적도 없고 뽑기를 해본 적도 없다. 그냥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난감이 없이 살았다고 하기엔 기분파인 아빠가 사준 장난감이 적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추억의 놀이’라고 부르는 것에 뒤늦게 재미가 들려 한참 동안 뽑기 기계를 서성이다 고민하며 피규어를 뽑고, 장난감 가게의 유일한 어른 고객이 되는 날도 있었으며 내 침대 위 선반을 가득 작은 장난감 같은 것으로 채우곤 했다. 나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그런 일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성인인 나의 자본을 만나 장식장 두 개를 채울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신혼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나는 큰 장식장을 하나 샀다. 복잡한 동네의 작은 신혼집에서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오자 집의 크기가 커졌고, 내가 장식장을 둘 정도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은 방에 둔 장식장에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겨뒀던 나의 동심을 모두 꺼내서 넣었다. 넓은 거실이나 안방보다 그 작은 방이 가장 마음이 편한 것은 거기 둔 빈백이 편하다거나, 책장이 있어서 책을 보기 좋다거나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장식장이 거기 있어서 제일 좋은 것 같다. 집들이를 하면서도 뷰가 멋진 거실보다 훨씬 공들여 설명하고 자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저녁노을이 질 때쯤 독서등을 켜고 빈백에서 책을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가득한 장식장을 바라보면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피터팬 증후군이냐며 놀리곤 했다. 심리학이나 정신건강 면에서 이런 말은 보통 ‘어른 아이’나 ‘아이 어른’을 말할 때 쓰는 말로, 건강한 상태를 부르는 말은 아닌 편이다. 그렇지만 나의 네버랜드는 작은 방의 장식장에 국한되어 있고, 유리문을 열었을 때만 열린다는 점에서 그렇게 심각한 의미로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여러 캐릭터들을 추억하는 방법이 남들보다 구체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유하며 추억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면, 나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어린아이와 같아 나를 피터팬으로 불러야 한다면 기꺼이 피터팬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피터팬이라는 지적은 내게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