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같이 키워요
육아를 처음 접하고 나면 금방 깨닫는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결혼 후 출산을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이렇게까지 고되고 책임감이 무거운줄 알았다면 좀더 신중히 고민했을텐데. 고된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출산을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첫 아이 육아와 맞딱뜨린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산후조리원에서 막 나와서 아기를 집에 데리고는 왔는데, 남편은 출근을 해야 하고 아기와 나 단 둘이 남겨진 그 숨막히는 시간. 순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눈뜨고 평화로운 순간은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던 신생아 시절. 안아도 보고 달래도 보고, 그래도 달래지지 않고 왜 우는지 모를 아이와 진땀을 빼야 하는 시간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돌아서면 수유를 해야 하고, 돌아서면 뒷정리 거리가 쌓여있고, 제때 식사를 하는 것은 사치였던,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던 그때. 아이가 잠을 잘때까지 씨름은 계속됐다.
연년생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지 못하게 둘째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산모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후 둘째를 계획하게 되고, 터울이 너무 적으면 아기 둘을 한꺼번에 키워야 하기에 보통 2~3년 정도를 적당한 터울로 생각한다. 그런데 첫째도 너무 어린데 갑작스레 둘째가 찾아와 기쁨과 당황스러운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 연년생 부모의 길이다. 언젠가는 친구처럼 크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만큼 클 때까지 키우는 과정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 안 봐도 비디오다.
게중에는 그 험난한 길을 계획해서 가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일단 워킹맘으로써 돌쟁이 첫째를 두고 복직할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첫째를 키우며 너무 힘들어서 이 과정을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가 자라고 이제 좀 살만하네 느낄때쯤 또다시 고난의 신생아 육아전을 치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짧고 굵게 한번에 끝내자 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연년생 가족계획을 세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첫째가 돌잔치를 할때쯤 둘째가 생겼어야 했는데. 그러나 둘째는 가족계획을 세우자 마자, 빨라도 너무 빨리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렇게 생각보다 터울이 적어도 너무 적은 14개월 차이 연년생을 키우게 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년생을 계획한 무모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였다. 특히나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는, 아이를 두고 집안일이라도 하려 하면 막 앉는 시기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가 갑자기 뒤로 휙 넘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딛치고, 잡고 서는 시기 가만히 잘 서있던 아이가 뒤로 휙 넘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딛치는 광경을 바라만 봐야 했다. 달려가면 이미 꽈당, 사건이 종결된 뒤였다. 그야말로 지근거리에서 계속 보고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시기였다. 여기저기 부딛치고 보이는건 닥치는대로 빨고 주워먹고 ㅠ 그 작은 존재에게 온종일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지만 내가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인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온통 큰애 육아에 집중한 사이 둘째는 뱃속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혼자 큰 것 같다. 출산준비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14개월 전에 준비한 가재수건, 속싸개, 배넷저고리 등의 출산용품을 그대로 사용하면 됐다. 출산이 다가올수록 몸이 힘들다기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커졌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서운 감정. 또 한번의 진통을 겪고 또 몇달간은 밤낮 구분없이 살아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이제 갓 돌이 지난 큰애를 데리고 겪어야 한다는 것. 30대로 접어들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해질수록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들 얘기하는 둘째가 두 돌이 되는 광명의 날을 어서 맞이하고 싶었다. 갈길이 구만리인 나에게도 언젠가는 평화가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