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같이 근무했었습니다.”

공공건축 오작동 기록집 04

by 경계에서

다른 부서와 협의를 하러 간 자리였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의례적인 명함을 주고받는 짧은 정적 속에서 상대방 담당자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아, ○○○ 과장님이랑 같이 근무했었습니다.”


회의 안건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속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 이후 공기의 농도가 달라졌다. 날 선 말투는 금세 유연해졌고, 팽팽했던 협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완전히 남은 아니라는 기묘한 신호. 이후로도 비슷한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데면데면하게 서류만 보던 담당자가 “○○○ 팀장님 아시죠?”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경직됐던 표정이 무장해제 되듯 풀리는 찰나들. 그때 깨달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이력 보고가 아니라, 거대한 관료 조직의 성벽을 넘기 위한 '비공식 통행증'이라는 것을.


공무원 조직에서 협의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 협의를 요청해 올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뜨는 질문은 단 하나다.


‘이게 내 일인가?’


업무의 경계와 권한이 칼날처럼 나뉘어 있는 곳에서, 내 일이 아닌 것에 굳이 손을 댈 이유는 없다. 자칫 관여했다가 책임의 무게만 늘어날 뿐이니까. 그래서 협의 테이블의 기본값은 대개 '경계'다. 딱딱한 말투와 의구심 섞인 눈빛 너머에는 이런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 ‘당신은 누구이며, 내가 당신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그 압박을 체감하는 순간, 나 역시 똑같은 갈증을 느낀다. ‘아, 이 사람이 어디서 근무했고 누구랑 친한지 미리 알아보고 올걸.’ 그러다 어느 순간, 나 또한 그 마법의 주문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국장님 아시죠? 제가 대학 후배인데, 자주 뵙습니다.”


이 말이 꼬인 행정 절차를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의 빗장은 풀 수 있다. 협의라는 견고한 문 앞에 걸린 작은 자물쇠가 잠시 딸깍하고 열리는 것처럼. 행정에서 관계는 분명 유용한 윤활유다. 낯선 이와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된 대화가 훨씬 부드러운 법이니까.


문제는 관계가 일을 돕는 수준을 넘어, 일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때다.


내가 이 지점을 기이하다고 느낀 건 어느 팀장님과 함께 근무할 때였다. 그분은 업무의 본질보다 '관계의 망'을 넓히는 데 유난히 열심인 분이었다. 각종 사내 동아리는 물론이고, 한 번 다녀온 워크숍이나 여행 인연까지 끝까지 붙들어 사적 모임으로 치환해 냈다.


그 열정의 결과는 점심시간마다 여실히 드러났다. 청사 마당을 가로지르거나 식후 가벼운 산책을 나갈 때면, 채 열 걸음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 나타났다. 인사가 인사를 낳고, 안부가 안부를 물고 늘어졌다. 한 번의 산책 동안 기본적으로 다섯 번 이상 발걸음이 멈췄고, 평온해야 할 산책길은 어느새 인맥을 확인하는 작은 행사처럼 변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인사의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무언가 앞뒤가 한참 잘못되었다.’


조직의 효율을 위해 존재해야 할 관계가 도리어 업무의 리듬을 흔들고 있었다. 관계가 목적이 되고 업무가 수단이 되는 순간, 공공의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인맥의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설계도상의 수치보다 '누가 누구와 형님 동생 하는지'가 의사결정의 무게를 바꾸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협의가 아니라 '거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협의를 하러 갈 때 가끔 상상한다. 이 사람은 누구와 같이 근무했을까. 그리고 그 인연의 무게가 오늘 우리가 논의할 공공의 가치보다 무겁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근무했었습니다"는 그 짧은 고리에 서로를 엮어 둔 채 이 거대한 시스템을 간신히 굴려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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