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벽돌을 굽는 자들의 바벨

by 경계에서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 창세기 11:3


창세기 속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의 재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대신해 뜨겁게 구워낸 ‘벽돌’을 만들었고, 진흙 대신 ‘역청’을 가져왔습니다. 자연이 내어준 돌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만들어낸 벽돌, 흙이 아니라 역청으로 이어 붙인 탑. 규격화된 재료와 이를 잇는 기술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약속이자, 가장 치밀한 협력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이미 인간의 목적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이름을 내고 하늘에 닿으려 했던 그 오만한 열망은 어떠한 틈도 허용하지 않는 체계를 요구했습니다. 벽돌은 자연의 돌처럼 서로 어긋나지 않았고, 역청은 구조를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프로토콜이 정교해질수록 탑은 더 높이 올라갔지만, 정작 그 탑이 향해야 할 '하늘'은 인간이 만든 벽돌 벽 뒤로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문법이 본질을 소외시키고 창조주의 자리를 대신하려 할 때, 기록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탑 쌓기를 멈춰 세우셨다고 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본질을 망각하는 도구가 되었을 때, 그 체계를 무너뜨린 '언어의 불통'은 어쩌면 우리가 멈춰 서서 진짜 하늘을 바라보게 하려는 개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공건축의 현장은 이 ‘벽돌을 굽는 자들’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행정의 언어는 벽돌처럼 매끄럽고 견고합니다. 우리는 보고서라는 격자 속에 사유를 구겨 넣으며 서로의 프로토콜을 맞추기 위해 분투합니다. 그러나 이 정교한 시스템이 오히려 우리가 처음 지키려 했던 '공공의 가치'를 소외시킬 때, 현장 곳곳에서는 알 수 없는 불통과 오작동이 일어납니다.


기획자와 행정가, 설계자와 운영자는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날 선 전선(戰線)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벽돌을 잘못 쌓았는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 벽돌을 굽기 시작했는가’


시스템의 안녕을 위해 본질을 깎아내고, 질문을 막기 위해 문장을 둥글게 다듬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진짜 적은 맞은편의 동료가 아닙니다. 본질을 망각하게 만드는 구조 그 자체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전문가라 부르며 이 거친 세상 속에서 싸워나가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싸움은 결코 나와 함께 탑을 쌓는 이들을 향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뜨거운 전선에서 한 발 물러나, 본질과 현상 사이의 좁은 경계선에 서기로 했습니다. 동료를 향한 총구를 거두고, 우리가 잊어버린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는 일.


나는 여전히 도면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보고서를 써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어느 한쪽의 변명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머뭇거렸던 시간들에 대한 고백입니다. 다시, 본질을 향한 설명을 배우기 위한 작은 연습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기록을 통해 그 경계의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지키는 경계 위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를 침범하는 전선 위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진짜 싸움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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