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에세이를 쓸 거야?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자서전 아니야?" 남편이 내게 물었다. 그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이야기를 다 써야 그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사실 나 또한 남편이 말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 중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내 얘기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것이 맞는 것일까 싶었던 것이다.
다음 주면 에세이 강좌를 들으며 매주 글을 한편씩 쓰기 시작한 지 어느새 3개월째가 된다. 그동안 12편 가까이 글을 썼고 쓰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아 쓰기를 멈추고 아예 펑펑 울고 난 뒤
마무리를 한 글도 여러 편이 된다.
그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마치 내 마음속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던 엉클어진 실타래를 드디어 푼듯한 기분이 들며 홀가분해지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글 쓰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 아픈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 주었고 그것을 꺼내어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무엇에 대해서 써야 할지 갈팡질팡 헤맸지만 고민 끝에 나의 스토리를 쓰기로 했다. 내게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한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의 답은 바로 가족이었고 그 소중한 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풀리지 않는 응어리인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둘씩 꺼내어 쓰기 시작했다.
그리워만 했지 엄마의 외로움이나 취미, 인생에 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내내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게 되었고 엄마 또한 아니 나보다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미안해졌다.
엄마와 마지막인사를 제대로 못한 나는 항상 그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엄마를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엄마를 생각하고 글을 쓰며 또 울기도 하면서 엄마와의 이별을 드디어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만의 방식으로 하지 못했던 인사를 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온전히 보내드릴 수 있었다.
물론 글이 잘 써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쓴 글이 너무 뻔하고 재미없게 느껴져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며칠 동안은 글을 쓰기 싫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 건가? 싶은 고민 끝에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아들에게 sos를 쳤다.
"엄마의 글이 재미없고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글은 세련된 것 같은데 엄마글은 초등학생 글 같아"
"엄마, 그건 사람마다 쓰는 문체가 달라서 그래요,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엄마만의 스토리를 찾으시면 돼요, 엄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어요."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아, 책도 많이 읽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는 게 창피하네"
"아니에요, 엄마, 엄마보다도 늦게 시작한 작가들도 많아요, 나이는 상관없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엄마는 쓸 얘기가 많을 거예요, "
아들은 이렇게 위로를 해주고 응원해 주었다. 또 독자 1호인 남편은 무조건 잘 쓰고 있다며 객관성이 떨어지는 응원을 열정적으로 해주었고, 시크한 딸은 종이에 쓰는 것이 익숙한 나를 위해 아이패드를 세팅해 주었다. 온 가족이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 무한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기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 감동도 받고 위로도 받았었지만 남이 아닌 내가 쓴 글로 위로를 받으며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은 책장 안에만 있던 책들이 점점 집안 여기저기에 놓이게 되었고 tv를 보거나 수다를 떠는 시간보다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내 허리와 체력이 버텨 주기만 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글쓰기를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