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행복
우리 집에는 나와 함께 사는 식물 친구들이 있다. 내가 케어할 수 있는 만큼만 데려오려다 보니, 3개의 화분뿐이지만 그래도 집 안의 녹색을 뽐내는 예쁜 친구들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새 잎이 나는 것도, 꽃을 올려 피우는 것도 빨리 알아채고 함께 즐거워하곤 했다. 녹색 친구들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한 것은 6월에 새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직장인이라면 매일 아침마다 흙이 말랐는지 살피고, 새 잎이 나는지 보는 여유를 가지기 어렵기도 하고, 중고 신입이기에 퇴근 후엔 스스로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주말에 간신히 물을 주고 햇빛을 보게끔 화분을 돌려놓는 것이 나와 식물 친구들의 유일한 교감이었다.
날이 추워지면서, 베란다에서 늘 일광욕을 하던 식물들이 낮아진 기온 때문에 잎이 바래기 시작한 것을 보고 오랜만에 원예 가위를 들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이 춥다고 느껴질 때가 되어서야 노란 잎과 가지를 잘라내게 되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듬뿍 줄 때와 달리 화분 가까이 앉아 잎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멀리서 볼 때는 푸르지만 힘이 약하고 길이만 길어져서 다른 가지의 양분 섭취를 방해하는 잎과 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가위는 댈 필요도 없이, 건강하지 않은 얇은 잎들은 손만 대도 툭 떨어졌다. 처진 가지와 노란 잎만 자르려고 시작한 가지치기가 수북한 쭉정이들과 함께 끝나고, 내 식물들은 이제부터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다시 모양을 잡아 자라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 화분들이 지금의 나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간을 충분히 집에서 보내며 식물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나도, 그들도 건강했다.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새 가지와 잎이 많이 나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라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다시 좋은 직장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부정적인 생각과 건강하지 못한 습관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기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치기를 마치고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나서, 흙과 쭉정이들로 엉망이 된 베란다에 물을 뿌리고 쓰레기봉투에 잔해를 넣어 묶는데 화분들 위로 해가 예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화분과 함께 햇살을 맞으며 잠시 쉬었다. 비교적 큰 화분은 많이 잘라냈어도 곧 이겨낼 것처럼 씩씩했지만, 작은 화분은 휘어지고 처진 줄기 중에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자르자 처음 집에 데려올 때보다도 작아지고 말았다. 불필요하고 무거운 줄기가 사라지고, 다시 건강한 새싹이 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화분을 위로했다.
그리고 화분 각자마다 좋아하는 자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꽃을 올리지 못하게 된 제라늄은 좀 더 따뜻하면서도 해가 더 많이 드는 자리로, 반그늘을 좋아하는 스파티필름은 좀 더 거실 안쪽 통로로, 햇살과 환기가 필요해 보이는 바질은 안방 베란다에 붙여 새 성장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나와 다른 개체들인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나자 내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말과 글로 그것을 정리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여서 나와 닮은 것들을 돌보는 일이 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와 건강한 잎, 줄기만 남기고 모든 것이 사라진 내 식물들은 이제부터 다시 생장을 시작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불필요한 것들이 없어지기 전에는 새로 시작할 수 없다. 사람도 식물과 같이, 마음의 불필요한 걱정과 부정적인 부분들을 덜어내지 못하면 가볍게 새로 시작할 수 없는 것 같다. 원래 있던 것보다 작아지고, 겉보기에는 다시 어린 식물로 돌아간 것 같아 보일지라도 식물은 건강한 잎을 피우는 법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다시 건강한 줄기를 낼 화분을 바라보며, 내 마음에도 건강한 줄기가 나기를 소망했다. 마음에서도 손대면 떨어지는 부정적인 생각과 나를 다치게 만든 말들이 내 건강한 생각과 마음을 가리지 못하도록, 가지치기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12월,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마음의 노란 잎들을 잘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