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휴가의 의미 2

엄마와의 시간

by 행파 마르죠

휴가 때마다 나는 고향에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고향 제주도에 갔다.


부모님이 아프신데, 다른 휴양지에 놀러 가도 맘 편히 놀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다.


육지(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를 제외한 지역을 육지라 부른다.)와는 달리 제주도는 찜통이다. 거대한 제주섬이 강렬한 태양 아래 통째로 익어가고 있었다.


제주의 내 일상은 밥 짓는 것에서 밥 짓는 것으로 끝난다. 아침, 점심, 저녁을 새 밥과 새 반찬으로 차린다.


엄마가 몸이 아프기 전, 불과 5년 전만 해도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새 밥과 새 국과 새 반찬을 올만에 내려온 딸에게 대접했다. 아침이 거의 다 될 때쯤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그 대접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았다. 엄마표 김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미리 김치를 담그시고 제주고등어 좋아하시는 걸 알고 아버지가 새벽같이 부두에 가서 그 날 갓 잡은 싱싱한 고등어를 사다가 배를 가르고 소금을 쳐서 빨랫줄에 널어두셨던 것도 당연히 받아들였다. 여름이면 동문시장에서 자리돔을 사다가 오이, 깻잎 송송 썰어 된장과 갖은양념을 무쳐 자리 냉국을 해 주셨다.


이런 호사를 마다하고 저녁이면 친구들 만나서 놀러 다니고 음주가무를 즐겼다.


이런 나에게 한 마디 잔소리도 안 하시고 다음 날이면 또 어김없이 새 밥과 새 국과 새 반찬을 해 놓고 늦게 일어난 딸을 먹이셨다.


난 부모님께 어른 아기새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부모님 표 집밥을 이제는 먹을 수가 없다.


부모님이 해 주셨던 정성에 비하면 내가 하는 건 새발의 피, 우주 속 먼지 한 점에 불과하다.


이젠 부모님이 어른 아기새가 되셨다. 목욕시켜 드리고 협착증으로 온몸이 전기 통하는 것처럼 아프신 엄마의 인간 마사지기가 된다. 힘없이 늘어진 엄마가 한 번이라도 웃게 만들려고 재롱을 떤다.


" 엄마, 나 근육 있어. 보여 줄까?"

팔뚝에 힘주고 살짝 나온 근육을 보여줬더니 하하 웃으신다. 엄마의 웃음코드를 알아가는 것도 좋다.


외출하시는 것도 여의치 않아 머리카락 커트해 드렸다. 커트 기술은 없지만 머리카락을 윗부분부터 손가락 사이로 한 움큼 가지런히 잡고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을 잘라 준다. 울 학원 앞 미용실에 가끔 놀러 가서 커트하는 모습을 유심히 봐 두었다.

내가 마치 미용사인 양 내게 머리를 맡기시는 엄마께 농담을 해 본다.


"손님 마르죠 미용실실에 온 걸 환영합니다.

길이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알아서 짧게 해 주세요."

인생의 길이만큼 온통 하얀 머리칼, 주름지고 늘어진 목, 검은 반점들을 보니 엄니가 측은하고 가엾다.

"손님, 거울 보시고 이 정도면 될까요?"

"어 됐네."

"미용비는 100만 원입니다. 근데, 이제까지 공짜로 키워 주셨으니 거기서 차감하겠습니다."


휠체어 태우고 동네 산책을 했다. 제주시에서 약간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서 제주의 돌담과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제각각의 돌들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멍하니 있는 엄니한테 재잘재잘 말을 건다.

"어머니, 이건 무슨 나무야?"

"동백낭 (동백나무)"

"그럼 동백기름 나오는 나무네. 동백기름은 꽃으로 만들어?"

"열매로 만들지."

"오, 그래? 꽃은 언제 피는데?"

"겨울에 피지."


가다 보니 콩밭이 보인다.

앞쪽에 있는 콩이랑 뒤쪽에 있는 콩줄기 모양새가 다르다.

"엄니, 이건 무슨 콩이야?"

"녹두 콩이지.

나뭇잎 사이로 5센티가량 길쭉하게 나와 있는 게 우리가 나와 있는 녹두 콩 열매란다. 된장 담그는 노란 콩은 보라색 꽃이 피고 꽃이 지면 콩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엄마는 다 아신다. 얼핏 보기만 해도 척척 알아맞히시고 무심하게 내뱉으신다.



"저거 깨 맞아?"

"어 깨 맞네."

"어렸을 때 깨 줄기 털어서 깨 먹었던 거."

" 허 허 그랬지. 깨밭이 있었지."

엄마와 수다 떨면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엄마가 즐겨 보시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난 저녁 드라마를 원래 보지 않는다. 엄마는 8시 반 드라마를 보신다.~한 유산. 드라마 보는 내내 저 사람은 누구야? 저 아들은 몇째야? 저 아줌마만 왜 저렇게 못돼 처먹었대? 딸은 물어보고 엄니는 대답하느냐 바쁘다.


엄니는 폐암 수술받은 지 올해로 3년째다. 제주도 여인들의 고댄 했던 삶의 전형이셨던 어머니. 그 고단함의 증거인 냥 허리가 굽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후유증으로 힘이 없으셔서 집안일은 아예 못하신다.


언니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엄마를 돌보신다. 내가 내려오면 코빼기도 안 비춘다

가정이 있으면서 엄마 돌보는 게 힘든 일이란 걸 알기에 그러려니 한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살아계셔서 엄마와 이렇게 둘이서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고 싶다.


어머니 사랑 혀요. 우주만큼 대따 대따 사랑 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휴가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