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사랑한다.

by 조작가

"엄마 나 군대에서 오래 , 그렇게 대학은 안되더니 군대는 한 번에 가네" 이렇게 말하며 씁쓸히 웃던 아들은 고등학교 때 문창과를 가겠다며 갑자기 진로를 바꾸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입시는 힘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시를 제법 써서 어린이 동아일보에 실린 적도 있었지만 당시엔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뒤늦게 한예종이나, 서울예술대학교를 가겠다고 고집하며 속을 태웠고 재수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을 하더니 갑자기 군대를 지원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하기 전 날 아들은 "다른 부모님들처럼 군대 가라고 재촉하지 않고 방황하는 저를 지켜봐 주시고 스스로 결정하기까지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대 가서 고생 좀 하고 정신 차려서 올게요."라고 말했다.

솔직히 잔소리를 한들 똥고집인 아들이 말을 들을까 싶었다. 이것은 이십년 가까이 아들을 키우며 내 나름의 깨달음이었다. 처음엔 나와 정반대 성향의 아들이지만 초보엄마인 나는 잘 케어하면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아들은 사춘기를 길고 심하게 보냈으며 그럴수록 아들과 나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언니가 다니는 절에 함께 갔다가 그곳에 계시는 스님에게 아들과의 일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태교를 잘 못해서 아이가 힘든 건데 왜 아이 탓을 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엄마가 임신한 10달은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들을 임신했을 당시 엄마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힘들어했고 남들처럼 좋은 것 이쁜 것만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님의 말이 맞든 틀리든 나는 스님의 말로 인해 아들을 이해 못 했던 나의 모자란 생각을 바꿀 수 있었고 , 아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엄마가 미안해 ,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서툴고 모르는 게 많아서 너를 힘들게 했어, 너도 아들이 처음이라 힘들지? 우리 앞으로 서로 노력 하자, 많이 많이 사랑한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후로 아들과 관계가 점점 좋아졌고 지금은 서로의 고민도 터 놓고 얘기하는 모자사이가 되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아들은 입대를 했다. 군부대 연병장에서 잘 다녀오겠다며 큰절을 하고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날씨는 따듯했지만 내 마음은 걱정과 애틋함으로 추운 겨울처럼 스산하기만 했다. 아들을 부대에 남겨 두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 있던 남편이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놀라서 물으니 " 얼마나 힘들까, 나도 엄청 힘들고 고생했는데 내 아들이 그걸 또 해야 하네, 아휴~"하며 우는 것이었다." 이그~ 당신이 나보다 더 울면 어떡해~."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나다가도, 옆에서 나처럼 울고 있는 남편을 보고는 또다시 웃음이 났다. 아마도 군대 생활이 막연하게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그것을 다 겪어봤고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아들은 육군 땅개가 되어 고생하고 오겠다고 했지만 운 좋게 레이저 병사가 되어서 육군 땅개는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전공도 아닌 컴퓨터를 힘들게 익히며 다른 고생을 해야 했다. 전공자들 사이에서 기도 죽고 어려운 전문용어들을 외워야 했으며 또 잠도 설쳐가며 2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군대라면 어디나 있는 선임들의 구박들도 꿋꿋이 이겨냈고 그렇게 고생한 만큼 많은 깨달음을 얻은 듯 보였다. 그래선지 전보다 많이는 아니지만 철도 살짝 든듯한 느낌도 들었다


제대를 조금 남겨 놓고 마지막 휴가를 나온 아들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며 갑자기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런 결정을 한 아들이 기특했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라에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죽하면 여태까지 낸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 철이 덜든 아들이 있는 집에는 군대를 빨리 보내라고 권하기도 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제대를 한 뒤 한 달 만에 일본어도 할 줄 모른 채 일본으로 건너간 아들은 그곳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도 다니고 있다.


"아들, 이제 글쓰기는 포기한 거니?" 물으니 "아뇨, 지금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다음에 40~50대 되면 다시 시작하려고요"

"왜, 라면만 먹고살아도 된다며?"

" 아냐~,엄마, 세상에는 맛있는 게 엄청 많더라고요, 엄마 아빠한테 효도할 수 있을 만큼 돈 좀 벌어 놓고 그때 다시 하려고요"

어느새 아들은 이처럼 제법 듣기 좋은 말도 할 줄 아는 어른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뿐 아니라 요즘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며 창작의 선배이자 동무이기도 한 아들은 현실의 무게를 열심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자식은 전생에 내가 진 빚을 받으러 온 빚쟁이들이라고.... 그래서일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빚쟁이들에게 온 힘을 다해서 즐겁게 갚아 가며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