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라 머리
어릴 적부터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을 동경했다. 온종일 기름과 사투하던 아빠가 돌아오면 물과 기름처럼 공기가 나뉘었다. 어쩌면 아빠가 세상을 가르는 힘을 숨기고 살아가는 초사이언일 수도 있겠다. 씻고 나온 아빠에게는 더운 김과 함께 달큰한 비누 향이 풍겼다. 추억 파트에 배정된 향은 시간이 지나도 날카롭다. 무딘 칼날은 갈아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래오래 날카로울 날의 감각이 남아있다.
첫 향수는 불가리의 옴니시스트. 아마? 엄마의 화장품 대를 몰래 열고 훔쳐 사용한 거라 나의 첫 향수라고 말하기에는 오류가 있겠다. 어른이 된 나는 선반 가득 향수를 수집했다. 향을 즐긴다. 공간을 침투하는 지독한 향에 내 존재가 가려져 좋다. 아무래도 향기 나는 사람은 위험하겠다. 나는 나 스스로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가방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 새끼 향 하나는 죽인다는 말까지 들어봤지만 도둑질(실제 도둑질 아님)로 시작한 향 수집이라. 아무튼 뭐랄까. 살과 옷, 장기까지 뜯어가게 할 정도의 현혹? 죽기 전에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길까 싶은, 꼭 그렇다면 좋을 그런 것. 가장 아름다운 고어. 지독히 중독적이되 존재조차 모르고 사는 것. 향은 그러니까…
아. 멋지게 사는 삶은 글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수더분하고 낡았다. 오래전에 써 내린 낡은 편지, 문장 아래 선이 그어진 중고 서적, 편의점 얼음컵과 싸구려 와인, 벌레와 흙먼지, 어디든 걸터앉고 툭 터는 외투. 자연스러웠던 것이 고전이 된 지금 나는 문화의 조각이 된 것 같다. 마음은 앞을 향하고 등에는 창이 꽂혔다. D형 인간. 글러 먹었다. 두서없는 이 글의 결론은 그냥 향이 좋다는 거다. 캣독처럼 두서 말고 두두로 생각하면 편하다. 서는 그저 내면에.
사람의 몸이 가장 달다. 끈적하고 상쾌한 민트젤리 씹으며 쓰는 글이다. 세상은 향기롭다. 무향의 시대는 도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