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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Sep 03. 2021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첫 임신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 기록을 남기게 된 이유와 이 글에 생기게 될 특징들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인생의 불가역적인 전환점을 맞으면서 내게 찾아왔던 감정이나 생각, 교과서와는 달랐던 나의 경험이 그저 흘러가는 것보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일이 지나간 후의 내게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이 기록을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감정으로 가득 찬 사랑과 감동의 태교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결혼 후에 '임신이라는 일을 경험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임신 후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방향의 글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했고 지금도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산부인과에 대한 지식수준은 교과서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조언이나 과학적 정보를 자세하기 주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조금 엄마로서 매정해 보일까 봐 하는 이야기지만, 글을 읽을 줄 알게 된 후의 나의 아기를 위한 기록은 어여쁜 초음파 사진과 함께 아주 개인적인 기록으로 따로 남기고 있다.


2021, 봄을 맞이했던 나는 사실 약간 초조했다. 결혼한   3년이 되는 즈음의 시기였고, 나는 수많은 이직과 진로의 소용돌이를 거쳐 어느 정도  적성과 성격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같다고 생각하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일이 편해지거나 쉬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과 분리된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던  같다. 나와 남편은 결혼 초부터 '빨리 아기를 가져야겠다' 목표는 없었다. 우리는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을  후에 함께 가족으로 살면서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대화를 여러  해왔다. 그래서 주변의 걱정 섞인 기다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나는 남편과 우리가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가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요하고 철학적이며, 삶의 방향성을 논하는 대화를 주로 우리는 집이 아닌 공간에서 하곤 했다. 나는 너무 일상적인 공간보다는, 어디론가 이동하는  안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같은 곳을 향해 가면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웠다. 2020년부터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곳에 가거나 신나는 일을 하러 놀러 간다기보다는 그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히려 정적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주제를 조용하고 침착하게 다룰  있었던  같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나 내가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의 주된 주제는 '우리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을 때의 나는, 결혼 후 1년 정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엄마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워킹맘들과 친해지고, 엄마로서의 고민에 대해 들을 때마다 나는 점점 '나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도 워킹맘이었는데, 심지어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6살 차이가 나는 나와 내 동생을 키우면서 단 한 번의 육아휴직조차 없이 우리 남매를 키워냈다. 나와 동생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는 내 영아시절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엄마가 내 동생을 어떤 인내와 사랑으로 키웠는지를 기억했다. 엄마가 왜 그토록 오랜 직장생활에도 승진하지 못했는지, 남들보다 궂은일을 많이 하면서도 직장에서 엄마보다 어린 상사의 눈치를 봐야만 했었는지,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진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퇴를 해야만 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200km는 족히 넘게 떨어진 다른 도시에 있었으며, 아빠는 언제나 새벽 6시에 출근길에 나서서 밤 10시나 11시가 넘어야만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2021년에도 워킹맘으로 살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성과와 아이와의 시간 중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남편은 기뻐하며 자기가 일 대신 육아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남편과 나의 연봉을 비교해봤을 때 앞으로의 삶을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나였다. 인생이 돈이 다는 아닐지라도, 여러 가지 문제에서 선택지를 늘릴 수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나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겐 그런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아주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다. 나는 나의 엄마처럼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다리며,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소 성격이 급한 편이었고, 일을 할 때도 남들보다 빠르게 많은 일을 해내는 스스로를 좋아했으며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예측 불가한 영역이 많았고, 계획할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일 것임을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일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는 주제에 대한 남편과의 대화 이후에, 나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나의 엄마가 되었고, 어떻게 나보다 훨씬 힘든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를 키워냈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엄마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그걸 생각하고 하면 못해.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라며 웃었다. 지금도 엄마는 어려운 문제에 쉽게 답하는 편인데, 대체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받아들이고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는 형태의 답을 하곤 한다. 매번 비슷한 대답을 들으면서도 고민이 생기면 엄마에게 전화를 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런 답을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수많은 대화와 고민을 하고서도 엄마의 그 한마디에 용기가 생긴 것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 말에 용기가 조금 생겼다. 엄마 말처럼, 모든 변수와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일어날 일을 막아줄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일과 생활의 균형에서 힘들어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워킹맘 선배들이 내게 다른 용기를 주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런저런 상황을 모두 회사에 양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 선배들도 직장에서의 자기 몫을 확실히 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성격 유전론을 믿는 나에게, 남편의 말도 엄마가 되어보겠다는 나의 용기에 한몫을 했다. "어머님이 좋은 엄마인데, 그런 엄마의 딸이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엄마의 뛰어난 운동신경이나 매력적인 쌍꺼풀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좋은 엄마의 내재적 성향만은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렇게 겨우 '우리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다른 주제로 남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우울증에 걸린 성인들이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데 왜 이런 잔인한 세상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글을 쓰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아이를 가지기 전에 '왜 우리는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가'에 대해 한 번쯤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져야만 인간의 발달과업을 완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니까, 아기는 예쁘니까, 나의 노후를 책임질 인간을 위해서라는 그런 이유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아이가 부모의 욕심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고, 나도 자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만약에, 내 아이가 태어나 '이렇게 힘든 세상에 왜 나를 낳았느냐'라고 했을 때 대답할 말이 있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것이 내 아이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나는 내 아이에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새 가족을 맞을 준비를 했는지 시간을 들여 설명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도 왜 나를 낳았느냐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지만 아이를 가지려는 이유를 정리하는 나에게 공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했던 날은 동네 공원에 오밀조밀하게 핀 꽃도 보고 아름답게 내리는 노을을 함께 보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날씨가 좋은 봄날에 남편과 나는 주말이 되면 동네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아기와 강아지를 동반한 가족으로 가득 찬 우리 동네 공원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복잡했던 마음에 무거운 부분은 가라앉고, 가볍고 행복한 부분이 떠올라 우리는 밀크셰이크를 나눠먹으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말 산책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분하고 행복에 찬 나는 왜 우리가 그동안 태어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물론 사는 게 힘들고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모습들이 많지만 나는 행복한 순간이 세상의 더러움을 느끼는 순간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건 마치 우리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명대사인 '나쁜 놈은 백중에 하나라서 쭉정이지만 착한 놈은 끝없이 백업이 된다'에서 느꼈던 공감과도 같은 부분이었는데, 세상에 나쁜 놈들과 끔찍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보통의 착한 사람과 충분히 누릴 만한 아름다운 부분이 더 많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내가 태어나서 겪은 행복을 알려주고 싶고, 충분히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알려주기 위해서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한참 생각을 정리하는 나를 기다리던 남편은 조용하게 동의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원래 말이 적은 편이지만, 침묵과 침착한 동의에서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차분하게 엄마가 되면 달라질 내 세상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최고의 엄마가 되리란 확신이나 별도의 준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면 알려줄 내가 세상에서 살면서 겪은 행복에 대해 말해줄 준비가 되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드디어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일단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기까지 2년 반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점이 묘미라고 하지만, 내가 30대가 되어서야 이런 고민을 통해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쨌든, 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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