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겨진다는 것

by 조작가

주말 저녁이었다. 길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카페 안의 손님들도 한두 테이블뿐이었다.

스르르륵 문이 열리더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들어왔다. 짧은 단발머리에 150 센티 조금 넘어 보이는 키, 까무잡잡한 피부에 수수하다 못해 허름해 보이는 옷차림, 거기에 더해 자신감 없어 보이는 표정과 작은 목소리.

내가 기억하는 H의 첫인상이었다.

90년대 초 작은언니는 서울의 한 재수학원가에서 작은 북카페를 했다. 나는 가끔 주말이면 언니를 대신해서 가게를 봐주곤 했다.

"주인언니 안 계세요?"

"네, 언니 지금 안 계시는데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으니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그냥 나가버렸다.

며칠 후 언니에게 듣기로는 카페 위층에 봉제공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날 계단에 힘없이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는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고 그 이후부터 종종 찾아온다고 했다.

언니는 그런 H가 안쓰러웠는지 동생처럼 챙겼다.

H는 나보다 2살이 많았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언니들과는 다르게 친구같이 편한 H가 좋았다.을 먹고 ,수다도 떨고,

드라마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가족처럼 지냈다.


사실 H는 고아였다.

어릴 적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는데 아버지는 H를 동네 목사님 집에 보내고 사라졌다.

그때부터 H는 그곳에서 식모살이를 했고 학교에 보내 주겠다던 목사님은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의 도움으로 홀로서기를 했지만 H가 처음 간 곳은 동대문 쪽에 있는 봉제공장이었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생활하는 공장은 쉴 곳도 제대로 없었다.

그곳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몇 년을 살다가 이곳으로 왔지만 이곳도 그다지 다른 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H는 항상 지쳐있었고 눈빛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런 H가 안타까웠던 언니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검정고시를 보라고 권했다.

학원을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배려해 준 것이다.

그렇게 언니네 집 근처로 작은 방을 얻어 이사 온 H는 학원과 가게를 오가며 잘 지내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빠지기도 하고 시간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다.

H를 안쓰럽게 생각하던 언니도 점점 지쳐갔고 혼을 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자유롭게 혼자 살던 H에게는 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싫고 버거울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H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다. 진짜 가족은 아니였으니까.

다니던 공장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면서 외박을 하고 돈거래를 하며 그들의 얘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H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H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언니는 깊이 실망해서 ,다시는 사람을 믿거나 품지 않겠다고 후회를 했다.

H는 왜 그랬을까.

어쩌면 H가 우리를 밀어낸 게 아니라 , H에게 진심으로 가족의 자리를 내어주지 못한 것은 아니였을까 ...


어릴 적 엄마 아빠와 여관에 간 적이 있었다.

다음날 엄마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여관 여기저기를 혼자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안은 비어 있었다. 순간 나를 버리고 갔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큰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그 소리에 잠시 후 엄마가 아래층에서 놀라 올라오셨고 그제야 내가 방을 잘못 찾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기에 아직도 그때의 두려움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린나이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다는 것은 절망감과 두려움에 힘들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H는 기댈 곳 없는 외로움에 타인의 친절함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도 못한채 쉽게 흔들렸을 것이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H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H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H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좀 더 이해해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H의 행복한 삶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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