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의 노래 성장기
넌 도대체 어디서 나온 DNA 니?
"마법의 상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이제 나의 손을 잡아 보아요. 우리의 꿈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죠~"
마법의 성 노래 가사이다.
7살짜리 꼬맹기가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완벽히 소화한다면 믿겠는가?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마이크 대고 음절, 박자 하나 안 틀리고 고음까지 생목으로 다 부른다면 인정하겠는가?
우리 큰 딸이 그랬다. 당시 회사 팀장이었던 나는 회식 자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3차는 노래방이 정해진 코스였는데, 울 큰딸
쫑이는 노래방 스타였다. 마이크 한 번 잡으면 놓을 줄을 몰랐다. 원조 가수 뺨치게 잘 불렀다. 노래방 주인이 들어와서 감탄을 하고 노래 더 부르라고 시간을 더 줄 정도였다
어릴 때 우는 소리가 그렇게 우렁차더니 이미 아기 때 득음을 했나 보다. 하루 종일 꺼이꺼이 울다 지쳐 나중엔 목이 다 쉬고 눈물의 소금기가 머리칼에 붙어서 짠 내가 날 정도였다. 매미처럼 차악 달라붙어 나와한 몸이 되어, 조금만 떨어져도 백 백 울어대고
발악을 했다. 심지어 화장실 가서 큰 볼인 작은 볼 일 볼 때도 안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엔 방과 후 활동으로 기타를 배우더니 , 띵가띵가 기타 치며 대중가요를 부르며 다녔다.
어느 날 피곤해서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서
기타를 치며 이 문세의 "옛사랑"을 불러주는 게 아닌가? 중학생이 가 부르는 리바이벌 버전 옛사랑 노래는 나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아이 몰래 감동의 눈물을 주르르 흘렸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다른 남학생 두 명을 묶어 영어
그룹과외를 했다. 엄마인 나에게서 과외받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한 두 번 빠지더니 나중엔 연락두절될 때도 있었다. 수학 학원에서도 쫑이가 결석했다고 전화가 왔다. 믿었던 큰 애에 대한 기대치가 무너졌다.
나중에 알았다. 이 얌전한 아이가 노래하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야자시간도 빼먹고 노래 부르러 다녔다는 사실을~
나한테 혼날까 봐 몰래 다녔으니
당연히 연락이 안 되었다.
첨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 화도 나고 내심 속상했다.
그러다 이 아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건이 있었다. 두 딸과 함께 올만에(어릴 때 이후로 처음) 노래방을 가서 쫑이 노래를 들었다. 어릴 때처럼 폼 잡고 일어나서 부르진
않았지만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감정몰입을 하며 열창을 하는데 엄마인 내가 반하고 말았다.
순간 마음속으로 '이 아이는 음악을 해야겠구나. 천상 노래를 위해 태어났네'
하지만 내 맘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아예 공부를 놓아버릴 것 같아서였다.
고3이 되어도 아이는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고3 다 된 시점에서 예체능 쪽으로 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의 나는 사고뭉치 막내 뒷수습하고 다니느라 심신이 다 고갈되어 큰애한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진로상담차 학교 방문했는데 아이가 진로에 대한 의욕도
없고 성적도 시원찮아 딱히 인 서울에 들어갈 대학도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민 끝에 어차피 형편없는 삼류 지방대학에 갈 바에 차라리 좋아하는 음악이나 실컷 하게 해주고 싶었다.
"너 음악학원 다닐래? 돈 걱정은 말고."
쫑이는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눈이 똥 그레지며 말을 못 했다.
노래방에서 나는 이미 확인을 했다. 쫑이가 가장 빛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순간은 바로 노래 부를 때라는 걸 말이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체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쫑이는 울음을 참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 "네가 좋아하는 걸 해. 그동안 싫은 공부 억지로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말썽쟁이 동생 때문에 신경 못 써서 미안해"
" 아니야, 엄마가 혼자 우리 키우느라 힘들잖아."
둘이는 그렇게 마주 보며 서로 더 미안하다고
하며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쫑이는 8월부터 음악학원에 등록해 보컬 연습을 했다. 남들보다 몇 년이 늦은 시간들을 보상이나 하듯이 새벽까지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하고 집에 들어와 두세 시간 잠을 자고 연습에 연습을 했다.
아기 때 이미 득음을 했으니 자기 목소리를 찾으며 다음에 가는 건 본인의 몫이라며 피 터지게 열심히 했다.
원서 넣은 두 번째 대학까지 떨어지고 나니 조바심이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세 번째 넣은 ~대학은 그다지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쫑이가 붙았다고 울먹이며 전화가 왔을 때는 너무 기뻐서 눈물만 났다.
4개월 학원 다니며 연습한 게 다인데, 음대 합격이라니 "쫑이는 대단해. 너무 대단해 장하다 장해."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대학 가서도 번외 활동을 많이 했다. 봉사 활동한답시고 길거리 공연, 유튜브 방송 활동도 하고 틈틈이 자작곡 노래도 만든다.
노래 안 시켰음 어쩔 번 했나 싶다.
어딜 가서나 이 아이는 빛이 난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인 친정 엄마 집 가서도 환한 미소와 방울 같은 목소리로 주변을 밝게 만든다. 울 식구들은 나보다 쫑이를 더 좋아한다. 쫑이는 빛과 같은 존재다.
젤 만만하고 편한 존재라 가시 박힌 말도 많이 하고 갖은 푸념을 다 늘어놓으며 못 살게 굴었다. 그런데도 늘 웃고 다닌다. 속으론 이런 엄마가 얼마나 밉고 속상했을까?
오늘도 이 기적 같은 아이를 보며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본다.
너의 DNA는 대체 어디서 온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