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수호신

by 조작가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마당에 앉아 혼자 울고 있다. 얼굴에는 꼬집힌듯한 손톱자국이 선명했고 마당에는 소꿉놀이들이 흩트러져 있다. 잠시 후 땀과 눈물로 범벅인 여자 아이에게 한 소년이 다가와 일으켜 세우며 눈물을 닦아 준다."왜 울고 있어, 또 영희가 괴롭혔어?" "응~오빠, 영희가 내 거 뺏어 갔어 ~"여자아이는 소년에게 안기며 운다. 소년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영희네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영희 엄마에게 따진다." 아줌마 영희가 또 우리 막내 얼굴 꼬집고 장난감 뺏어갔어요"

내 어릴 적 기억 어딘가에 있었던 오빠와의 추억 한 조각이다. 오빠는 조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때만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람이었고 나에게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사업을 하시는 아빠를 도와 바쁜 엄마는 외출할 때면 학교 앞 문방구로 가서 소꿉놀이를 사주시며"오빠 좀 있으면 오니까 집에서 이거 갖고 놀고 있어" 하고 외출을 했다. 바쁘신 부모님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을 대신해서 오빠는 늘 이처럼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는 여름만 되면 온몸에 땀띠가 나서 간지러움으로 고생을 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막내는 저 바닷가 짠물에 가서 푹 담가서 소독해야 해"라고 말하셨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오빠는 내가 간지러워할 때면 물에 소금을 타서 목욕을 시켜 주곤 했다. 땀띠가 아닌 아토피라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것을 모르던 그때는 동생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오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빠는 용돈을 모아 내게 샌들을 사주었고 , 첫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마이마이 카세트를 사주었으며 영화관을 처음 데려가준 사람도 오빠였다. 그때 본 무술 영화에 빠져 한참을 이소룡, 성룡의 팬이 되기도 했다. 또 손재주가 좋은 오빠는 겨울이면 연과 썰매도 만들어 주었고 6학년 겨울 방학 때 영어공부를 하라며 맨투맨 영어 교재를 사다 주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오빠에게 받은 것이 참 많았다.


엄마는 44살에 노산으로 늦둥이인 나를 낳았다.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엄마는 처음엔 그저 살이 쪄서 배가 나오나 했지만 점점 소화가 안 되면서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인가 싶어 병원진료를 보셨다고 했다. 아무래도 산부인과로 한번 가보시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엄마는" 설마 ~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생각하셨지만 결과는 임신이 맞았고 , 창피한 마음에 10달 내내 한복으로 배를 가리고 다니셨다고 했다. 한 번은 간장을 많이 먹으면 아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에 그 짜디짠 조선간장을 한 사발을 들이킨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오빠는 가족들 중에서도 나만 유난히 까만 피부를 가진 이유를 엄마가 그때 간장을 먹어서 그렇다며 박장대소를 하며 나를 놀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오빠와 나는 어릴 적만큼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도 바빠지기도 했지만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빠보다는 같은 여자인 언니들과 소통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언니들과 내가 결혼을 해서 집을 하나둘씩 떠나갈 때면 오빠는 " 이그~ 이놈아~네가 남자로 나왔어야지~" 라고 말하곤 했다. 아마도 장손인 오빠는 집안에 행사나 일이 생기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부담스럽고 외롭게 느껴졌던 것같다.


오빠는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나도 결혼을 해 집을 떠난 이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겠고 하며 미혼으로 자유롭게 혼자 살았다. 그러다가 3년 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집에서 홀로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인사도 없이 홀연히 가버렸다.

아직도 내 핸드폰에는 지우지 못한 오빠의 전화번호가 있다. 오빠가 좋아했던 음식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거 오빠 갖다 줘야지~" 하면서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떠난 오빠를 떠올리고는 순간 "아....., 아니지" 하며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아직도 오빠가 떠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해양장으로 오빠를 보내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날, 갑자기 어디선가 호랑나비가 날아와 한참 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오빠가 나비가 되어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것만 같아서 , 한참을 쳐다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오빠 잘 가 , 그리고 고마웠어....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이번에는 내가 오빠의 수호신이 되어줄게.... 안녕...."


요즘 오빠의 장례식을 해양장으로 치른 것을 자주 후회를 한다. 평소에 바다를 좋아하던 오빠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오빠가 그리울 때면 찾아갈 곳이 없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닷가로 가서 깊고 푸른 물을 바라보며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오빠의 흔적에게 조용히 그리움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