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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Jul 18. 2020

단순한 것의 매력

다섯 번째 행복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섯 번째 직장에서 중고 신입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드는 생각이니 해도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칙이 있어도 변수가 많아서 점점 복잡해지고, 예전처럼 겁 없이 행동하기도 어렵다.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으면 내가 좀 더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30대의 나는 내 나이가 적응되지 않는 좌충우돌 어른이일 뿐이다.


삶의 방식을 한 가지로 정리해서 말하기 어려운 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참 많은데, 나는 그럴 때 느끼는 불안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다스리려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을 손에 꼽아야 할 텐데, 발달과업에 맞게 점점 어려워지는 결정과 과정 안에 있을 때 내 마음을 쉬게 해주는 지점이 필요한 것이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결과물을 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가 있다. 나는 남들보다 잦은 이직만큼이나 많은 취미가 있다. 그래도 요즘에 가장 내 마음을 확실하게 가라앉혀주는 취미는 바로 뜨개질이다. 네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텅 빈 시간과 공간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나를 잠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는 뭐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그저 혼란스러웠고, 내 앞길에 대한 탐색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뜨개질이었다. 어릴 때 날이 추워지면 대바늘로 목도리나 모자처럼 단순하고 쉬운 것들을 뜨곤 했지만, 더 다양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코바늘은 미지의 세계였다. 시간도 많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 때문에 유튜브 선생님과 나는 하루 종일 실을 떴다 풀었다 하며 기본기를 익혀 인형을 뜨기 시작했다. 코를 세는 것이 익숙해지고 짧은 뜨기를 할 줄 알게 되자 인형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반복적인 작업을 집중해서 하는 게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 두 손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이 낄 틈이 없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취직이 안되면 어쩌려고 그래?’, ‘이럴 거면 석사는 왜 그렇게 눈물 콧물 빼면서 했니?’ 가끔은 누군가에게 듣기도 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하던 질문들이 무방비하고 한껏 약해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런데 코바늘을 들고 인형을 뜰 때는 여기가 어디쯤인지, 몇 번째 라인인지 몇 번째 코인지 세느라 내 머리에 울리던 그 목소리들이 모두 소리를 줄였다. 그게 좋아서 손이 아릴 때까지 뜨개질을 하고, 뭔가가 완성되면 또 바로 다음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수학적 균형에 의해 무늬가 생기고, 그 무늬가 내가 원하는 모양을 잡아가면 뿌듯해졌다.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이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좋았다.


백수로 사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오히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여전히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내 두 손이 통제할 수 있는 실과 바늘을 찾았다. 어느 정도 내가 뜨개로 만드는 물건들이 어수룩하지 않게 보이게 되자, 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뜨개로 돈을 벌만큼 속도가 빠르거나 창의적인 도안을 만들진 못해도 예쁜 것들을 선물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의 나를 귀하게 대해주고 전과 같이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정말로 내가 뜬 결과물이 고급이라서라기보다는, 그걸 만드는 동안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알아서인지 소소한 내 선물을 받는 이들은 모두 기뻐해 주었다.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뜨개는 참 효용가치가 높은 취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는 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은 때, 내 흐르는 시간을 좀 더 단순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일이 있어 비로소 균형을 잡아가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마음의 평화를 찾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미성숙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작은 성취와 통제를 이루는 일이 내게는 필요하다. 그 매력적인 일이 나의 균형을 맞춰주는 조절인자이기에 오늘도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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