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설명했는데, 왜 다시 설명해야 하는가

공공건축 오작동 기록집 01

by 경계에서

전화는 짧았지만, 그날의 잔상은 길게 남았다. 내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의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매년 증액되는 용역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사업 범위의 변화, 치솟는 노임 단가, 과업의 질적 확대. 논리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내 설명은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보내드린 표에 맞춰서 수치만 정리해 주세요."

"양식은 절대 변경하지 마시고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준비했던 서사들—A사업의 신규 과업, B사업의 대상지 확대, C사업의 단가 조정—은 '전년 대비 증감액'이라는 견고한 칸 속으로 강제로 구겨 넣어져야 했다. 맥락은 증발하고, 숫자만 남았다. 설명은 비고란에 한 줄로 압축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쪽 세계(공공)에서 설명은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라는 것을.




나는 건축을 전공했다. 이 쪽 세계(건축)에서 설명은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좋은 설명이란 공간의 개념을 가장 정교하게 시각화하는 일이었다. 선의 두께, 색의 농도, 다이어그램의 배치, 심지어 출력할 종이의 두께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표현의 깊이가 곧 사유의 깊이라고 믿었기에, 도면은 설계자의 사유를 무한히 확장시키는 도구였다.


어쩌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처음 마주한 세계는 '한글 보고서'였다. A4 용지 위, 정해진 서식 안에 현황과 문제점, 대안을 채워 넣었다. 좋은 보고서의 기준은 단호했다. 폰트는 단정해야 하고, 줄간격은 일정해야 하며, 결론은 한눈에 들어와야 한다. 읽는 이의 직급이 높을수록 문장은 더욱 단순하고 무자비해졌다.


보고서는 사유를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을 고정한다. 도면 위에서는 미학 뒤로 슬쩍 숨길 수 있었던 '예산과 시간'이, 여기서는 주인공이 되어 전면에 등장한다. 대신 공간에 대한 철학과 고민은 설명되지 못한 채 무대 뒤로 퇴장한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인데, 무한했던 사유의 풍요는 보고서라는 격자 속에 갇혀 길들여졌다.




그날 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예산이 많다"가 아니었다. "양식을 바꾸지 말라"였다. 형식은 정보를 정리하는 장치인 동시에 상대방의 판단을 통제하는 장치다.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설명은 낯설어지고, 판단은 지연되며, 책임의 소재는 모호해진다. 공공은 '이해 가능한 언어'보다 '판단이 가능한 형식'을 훨씬 더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래서 공공은 이런 마법 같은 말들을 발명했다.

"적정하게 추진."

"합리적으로 검토."

"신속히 조치."


이 문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가장 안전하다. 더 이상 질문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말은 구체적인 책임을 낳는다. "부적정하다"라고 쓰는 순간 누군가는 그 판단의 근거를 묻는다. "위험하다"라고 쓰는 순간 책임의 화살이 날아온다. 그래서 문장은 둥글어지고, 표현은 안전해진다. 이제 나에게 설명은 '설득'이 아니라 '질문을 종결시키는 기술'이 되었다. 더 이상 묻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좋은 보고서의 서글픈 조건이 된다.




설계에서 좋은 설명은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었으나, 공공에서의 좋은 설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설계는 질문을 늘리고, 공공은 질문을 줄인다. 나는 지금 그 어긋난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날 나는 결국 숫자를 정리해 보냈고, 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설명을 하고 있다. 다만 이제 나의 설명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의 위치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누구도 더 이상 묻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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