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기분 나쁜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어둡고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는 싫었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와 두통약을 찾아 먹었다. 그리고는 거실에 앉아 눈을 감으니 명상과 잡념 그사이 어디쯤으로 잠시 빠져 들었다가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씩 이유 없이 기분이 처지고 잠자리가 불편해지면서 잠을 설친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컨디션이 나쁘다.
오랜만에 영상의 날씨가 되었지만 마치 황사가 낀 것처럼 하루 종일 시야가 뿌옇다. 마치 내 기분과 비슷하다.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남편과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이천 설봉 온천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작년 12월에 왔을 때보다는 사람이 적어 온천을 즐기기에 좋았다. 뜨근한 온천물에 몸을 지지고 상쾌한 기분으로 이천 쌀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두통이 계속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잠시 침대에 누워있다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1시간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 그사이 핸드폰에는 ㅇㅇ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고 그것을 보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힘없는 목소리 "언니, 엄마 오늘 가셨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 이래서 하루 종일 몸이 힘들었나 ' 싶었다. 몇 해 전 작은 형님이 암으로 2년 가까이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ㅇㅇ와는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인연이 시작돼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과 남편, 아이들을 챙겼다. 주말이면 농사를 짓는 시댁이나 친정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는 근육통으로 온몸에 파스를 붙였고 또 농사일로 손도 거칠어져 있기 일쑤였다. 그 걸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에 본인도 챙겨가며 살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녀는 가족들을 챙기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만 했다.
10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어머니도 새벽에 뺑소니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 1년 뒤 퇴원을 하셨지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때부터 그녀는 동생과 교대로 엄마를 집에서 모셨다. 일을 하면서 아픈 엄마를 모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도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에 그녀가 더 대단해 보였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녀는 10년 가까이 짜증 한번 안 내고 엄마를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셨다.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정인 생각과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그녀가 어쩔 땐 안쓰러워
" 힘들지"라고 물어보면 그저 "괜찮아 "라고 말했다.
이제 엄마를 보내며 슬퍼할 그녀를 내일 만나러 가야 한다. 마음이 무거워 뭐라고 위로의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등의 뻔한 얘기들이 아닌 진짜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 마음을 적어 전해 보기로 했다.
<ㅇㅇ야, 아마도 엄마는 너와 함께 보낸 10년 동안 너에게 받은 사랑으로 무척 행복하셨을 거야, 네가 말했었지 , 엄마는 지금 아기가 되셨다고....
대소변 실수도 하시고 반찬 투정도 하시지만 이렇게라도 엄마랑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세월이 흘러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엄마가 "사랑하는 ㅇㅇ야, 너와 같이 보낸 시간 동안 무척 행복했단다. 그리고 고마웠다."라고 꼭 말해주실 거야. 그러니 다시 힘을 내서 그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