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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움 기록

덜덜

by 재윤

"나 사실 다 알아" 내가 아는 말 중 가장 무서운 말이다. 공격만큼 방어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거다. 총알도 없이 사격당한 기분, 무딘 칼로 썰어버린 피부, 서늘하게 긁힌 껍데기. 기껏 한 겹 벗겨진 막을 걷어내며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응? 뭘?"

들키면 들킨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살면서 누군가를 죽일 정도의 부도덕은 없었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 덕도 있다. 남이 내놓은 종량제 봉투에 내가 쥐고 있던 과자봉지를 끼워넣는 정도의 비매너가 전부다. 예전에는 부끄럽게 살았다. 뒷담화도 하고 시기질투도 난무했고. 한 글자가 버거워 사라진 부’끄’러움. 세 글자로 그친 부러움은 비난으로 돌렸다. 지금은 모두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여집합의 세상은 아닌 거다. 교집합까지의 세상을 탐낸 탓에 겸손을 알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담함은 리뷰이벤트마냥 잃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눈치란 감각은 뭐랄까. 이건 그러니까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것, 촉. 흔히들 말하는 그 촉 말이다. 이 촉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타인에게서 촉이 느껴지면 모른 척을 한다. 내게 타인이란 지인이라, 지인은 애정이라, 가끔은 사랑이라 그렇다. 정(情)의 영역 밖의 이들은 그림자에 가깝다. 직감은 경험으로 통하니 지난한 지난 경험이 타인을 향할 리가 없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을 내쳐야 하니까.

아 그렇지만 이렇게나 답답한 마음을 느낄 바에야 한 명 쯤은. 그게 나여도 나쁠 것 없나? 그러니까 이건 말야. 침묵은 말의 실종이 아냐. 사라짐과 무뎌짐 중 고민을 한다. 난 사실 다 알아. 가볍고 엷은 것은 왜 다 모두 하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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