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다.

by 조작가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보니 어제 아침보다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다. 이참에 침구류들을 따뜻한 것들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머리부터 질끈 올려 묶고 좋아하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 뒤 침구류를 갈아 끼우고 세탁을 시작했다. 빨랫감이 잔뜩이라 배가 터질 것만 같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방과 거실 주방까지 청소기를 밀고 화장실과 현관 바닥,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며 내 공간을 가꾸고 정리했다.

"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사실 몇 해 전 코로나가 터지고 비슷한 시기에 내 허리 디스크도 터졌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들이 길어졌고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조심스러워서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아프기 전에는 아침마다 음악을 들으며 광교산이나 경기대호수를 걷는 것을 즐겼었다. 또 가끔 주말이면 비록 100돌이기는 하지만 골프도 하고 마라톤을 하는 남편을 따라 뛰기도 했었다. 하지만 디스크가 터진 이후로는 걷는 것과 가벼운 스트레칭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 번은 의사 선생님께 "허리가 언제쯤 좋아질까요?"하고 물으니 화를 내며 "허리는 좋아지는 게 아니고 남은 것을 앞으로 아껴가며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퇴행성 질환이라 앞으로 더나 빠지지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온 날 한참을 울었다.

거기에다 갱년기까지 찾아와 들쑥날쑥하는 감정들과 여러 증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마치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리로 내려오는 방사통과 허리의 통증으로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티는 날이 길어졌고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지쳐갔고 시들어져 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힘들어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꿔보자라는 마음이 살며시 들어왔다.


'다른 걱정거리는 없잖아 , 내 몸만 생각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되잖아.

아직 젊으니 관리 잘하면 돼, 힘내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에는 옆에서 지켜봐 주는 남편과 딸의 영향도 있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그들도 힘들어할 거라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해던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의 욕심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를 시작했고 서서히 익숙해져 가며 한결 편안해졌다.


매일 아침 광교산을 바라보며 라디오를 켜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때론 친구와 전화로 수다도 떨었다. 또 넷플렉스로 좋아하는 추억의 드라마도 실컷 보았다. 그렇게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기쁨과 재미를 찾아가며 달라진 나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예전에는 집을 아이들과 함께 내가 아닌 우리의 공간으로 공유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은 커서 떠났고 남편과 둘만 남았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가 허전하고 공허하지만 이젠 우리가 아닌 나만의 것으로 채워나가려고 한다. 엔틱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지 모르지만 그냥 나의 기준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소하며 나만의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 때 이 공간에 찾아와서 편하게 쉬고 나처럼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공간, 나의 집을 가꾸고 청소한다. 내 아이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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