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오작동 기록집 03
"이거, 진짜 지어집니까."
반쯤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일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공공건축의 궤적 위에서 이 질문은 이정표처럼 반복된다. 때로는 타인의 입을 빌려 때로는 내 안의 가장 깊은 의심으로부터.
공공건축의 세계에서 한쪽을 선명하게 붙들수록 반대편은 필연적으로 흐릿해진다. 기획의 가속도를 높이면 운영의 현실감은 멀어지고, 운영의 디테일을 파고들면 기획의 야심은 위축된다. 나는 늘 그 사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하는 경계인이었다.
기획의 시선은 '가능성'의 지평을 본다. 이 건물이 도시의 풍경을 어떻게 전복할지, 공공의 의지가 어떤 장면으로 각인될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단계에서 도면은 무결하다. 현실의 마찰도, 예산의 압박도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다.
반대로 운영의 시선은 차갑고 무겁다. 이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누가 이 거대한 덩어리의 책임을 짊어질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건물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기대를 걷어낸 자리엔 '지속성'이 남고, 상징을 걷어낸 자리엔 '책임'이 남는다. 그 질문의 무게는 늘 기획의 화려함을 짓누른다.
설계공모는 바로 그 두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운영의 밑그림이 채 그려지기도 전에 등장하는 완성된 조감도들. 나는 설계공모를 주관하는 부서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늘 그 압도적인 이미지들 앞에서 갈등해야 했다. 가장 불확실한 순간에 등장한 가장 확정적인 모습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그 '그림'의 힘을 조금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눈을 현혹하는 형태보다, 설계자가 이 지독한 불확실성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지에 주목했다. 완성도라는 결괏값 대신 방향성이라는 본질을 보려 했다. 심사의 방식을 조금만 비틀면, 기획과 운영 사이의 그 정직하지 못한 간극을 조금이라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보고 있던 층위가 생각보다 훨씬 얕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공모는 매끄럽게 끝났다. 당선작이 발표되던 날, 심사장에 감돌던 그 안도감은 지금도 피부에 생생하다. 이제 건축은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몇 달 뒤, 사업은 멈췄다. 설계의 결함도, 예산의 부족도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가?"
합의가 끝난 줄 알았던 근원적인 질문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행정의 리더십이 교체된 직후였다. 그제야 보였다. 기획과 운영이라는 긴장감 위를 덮고 있는 거대하고 불투명한 층, 바로 '행정의 시간'이었다. 설계는 한 장 한 장 구체적인 물리력을 얻어가는데, 그 설계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합의는 사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확정 상태로 남는다.
“이거, 진짜 지어집니까.”
다시 돌아온 그 질문은 도면을 향한 의구심이 아니었다. 예산의 숫자를 묻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업의 존재 근거가 지금도 유효한 지를 묻는, 지극히 행정적인 생존 확인이었다.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공공의 현장에서 이런 '오작동'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켠이 조용히 꺼지는 느낌은 남았다. 당선안이 사라진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그 사업을 위해 오랜 시간 설득하고 조율하고 회의하고 검토하던 나의 시간이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한 채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절차의 구조를 짜는 역할이다. 공법을 검토하고, 예산을 맞추고, 운영 계획을 유도한다. 그러나 정작 이 사업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합의의 수명'은 내가 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짜고 있었던 걸까. 아무것도 시작되지 못한 빈 부지 위로, 주인을 잃은 질문들만 공허하게 되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