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은 언제부터 간섭이 되는가

공공건축 오작동 기록집 02

by 경계에서

공공건축은 분업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기획을 맡고, 누군가는 설계를 하고, 누군가는 예산과 운영을 책임진다. 역할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 서면 그 선은 쉽게 흐려진다.


설계 회의 테이블 위로 날 선 말들이 오간다. “예산이 빠듯하니 중정(中庭)은 빼는 게 어떨까요.”, “로비의 전시공간은 관리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냥 민원인 대기실 정도로 정리하시죠.” 이런 판단들이 틀렸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예산은 늘 모자라고, 보안과 운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는 서늘한 불편함이 고인다. 그 제안이 타당한가를 따지기 전에, '그 판단을 누가 내려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공공건축의 오작동은 대개 의도가 나빠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해보자'는 의욕이 상대의 영역을 침범할 때, 즉 역할의 경계가 흐려질 때 조용히 시작된다.




몇 해 전, 나는 건축 설계공모 절차를 매뉴얼로 정리한 적이 있다. 사업부서, 관련부서, 전문가의 역할을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를 선 하나하나로 그려냈다. 대단한 권한을 부여하거나 새로운 규정을 만든 게 아니었다. 그저 권한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적어두었을 뿐이다.


책이 배포되자 현장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비로소 정리가 된다”는 공무원과 건축가들의 반응이었다. 안개가 걷히듯 혼란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절차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의 경계를 그어주는 최소한의 안전선이라는 것을. 물론 절차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형식적 검증만 늘어난다면 일은 느려지고, 판단은 흐릿해진다. 중요한 것은 절차의 양이 아니라, 권한의 명확성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 선이 자주 흔들린다. 공모 심사에서 높이 평가받았던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실제 건물을 짓는 설계단계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곤 한다. 지침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예산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그 판단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 판단이 설계자의 권한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발생한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전문가로서 설계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긍지가 함께 증발한다.


반대로, 설계자가 자신의 고집을 '시민'의 이름으로 포장해 밀어붙일 때도 있다. “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발주처가 건축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설득이 아니라 고집이 되는 순간, 그 또한 협업을 망치는 또 다른 형태의 간섭이 된다.




협업과 간섭을 가르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의 권한을 인정하는 '태도'다. 협업은 조언하는 일이고, 간섭은 대신 결정하는 일이다. 이 한 끗 차이가 결과물의 질을 완전히 바꾼다. 기획하는 사람, 실행하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 각자의 자리는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하지만 그 목표로 가는 길에서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는 순간, 협업은 간섭이라는 족쇄가 된다.


경계는 서로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온전히 지켜주는 선이다. 나는 오늘도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않으려고, 내 자리 또한 쉽게 내주지 않으려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귀하게 여기는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나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경계를 지키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