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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Sep 23. 2021

임신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첫 임신 이야기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했었고, 생각보다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알고 있었던 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은 다음엔 ‘그래도 나는 금방 임신이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계획대로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고, 생각과 계획대로 임신이 진행되지 않자 조바심이 났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처음 아기를 가지기로 마음먹고 3개월, 6개월이 흐를 때까지는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몇 년씩이나 자연임신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난임센터의 도움을 받는 임신을 너무 많이 본 것이 불안의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를 여러 번 구매하고, 절대로 뜨지 않는 두 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는데, 한 달 동안 아예 생리를 건너뛰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새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시점이었다. 나의 고질병이었던 위경련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위경련이 잠잠해지자 생리 주기가 점점 늘어나더니 한 달을 아예 건너뛰었다. 물론 임신테스트기는 선명한 한 줄이었지만, 가끔 임신 극초기에는 임신테스트기에 나타나지 않고 혈액검사에서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을 생각할 정도로 나는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봤는데, 임신은 커녕 자궁선근증과 근종 진단을 받고 생리 주기를 맞추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생각보다 현대의 직장인 여성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이고, 근종의 위치가 자연임신을 방해할 만큼은 아니라고 했지만 자궁선근증은 보통보다 자궁의 크기가 크며 심한 생리통을 유발하는 질환으로 임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내게 처음 자궁선근증을 진단해준 의사 선생님은 진지한 얼굴로 임신을 생각한다면 내 나이와 자궁 상태를 고려했을 때 빨리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매달 배란과 생리 주기가 다가올 때마다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호르몬 주사는 오래도록 아프고 몸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떨어뜨렸으며, 그럼에도 배란주기가 내가 생각했던 시점과 잘 맞지 않고 불규칙해졌다. 그럼에도 매달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커서 임신테스트기를 볼 때마다 실망했고,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커지고 말았다.


난임 부부들을 가까이 봐온 직업을 가졌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난임센터에 가서 검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혼 직후 기본적인 건강검진에서 나와 남편 모두 별 문제가 없었고, 자세한 호르몬 검사 등은 받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모두 자세하게 남편과 터놓고 하지도 못하고, 나는 혼자서 끙끙 앓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기저질환 때문일까,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 것일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등 원인을 나에게서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쯤 나는 목디스크 진단까지 받게 되었고, 결국 일에 지친 내 몸이 문제라고 판단한 나는 재활치료를 하면서 임신 준비를 위한 한약을 지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때는 임신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서적 문제가 약해진 몸,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고 몰아치는 업무에 지쳐버린 마음에 더해서 나를 좀먹기 시작한 때였다. 남편은 뭐든지 나처럼 문제를 오래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는 문제는 곧 해결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내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했으면 했다. 하지만 내 목디스크가 점점 나아지고 보약을 먹으며 살이 붙는데도, 생각처럼 아이는 빨리 찾아와 주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내가 난임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목디스크를 치료하며 한약을 먹고 다시 아이를 기다리면서 임신을 마음먹은 지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내가 한약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그만 고민하고 빨리 난임센터를 찾아가라고 조언하던 동료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산부인과 간호사 경력이 있는 분이었고, 혹여나 난임이더라도 나이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가야 성공률이 높다며 계속 난임센터를 권유하셨다. 솔직히 말하면 그분 말씀이 맞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 결과와 효과를 매번 체감하는 곳에서 일했음에도 이상하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곳에 처음 예약을 잡는 순간부터 왠지 내가 난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나지만, 혹시나 내가 아니라 남편의 문제라면 해결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무 많은 희귀 케이스를 아는 것이 내게는 너무 많은 걱정의 먹이가 되었다. 사실 거부감은 나보다 남편에게 좀 더 심한 편이었다. 한약을 먹고도 몇 개월 째 아기가 생기지 않자,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남편에게 처음으로 난임센터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 긴 고민을 다 눈치채지 못했던 남편의 반응은 우리가 아직 젊고 건강한데, 꼭 가야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도 남편의 마음에는 공감했지만, 쓸데없이 버려진 임신테스트기와 배란테스트기를 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설명하며 확인의 차원에서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최근의 의료 트렌드에 따르면 1년 이상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 난임을 진단받으며, 우리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편은 느긋한 성격이라서, 우리가 피임을 하지 않은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간호사와 같이 내 배란 주기와 시도 횟수, 버려진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에 대해 기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난임센터에 가볼 만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처음 남편과 난임센터를 예약했을 때, 생각보다 난임센터 예약이 치열하고 특히 일하는 부부가 함께 가기 쉬운 토요일 오전에는 아주 이른 시간에 가야만 초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임신을 하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난임센터를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간 곳은 '난임센터'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 대신 '아이희망센터'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었는데, 기악곡으로 편곡된 찬송가가 은은하게 흐르며 친절하고 차분한 간호사 선생님들의 초진 상담 덕분에 긴장한 마음을 조금 다스린 채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초진 상담으로는 우리의 기본적인 건강문제와 가족력에 대한 사항, 임신 시에 확보해야 할 항체(일명 MMR: 풍진, 수두, B형 간염 등)에 대한 예방접종을 하거나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설문을 작성했다. 우린 이른 아침 7시에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그 시간에도 우리처럼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부부가 몇 쌍 있었다. 진료실 앞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리는데, 익숙한 듯 조금 여유로운 모습의 부부도 있었고 임신에 성공하고 초기 임신의 정기검진을 다니는 분인지 임산부 배지를 가진 분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부러운 눈으로 보게 되기도 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기본적 피검사와 항체 확보에 대한 이야기, A형 간염 예방접종에 대한 이야기, 자궁 초음파가 이어졌고 알고 있던 대로 자궁의 구조적 이상이 특별히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료실을 나선 후에는 나와 남편의 피검사, A형 간염 1차 예방접종, 남편의 정액 검사가 이어졌다. 남편과 나의 가장 어색하고 어려운 검사가 약 한 시간 만에 정신없이 흘러갔다.


여러 가지 검사에 대한 결과는 다음 진료 때 들을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에게는 구조적 문제나 화학적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처음 진단받았던 나의 자궁선근증도 자연임신에 무리가 될 정도가 아니었고, 피검사 결과도 임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우리 부부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지나친 실내 생활로 뱀파이어마냥 비타민 D가 모자랐는데, 직접적 요인은 아니지만 임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으니 별도 섭취를 권유받았다. 그동안 임신이 되지 않은 이유로는 나의 불규칙해진 배란 일정이 가장 유력하게 떠올랐는데, 우선 그날 자궁 초음파를 다시 보고 배란시기를 추정하여 자연 임신을 한 사이클 더 도전해보기로 했다. 초음파로는 난포가 곧 터질 것처럼 보여도, 나처럼 컨디션에 따라 배란 시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사실 검사 결과를 들으며 남편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고 했지만, 나는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우리처럼 그런 문제가 없음에도 자연임신이 쉽게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는데, 우선 두 번째 진료에서는 가능성이 높은 배란기를 받아서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음파로 나도 보일 만큼 성숙한 난포가 난소 바깥쪽에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나는 꽤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임신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세 번째 진료 날짜를 잡게 되었는데, 센터에 따라 초진 때부터 생리 첫날이나 이틀째에 맞춰서 오라고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나는 세 번째 진료에서 생리 날짜를 맞추어 초음파를 보기로 했다. 난포 성숙에 따른 배란기를 보고 자연임신을 시도했는데도 되지 않을 경우, 과배란 유도제를 먹고 임신 확률을 높이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주치의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험관 아기나 다른 방식의 여러 인공수정 방법보다는 몸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적고, 신경 써야 하는 생활습관이나 부작용 등이 미미한 방식이라 나는 과배란 유도제를 먹고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를 맞는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호르몬에 예민한 몸이었던 나는 과배란 유도제를 먹는 내내 부작용이 생길만한 모든 음식(밀가루, 튀김 등 행복을 주는 류의 음식)을 피하고도 메스꺼움에 시달려야 했다. 보다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생리 전 증후군(PMS)이 한 달 정도 지속되는 느낌이었는데,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피곤하며 우울함이 지속되었다. 다행히 초음파로 본 난포들이 잘 자라주어서 배란 유도 주사까지 무사히 맞고 이번에는 좀 더 정교한 배란시기를 받을 수 있었다. 배란 유도 주사를 맞으면 36시간에서 48시간 안에 난포가 터지면서 배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임신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정과 착상이 된 후 hcg 호르몬 분비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배란기가 끝나고 2주에서 3주가 지나야 했다.


결과가 얼마나 궁금했는지,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hcg 호르몬 농도가 아주 적어도 검출되는 것부터 확실하게 높아야 검출되는 것까지 최소 3종 이상을 여러 개 구입했다. 테스트기가 불량일 수도 있고, 혹여나 쌍둥이일 경우엔 수정 직후부터 hcg 농도가 높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쓸데없이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지출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간절히 아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반영된 소비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표출되었는데, 배란기가 지나고 2주가 되기 3일 전쯤 꾼 이상한 꿈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자주 꿈을 꾸는 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의미가 없거나 자기 전에 읽던 책 내용들이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은 아주 고요하고 잠잠하게 내 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뱃속에 하얗게 빛나는 구슬 두 개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봤다. 보통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꿈을 꾸는 나는 깨고 나서도 이게 꿈이었나, 꿈이라면 설마 이게 태몽인 걸까 싶어 정신을 차리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직 hcg가 소량도 검출되기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꿈의 의미가 태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성적인 판단을 이긴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5분이 흐르고, 임신테스트기에 아주아주 희미하지만 시약선에 반응이 나타났다. 사실 그때 보인 선은 나중에 확실히 두 줄을 보고 나니 거의 매직아이를 해야만 볼 수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게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주말 늦잠을 자던 남편을 자랑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그 후로 매일 아침마다 테스트기를 했고, 매일 조금씩 진해지는 두 줄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다니던 병원에 전화해서 진료 예약을 잡았다.


물론 임신테스트기에서 여러 번 두 줄을 보았다고 해서 임신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던 두 줄을 보고 나자 임신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고사 난자이거나 착상 위치가 좋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도 있었다. 제일 궁금했던 건 사실, 태몽에서 분명 구슬이 두 개였는데 진짜 쌍둥이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임신 주수를 계산하는 것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착상 후 주수와는 차이가 있어서 임신을 확인하러 간 날은 임신 5주 차였지만 아기의 모양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말 초음파에 하얗고 동그랗고 빛나는 구슬이 잘 자리 잡은 것을 보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많이 보고 무감하게 지나쳤던 장면인데도, 저렇게 작은 아이가 내 몸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꿈과는 다르게 둘이 아니라 하나였지만, 그렇게 우리는 유도제 한 방에 임신에 성공한 것을 주치의 선생님과 병원에 계신 여러 간호사 선생님들께 축하받으며 산모수첩, 임신확인서를 들고 병원을 나왔다. 왠지 쌍둥이 같은 꿈을 꿨던 것이 태몽이 아닌 건가 싶어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첫째인 내 태몽을 꾸었을 때 둘째인 내 동생 얼굴까지 한 번에 보았다며, 둘째 태몽까지 함께 꾼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태몽이나 이전의 기대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남편은 초음파를 함께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진료를 다 보고 나와서 둘만 있게 되자 자기도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열심히 참았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처음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얼떨떨하고, 너무 기쁘지만 아직 가장 위험한 임신 초기라 맘껏 기뻐하지도 못했다. 사실 나도 배란유도제 한 사이클 만에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어서 더욱 놀랐다.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 기다려왔던 아기는,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 부부에게 선물처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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